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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방지역 정비 : 김종서 ④
세종 생생[거듭살이]의 삶
 
김광옥   기사입력  2021/11/18 [13:46]
▲ 김광옥 수원대 명예교수     
반간反間의 운영

세종 때 북방민족과의 관계에서 여진족은 압록강과 두만강 인근에서 재물에 대한 노략질뿐만 아니라 나아가 부락민을 죽이는 일까지 벌어지고는 했다. 이에 세종은 일찍부터 김종서를 내세우 압록강 변에 4군을 두만강 변에 6진을 설치하기에 이르고 이는 오늘날의 국경을 이루게 되었다.

이때 특이한 것은 여진족의 동향을 살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이는 남쪽 일본의 경우와는 조금 달랐다. 일본은 워낙 많은 번(藩)들이 갈려져 있고 당시 통일 기운이 없어서 대마도를 살피고 있으면 되었지만 여진족은 돌출적인 행동이 잦아서 평시에도 상대의 정보를 알고 있는 것이 필요했다. 이런 상황에서 전투 때에는 더욱이 상대에 대한 정보가 필요했다.

이를 확인하기 위하여 실록에 나와 있는 정보와 관계된 용어를 살펴보면 정보원이라 할 사람은 당시에는 정탐꾼, 체탐인(體探人), 간첩이나 첩자는 첩자 · 첩인 · 간자 · 세작으로 부르고 이중 간첩은 반간이라 불렀다.
이 용어들을 직접《조선실록》에서 찾아보면,
체탐(體探)은 한자 원문 전체 246건 가운데 세종 29건, 성종 48건, 중종 49건, 선조 65건 등이다.
첩자(諜者)는 원문 총 6건 중 세종 2건 선조1/1, 광해군1/1 건이다.
간첩(間諜)은 원문 총 75건 중 세종 12건, 선조 25건, 인조 11건이다.
세작(細作)은 원문 총 57건 가운데 선조 16건, 광해군 13/9건이다.
반간(反間)은 원문 총 49건 가운데 세종 16건이다. 왜란을 치룬 선조 17건, 인종 2건인 걸 보면 세종의 여진족에 대한 주도면밀함을 엿볼 수 있다.
전체적으로 왜란이 있던 선조와 호란의 시기인 인조를 빼고 평화시인 세종 때 체탐, 간첩, 반간이 많이 거론되는 것을 보면 국방에 대한 세종의 정신을 엿볼 수 있다. 세종은 반간을, 선조 시에는 세작이 많이 등장한다. 세작은 적의 정찰 요원으로 왜의 세작이 잡힌 일이 있었고(《선조실록》31/3/17), 숙종 때는 청의 세작도 잡힌 일이 있었다.(《숙종실록》 2/12/23)
 
세종 때 정탐꾼

세종 때의 정탐꾼 기사를 보자.
 
체탐인 : 이달 초3일에 이산(理山) 정탐꾼 김장(金將) 등 다섯 사람이 파저강을 몰래 건너서, 올라산 북쪽 모퉁이에 있는 오미부(吾彌府)에 곧장 이르러 보니, 물 양쪽 언덕에 큰 들이 모두 개간되어 농민과 소가 들에 흩어져 있었으되 말은 보이지 않았으며, ... 도적 다섯 기(騎)가 밀림 속에서 나와 고함을 치면서 쫓아 쏘기에 할 수 없이 나무에 의지하여 도리어 활을 쏘았는데, 김유생(金有生)이 적의 왼쪽 빰을 맞히니, 그 뒤로는 모여 서서 쫓지 아니하므로, 몰래 도망할 즈음에 그 뒤를 돌아보고야 군인 김옥로(金玉老)가 없음을 깨달았으나, 사로잡힌 것은 아니고 반드시 떨어져서 홀로 나오다가 짐승에게 먹혔거나 또는 물에 빠진 것이었습니다.(《세종실록》28/1/4)
 
세종 때 여진족 마을에 잠입하여 정탐하는 일인데 맹수며, 급류, 여진족의 감시 등이 장애물이 많았다. 이밖에도 세종 21년 8월 16일 “고산리(高山里) 체탐 패두(體探牌頭) 최만(崔萬)이 쫓아서 적이 도망갔고 또한 만포(滿浦) 체탐 패두 김유정(金有精)이 각(角)을 불며 쫓으니, 적이 또한 도망가서 상을 주었다”는 기록이 있다.
 
