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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세종이다(15) 내 뜻을 가장 잘 이어간 신하는 신숙주였다
 
박재택   기사입력  2022/08/04 [17:02]
▲ 박재택 전 경운대 객원교수     
내 시대를 빛낸 신하들 가운데 누구 하나 귀하지 않겠는가마는 그래도 내뜻을 가장 많이 이어간 신하는 보한재 신숙주였느니라. 내 아들 세조와 얽힌 사건으로 ‘숙주나물’이라는 오명까지 쓰고 있으니, 높이 평가받아야 할 사람이 욕까지 먹어 가슴이 아프다. 보한재는 국방, 외교 등 주요 분야에서 한결같이 나라를 위해 헌신하였으니 그의 업적을 알아보지 않고 ‘숙주나물’이라 얕보는 일이 더이상 없어야 할 것이다.

물론 내 손자 단종을 지키는 일에 함께하지 않았다고 비난하는 것을 모르지는 않지만 그게 문제라면 내 아들 세조가 문제이지 어찌 보한재가 문제이겠는가?

나는 훈민정음 반포(1446)를 앞두고 준비할 것이 많아 왕세자 향에게 정권을 맡기다시피 했다. 그러다보니 왕세자와 더불어 적재적소의 인재를 논의할 때가 많았다. 어느 때인가 왕세자가 믿을만한 인재를 묻길래 나는 “신숙주는 큰일을 맡길 만한 사람이라.](申叔舟可任大事者(신숙주가임대사자))”_문종 1년/1451/8/5/”라고 말한 바 있다. 내 예언대로 그는 맡은 바 소임을 내 기대 이상으로 하였도다. 보한재의 가장 큰 업적은 나를 도와 훈민정음해례본 편찬 작업에 참여한 것이다.

훈민정음 해례본은 새 문자를 창제하는 문제와 다른 점이 있다. 새 문자의 이론적, 정치적 정당성을 논리적으로 설득해야 하기 때문이다. 해례본을 저술하는데 도와준 정인지, 최항, 박팽년, 신숙주, 성삼문, 이개, 이선로, 강희안 등 모두 훌륭하고 열심히 해 주었지만 역시 언어학의 천재였던 신숙주의 공로는 남다른 데가 있었다. 

1446년 해례본이 나오고 나서 거의 동시에 펴낸 동국정운의 대표 저자로 젊은 보한재를 내세운 이유가 거기에 있다. 신숙주가 쓴 동국정운 서문은 내가 왜 훈민정음을 창제했는지의 맥락을 잘 짚어주고 있기 때문이다.

▲ 보물 제613호인 보한재 신숙주 영정.     © 위키백과

무릇 소리가 다르고 같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다르고 같음이 있고, 사람이 다르고 같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지방이 다르고 같음이 있나니, 대개 땅의 형세가 다름으로써 풍습과 기질이 다르며, 풍습과 기질이 다름으로써 호흡하는 것이 다르니, 동남 지방의 이와 입술의 움직임과 서북 지방의 볼과 목구멍의 움직임이 이런 것이어서, 기어코 글뜻으로는 비록 통할지라도 말소리(성음)로는 같지 않았다. 우리나라는 안팎 강산이 저절로 한 구역이 되어 풍습과 기질이 이미 중국과 다르니, 호흡이 어찌 중화(중국)의 소리와 서로 합치될 것이랴. 그러한즉 말의 소리가 중국과 다른 까닭은 당연한 이치다. 글자의 음에서는 마땅히 중국음과 서로 합치될 것 같으나, 호흡의 돌고 구르는 사이에 가볍고 무거움과 닫히고 열림의 동작이 역시 반드시 말의 소리에 저절로 끌림이 있어서, 글자의 음이 또한 따라서 변하게 된 것이다. _≪동국정운≫ 서문
 
우리 세종대왕께서 운학(성운학)에 뜻을 두고 끝까지 연구하여 훈민정음 몇 글자를 창제하셨다. 그리하여 사방 만물의 소리를 전하지 못할 것이 없게 되었으며, 우리나라 선비들이 비로소 사성과 칠음을 알게 되어 저절로 갖추지 못할 것이 없으며, 특히 글자의 운에만 한정될 따름이 아니다. 이에 우리나라가 대대로 중국을 섬겼으나 언어가 통하지 아니하여 반드시 통역을 의뢰하기 때문에 제일 먼저 ≪홍무정운≫을 번역할 것을 명하였다. 현 예조 참의 신 성삼문ㆍ전농 소윤인 신 조변안, 지금산군사 신 김증, 전 행통례문 봉례랑 손수산 및 신 숙주로 하여금 옛것을 살펴 교정하게 하고, 수양대군 신 휘(諱)(수양대군의 이름은 ‘유(柔)’이나 나중에 왕이 되었으므로 ‘꺼릴 휘(諱)’자로 표기하였다.)와 계양군 신 증이 출납을 맡게 하고, 모두 직접 자리에 참석하여 과별로 정하여 칠음으로 맞추고 사성으로 고르고 청탁으로 조화를 시키니, 가로 세로 씨줄과 날줄이 비로소 바르게 되어 결함이 없었다. ≪홍무정운역훈≫ 서문
 
동국정운은 그야말로 훈민정음으로 한자의 표준음을 정한 것으로 중국 황제들이 천 년 이상을 시도했으나 한자로는 소리를 온전히 표기할 수 없어 못했던 것을 한 것이요, 홍무정운역훈은 아예 중국 황제가 정한 중국음을 조선의 훈민정음으로  표기한 것이니 이 어찌 놀라운 일이 아니었겠는가?

