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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마을 구석구석 58] 수려선 열차 기적소리 아련한 능서면 매류리
 
이재춘 기자   기사입력  2021/05/27 [16:02]
[여주세종문화재단-세종신문 공동기획]

▲ 여주시 능서면 매류2리 마을 전경.     © 세종신문

매류리의 유래

매류리는 본래 여주군 수계면의 지역으로, 산의 머리 쪽이어서 마릿골 또는 매류동이라 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마릿골과 정거장을 합쳐 매류리라 하고 능서면에 편입됐다. 자연마을 마릿골은 지금의 매류1리로 만리골 이라고도 하는데 마을 전체의 모습이 길게 이루어져 만리나 된다고 해서 불리게 되었다고 하며 매류리의 으뜸 되는 마을이다. 정거장말은 매류2리로 예전에 여주와 수원을 오가던 수려선 기차의 매류역이 있어서 불린 이름이다. 그 외에도 당골, 뱅기리들, 장두리보, 수학골 등이 있는데 당골은 마릿골 동쪽에 당집이 있던 마을이다. 웃말이라고도 불린다. 뱅기리들은 매류 1리에 있는 들이다. 장마가 지거나 가뭄이 들어도 논에 물이 넘치거나 마르지 않아 뱅기리 웃음을 지었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장두리보는 매류 1리에 있는 보다. 길고 넓은 보를 의미한다. 수학골은 매류 1리에 있는 골짜기로 전해오는 이야기는 옛날에 양화천 자리에 마귀할멈이 할미바위를 놓았는데 어떤 사람이 묫자리를 쓰려고 그 바위를 팠다고 한다. 그런데 그곳에서 수컷 학 한 마리가 날아올라 지금의 세정중학교 터에 앉았다 해서 수학골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매류역

매류역은 수려선 여주구간 네 개 역 중 하나다. 수려선은 여주-수원 간을 잇던 협궤 철도 노선으로, 일제강점기인 1930년 12월에 사철 조선경동철도주식회사가 여주 지역의 쌀을 수탈하려는 목적으로 부설하였다. 1942년 수인선과 함께 조선철도에 양도되어 두 선을 합쳐 경동선(京東線)이라 하였다. 광복이후 사철 국유화 정책에 따라 교통부 철도국 소유로 변경되었다. 박정희 정권 때 구둔역까지 연장하는 계획이 세워졌지만 1971년 영동고속도로가 개통되자 여주와 수원 사이의 철도 교통수요가 줄어들어 1972년 3월 31일 전 구간 폐선 되었다. 폐선 당시 수려선 노선 연장은 73.4km였다. 수여선 여주구간에는 매류역, 광대리역, 연라리역, 여주역 이렇게 네 개의 역이 있었다. 매류역이 폐지 된 이후 역사 자리에는 ‘역전슈퍼’가 들어섰으며 매류리 주민들은 수려선의 옛 모습을 벽화로 만들어 추억하고 있다. 

▲ 양화천으로 흐르는 매류천.     © 세종신문

매류천

매류천은 연라리 연하산에서 시작하여 북서쪽으로 흘러 양화천으로 유입되는 지방하천이다. 한강수계의 지방하천으로 양화천의 제1지류이다. 하천연장 3.3km, 유로연장은 5.03km, 유역면적 8.6㎢이다. 매류천은 본류인 양화천과 함께 매류리를 곡창지대로 만들어 주는 주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세정중학교

여주시 능서면 매류1리에 위치한 사립중학교이다. 1949년 2월 16일 재단법인 세광학원의 설립인가를 받았고 1955년 4월 9일 세정중학교로 승격 인가를 받았다. 2005년 3월 특수학급을 신설하였다. 교훈은 ‘협동단결, 인내근면’이며, 교목은 향나무, 교화는 장미이다. 특수학급 1학급을 포함하여 전체 3학년 5학급으로 구성되어 있다. 
 
매류초등학교

여주시 능서면에 위치한 공립초등학교이다. 1957년 4월 1일 능서국민학교 매류분교 인가를 받은 뒤, 이듬해 4월 개교하였다. 1981년 3월 병설유치원을 개원하였다. 1996년 3월 매류초등학교로 교명을 변경하였다. 교훈은 ‘푸른 꿈, 큰 사랑, 즐거운 매류 어린이’이며, 교목은 은행나무, 교화는 개나리이다. 특수학급 1학급을 포함하여 전체 6학년 7학급으로 이루어져 있다.    

[마을人터뷰] 고정학(81) 선생

매류리가 고향인가?