체탐인은 보통 구자(口子)라고 하는 5~9명이 한 조가 되어 일종의 경비초소에 배속되고 세 명 정도가 한 조가 되어 3~5일 동안 적정을 살피고 돌아오곤 하였다. 실록에서 보면 체탐인의 수가 400여명 넘게 배치된 것으로 보인다.(정명섭, 『조선직업실록』, 북로드, 2014, 35쪽)
 
이런 제도가 성종 대에 이르러는 평안도 절도사인 김백겸(金伯謙)이 치계(馳啓)하기를, “야인이 강북의 땅을 불질러 초목[草樹]이 다 타서 의지할 데가 없습니다.”하니 이에 신승선(愼承善) 등은 “조종조(祖宗朝)에서 이미 연대(煙臺)를 설치하고 또 체탐을 보냈던 것은 그것이 사려가 깊었던 것입니다. 지금 비록 야인[彼人]들이 산야를 다 불태웠다 하나, 광야의 임목이 어찌 모두 불타서 없어졌겠으며, 더구나 지금은 나뭇잎이 우거져 있을 때이니,... 청컨대 전례대로 체탐하여 변방의 수비를 엄하게 하도록 하소서.”했지만 심회(沈澮) 등이 “방어하는 것을 굳게만 한다면 비록 체탐(體探)하지 않더라도 가할 것이니, 아뢴 바에 의하여 이쪽 강[압록강]가에 있는 산의 높은 곳으로 환히 바라보이는 곳에서 후망(候望)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여 이를 따른다.(《성종실록》17/4/2)
 
세종 대 이후 국경을 지키는 제도가 취약해감을 보게 된다.
 
첩자 : 원컨대, 북방 경계에서 반간과 간첩을 행할 만한 자를 널리 모집하여,( 願於北界, 廣募可以反間行諜者) 혹은 직위로 상준다든가, 포백으로 상을 주되, 만약 이에 응하는 자가 없다면 서울의 군사와 한량으로 이를 취하게 하고, 다시 여기서도 응하는 자가 없으면 죄를 범했거나 도둑을 범하여 종[奴]으로 편입되어 귀양간 자로서 이를 취할 것입니다. (《세종실록》 18/윤6/18)
 
반간 : (야인에게 간첩을 보내는 일에 관한 논의)함길도 감사 정흠지(鄭欽之)에게 전지하기를, ... 지금 야인 중에 저들과 인연이 있는 사람을 뽑아서 저들과 사사로운 일로 인하여 반간을 행하되, 그로 하여금 그 후한 상을 탐내게 하고, 제가 반간이 된 것을 스스로 알지 못하게 한다면,(不自知其爲反間,) 저들은 실정을 숨기지 아니할 것이니, 우리는 그 계획을 시행할 수가 있게 될 것이다.(《세종실록》18/7/18)
 
반간의 운영

반간(反間)은 제가 첩자인줄 모르게 운영되어야 한다.
 
반간 : 만약 적을 제어하고자 한다면 저쪽 땅에서 오는 사람들을 모름지기 온갖 방법으로 오게 하고, 중한 상으로 불러 들여서, ‘그들을 써서 반간(反間)으로 삼고, 그들을 써서 첩인(諜人)으로 삼아’(用之爲反間, 用之爲諜人), 그곳의 산천의 형세가 험준하고 평탄한 것과 길의 돌고 바른 것과 멀고 가까운 것을 알아서, 번갈아 왕래하면서 크게 군사를 일으켜 죄목을 들어 정벌한다고 선언(宣言)하고 저들의 반응을 살펴, 방비함이 있거든 그만두고 행하지 아니하여, 이같이 하기를 서너너덧 번 한다면 저들은 반드시 태만하여져서 방비하지 않을 것이니, 그런 후에 틈을 타서 군사를 숨겨 가서 습격한다면 승리하게 될 것입니다. (《세종실록》 18/9/30)
 
세종은 북방 야인들에 대비해 필요시 정규적인 전투 외에도 반간을 이용한 거짓 정보 흘리기와 기습의 군사전략을 잘 활용했다.
 
세종 때 병조의 역할

병조의 일을 요약하면 가) 군역의 관리 나) 수세적 방어책 다) 그리고 군사훈련이라 할 때, 세종은 첫째 정기적인 군사훈련과 궁중 강무를 통해 군인을 기르고 국방 의식을 높였고 둘째 공세적 방어를 통해 지역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고 주민을 이전 시켰으며 셋째 국경 지역에서 주민이 지속적으로 생활할 수 있는 생업의 기반을 위해 진력했다. 《세종실록》에 나오는 ‘생업(生業)’ 기사는 총 59회인데 국경에 사는 야인과 왜인들에 대한 기사가 상당수 차지한다.

오랜 기간에 걸쳐 북방지역 안정과 4군 육진 설치에는 김종서, 이징옥, 정흠지, 하경복 등이 공헌 했다. 파저강 1차 전투에는 최윤덕, 2차 전투에는 이천이 앞장섰다. 행성은 140여 킬로 미터에 이르렀고, 백성을 이주시킨 것은 평안도 4차례에 약 6만 5천여 명, 함경도에 5차례 약 5만 5천여 명이었다. 영토로서의 안정을 취한 것이었다.

김광옥 수원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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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1/11/18 [13:46]  최종편집: ⓒ 세종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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