훈민정음 해례본에는 8명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가 나와 있지 않아 누가 어느 정도의 역할을 했고 어떻게 기여했는지를 알 수 없지만 이러한 두 문헌에서 신숙주가 한 중대 역할을 보면 해례본에서의 기여도를 능히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으리라.

▲ 동국정운 본문 내용.     © 박재택 제공.



내가 신숙주의 재능을 제대로 알아보고 인재로 키우려고 했던 것은 바로 사가독서에서였다. 집현전 학사들한테 사가독서를 주어 독서와 연구에 전념하게 하는 제도’라고 하고, ‘사가독서’는 휴가를 주어 책을 읽게 한다는 뜻이기도 해서 일종의 유급 휴가처럼 보이지만 휴가는 아니고 집이나 조용한 곳에서 책 읽고 연구하라는 것이다. 우리나라 대학들이 교수들을 대상으로 한 안식년 제도도 사실은 ‘안식’하라는 것이 아니라 조용히 재택 연구를 통해 연구와 교수 역량을 키우라는 것이니 사가독서제 부활인 셈이다. 

이 제도는 내가 부임한 지 2년 때인 1420년 3월에 처음 시행되었지만, 내가 부임한 지 8년 때인 1426년부터 본격화하였다.

집현전 부교리(集賢殿副校理) 권채(權綵)와 저작랑(著作郞) 신석견(辛石堅)·정자(正字) 남수문(南秀文) 등을 불러 명하기를,
"내가 너희들에게 집현관(集賢官)을 제수한 것은 나이가 젊고 장래가 있으므로 다만 글을 읽혀서 실제 효과가 있게 하고자 함이었다. 그러나 각각 직무로 인하여 아침저녁으로 독서에 전심할 겨를이 없으니, 지금부터는 본전(本殿)에 출근하지 말고 집에서 전심으로 글을 읽어 성과(成果)를 나타내어 내 뜻에 맞게 하고, 글 읽는 규범에 대해서는 변계량(卞季良)의 지도를 받도록 하라."고 하였다.
결국 각각 맡은 직무로 인해 독서에 전심할 겨를이 없으니, 지금부터 본전에 나오지 말고 집에서 전심으로 글을 읽고 성과를 내어 내 뜻에 맞게 하라며 인재들이 독서와 연구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한 제도이다. 

처음에는 자택에서 독서하였으나 독서에 전념하기 어렵다 하여 세종 24년(1442)부터는 진관사에서 독서하게 하였는데, 1442년에 신숙주는 성삼문, 박팽년, 신숙주, 이개, 하위지, 이석형 등 여섯 명에 선발된다. 이들이 돌아가며 지은 시가 남아 있다.
 
西臨津寬寺 서쪽으론 진관사에 가깝게 섰고
南壓漢江滸 남쪽으론 한강 물을 누르고 있네 (박팽년)
小憐跂而及 발돋움해 미치는 것 조금 예쁘나
大厭…昂不俯 우러러서 굽힐 수 없음 대단히 싫다 (신숙주)
上摩明星熒 위론 반짝이는 밝은 별에 닿을 듯
下瞰周原膴 아랜 풍성한 평야 볼만하구나 (성삼문)
禪社茶何冷 사찰 차는 어찌 이리도 찬가
村壚酒須酤 촌가 술은 사다가 마실만하네 (이개)
窮經尋山室 경문을 궁구하려 산의 절 찾고
頤神受天祜 정신 기르기는 하늘 도움 받는구나 (박팽년)
朝夕對蒼翠 아침저녁 푸른 산을 마주보면서
坐臥尋訓詁 앉으나 누우나 옛 서적 보도다 (신숙주)
賦詠雖酷好 시 짓고 읊는 것 몹시 좋으나
學術卽麤粗 학문 재예 거칠고 어설프다네 (성삼문)
願乞山英靈 산의 영령한 신께 비노니
聊益我肺腑 그런대로 나의 폐부 살찌게 하여
用以期遠大 힘써서 원대하기 기약하나니
致身可相輔 몸을 바쳐 나라 보필 할 수 있기를 (이개)_출처 : 성근보선생집(成謹甫先生集) 제1권 / 시(詩) 
 
이러한 훈민정음 업적 외에 더욱 큰 일은 우리의 국방을 튼튼히 하는데 신숙주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점이다. 이 점은 다른 곳에서 다시 논의하기로 한다. 모든 이가 지혜를 마음으로 나누고 누릴 수 있게한 훈민정음과 동국정운 업적만으로도 보한재의 업적은 차고 넘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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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2/08/04 [17:02]  최종편집: ⓒ 세종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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