1941년에 매류리에서 태어났다. 이 동네에 1931년에 기차역이 생기면서 우리 아버지가 서울에서 초대 역장으로 발령을 받아 왔다. 어머니 말에 의하면 처음 왔을 때 집이 한 채도 없었고 우리가 처음 집을 짓고 살았다고 한다. 우리 아버지는 서울, 어머니는 경기도 안성이 고향이다. 6남매 중에 막내인데 우리 큰형도 매류역에서 역무원을 했다. 

▲ 매류리 고정학 선생.     © 세종신문

매류리에서의 학창시절은 어땠나?
 
능서초등학교 20회, 여주중학교 6회, 여주농고 8회 졸업생이다. 중학교 때 여주까지 걸어서 통학을 했다. 한 9km정도 되는데 빨리 가야 한 시간 반, 두 시간 걸리고 그랬다. 북성산 밑 신지2리로 해서 미군부대 뒤를 지나 번도5리로 나오면 옛날에 망배소가 있었다. 그 비탈길을 따라 등교를 하는데 새벽밥 먹고 출발해 신지리에 도착하면 해가 떠오른다. 여주 가는 기차가 9시 30분에 매류역에 들어오고 오후 2시30분에 여주에서 출발한다. 기차는 등하교 시간이 맞지 않아서 걸어 다녔다. 다만 토요일에는 2시30분 기차를 타고 집으로 왔다. 그 당시 가족증이라는 게 있어서 그걸 보여주면 차장이 통과시켜줬다. 친구들은 돈 내고 타야하고 돈 없는 놈들은 몰래 타다가 걸려서 차장에게 뚝밤을 여러 대 맞고 그랬다. 그전에는 중고등학교가 하리 잠업연구소 자리에 있었다. 그때 중고등학교를 새로 짓는다고 양섬으로 가서 자갈을 주웠다. 한 학급씩 양섬으로 가서 원형으로 빙 둘러 앉아 주먹만 한 자갈을 앞으로 던져 모으면 한 시간에 한 차를 모았다. 세종대왕릉 만한 자갈무덤이 생기는 거다. 그러면 트럭, 제무시라 하는 걸로 실어간다. 

수려선에 관한 추억이 많을 것 같은데….
 
옛날 여주역 근처에 중화루라는 중국집이 하나 있었다. 지금의 홍문사거리 빵집자리가 중화루였다. 그 시절 학교 다니면서 짜장면 한 그릇도 못 먹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김춘석 시장 아버지 김영태 씨가 여주역에서 근무했다. 우리 큰형 친구다. 매류역에 근무할 때 우리 집에서 식사도 자주했다. 그 분이 주말에 내가 기차 타러 가면 “너 점심 안 먹었지?”하며 그 중화루에서 짜장면을 사주었는데 소고기와 비교도 할 수 없이 맛있었다. 월요일에 학교에 가면 짜장면 먹었다고 친구들에게 자랑을 하고 그랬다. 

▲ 매류역전 옛 모습 벽화.     © 세종신문
 
매류역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들려 달라.

그 당시는 매류역이 경동철도주식회사라고 사철이었다. 그 사람들이 곡창지대만 다니면서 벼를 무조건 뺏어갔다. 그게 공출이다. 우리 어머니가 13세에 시집을 왔는데 처녀공출 때문에 그랬다. 벼도 공출로 가져가고 처녀도 공출로 잡아갔다. 이 아래 창고가 큰 게 하나 있었는데 거기다가 벼를 잔뜩 쌓아놓고 기차로 벼를 실어가는 거였다. 수려선이 폐선 되고 역사를 여주군이 맡아서 불하를 했다. 그때 내가 이장을 봤는데 군에 건의를 해서 매류주민들에게 팔수 있도록 했다. 입찰공고를 내면서 매류리에 2년 이상 거주자에게 자격을 준다는 조건을 달았다. 그래서 매류 사람들이 살 수 있었다. 
 
세정중학교 역사가 꽤 오래된 것 같다.

정동성 전 국회의원이 이 동네 사람이다. 여주대학교를 만든 사람인데 나하고 죽마고우다. 능서국민학교는 나보다 1년 선배고 세정중학교를 다니다가 그만 두고 나랑 같이 여주중학교에 시험을 봐서 합격해서 같이 다녔다. 그 아버지가 옛날에 대한교육연합회에 계셨는데 지금의 교육청과 같은 곳이다. 그 때 여기 매류리에 있는 중학교를 세종중학교로 이름을 지으려고 했는데 서울 어디에 같은 이름의 학교가 있다고 안 된다고 해서 세정중학교로 바꾼 거다.  

▲ 세정중학교 전경.     © 세종신문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군대에 갔나? 결혼은 언제했나? 

군대 가기 전에 결혼을 해서 애가 둘 있었는데 보충역에서 방위로 떨어져 능서지서에서 3년 근무 했다. 지서장이 군대에서 장교로 있다가 5.16혁명 나고는 차출되어 왔다. 강천사람인데 여주시의회 의장을 했던 이환설이 큰형이다. 중학교 3년 선배라고 나를 많이 봐줬다. 밤에만 출근해서 지서 무기고를 지키는 임무였는데 지서장 오토바이 뒤에 타고 다니며 순찰만 돌고 와서 바로 자고 그랬다. 
결혼은 스물다섯에 했다. 매류리가 역전이라 그전에 청년들이 다 껄렁껄렁했다. 여기가 깡패들이 많다고 주변에서 딸을 잘 안 주려고 했다. 우리 집사람은 고향이 천안이다. 집사람의 고모가 매류1리에 살았는데 그 분이 우리 집안도 잘 알고 그 집 큰아들이 나와 동갑이고 그랬다. 집사람이 처녀시절 고모네 집에 잠깐 왔을 때다. 이 동네 친구가 안말에 처녀가 한명 왔는데 한번 가보자고 해서 가서 만나봤다. 나중에 알고 보니 처고모가 나에게 소개해주려고 마음을 먹고 있었다고 하더라. 그 처녀가 곧 천안으로 가야 한다고 했다. 새벽 세시 반인가 네 시에 매류역에서 수원 가는 첫차가 있었는데 그 차를 타기 전에 편지를 하나 써서 주고 갔다. 그 후로 편지를 주고받으며 사귀었다. 집사람이 엄청 굳어서 돈 쓰는 거를 헛되게 하지 않았다. 내가 뭐를 좀 하려고 하면 ‘돈이 귀중하니 좀 아껴 써라’ 이런 내용의 편지를 보내오고 그랬다. 그래서 내가 “아, 이런 사람이면 살림도 잘하겠다. 마음에도 드는데 성격도 굳어서 차분하니 딱 이다” 이렇게 생각했다. 지금도 우리 집사람이 그렇다. 가을에 만나 겨울에 결혼식을 올렸는데 우리 사촌형이 서울에서 시내버스를 끌었다. 그 사촌형이 신형 관광버스를 한 대 빌려서 수원역에 대기하고 있다가 매류에서 기차로 오는 마을 사람들을 다 태우고 천안까지 갔다. 그 시절에 관광버스를 대절 한다는 것은 요즘에 비행기를 대절하는 것만큼 대단했다. 처가에서 결혼식을 끝내고는 그 관광버스에 장인어른과 신부를 태우고 진천, 무극으로 해서 삥삥 돌아서 매류리까지 왔다. 길이 없어 개울을 건너는데 개울바닥에 친구들이 자갈을 모아서 길을 만들어 건너고 그랬다. 장인어른과 신부가 아마 속으로 ‘아이고 정말 더럽게 깊은 산골짜기에 산다.’ 그렇게 생각했을 거다. 허허허! 애들은 아들 셋 딸 하나 낳아 키웠다. 
 
매류5일장에 대한 추억은?

매류역전 앞에 5일장이 섰다. 역전에 술집이 열두 집이 있었고 접대부를 두고 술파는 집이 그중 여섯 집이었다. 젊어서 술 마시러 많이 다녔다. 장날이면 장돌뱅이도 많이 왔고 야바위꾼들도 왔다. 화투 석장을 놓고는 막 돌리면서 하나를 찾는 건데 분명히 있었는데 짚으면 없었다. 그래서 하루는 그놈들을 불러다가 “야 이 새끼들아 이거 어떻게 하는 거야?”하고 물었지 뭐. 알려줘도 잘 모른다고 하기에 그래도 한번 말해 보라고 했더니 “잘 봤다 못 봤다 말씀 마시고 요런 놈을 봐야 소용이 있지 딴 놈을 봐야 소용이 없지”하면서 잡을 화투를 살짝 보여 준다. 그러고 “흥아리 갓짜!”하는데 그 때 화투장을 바꿔치기 한다는 거야. 한마디로 사기를 치는 거지. 그걸 알려주더라고. 허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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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1/05/27 [16:02]  최종편집: ⓒ 세종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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