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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마을 구석구석 80] 깊은 산, 맑은 물, 넉넉한 인심 산북면 명품리
 
이재춘 기자   기사입력  2021/11/15 [09:34]
[여주세종문화재단-세종신문 공동기획]

▲ 여주시 산북면 명품리 마을 전경.     © 세종신문

명품리의 유래

명품리는 2013년 9월 하품리가 폐지되고 기존의 하품 1리가 명품리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하품리는 안두렁이, 바깥두렁이, 고촌리, 윗주어, 아랫주어 등 5개의 자연마을로 이루어져 있었으며, 품실 아래쪽이 되므로 아래품실, 하품곡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두룡리, 고촌리, 주어를 합하여 하품리라 하였다. 두렁이는 하품리에서 가장 큰 마을로 옛날 이 마을에 서재가 있었는데, 그 곳에 있는 선비들이 마을이 마치 중국의 두릉촌과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한편 양자산 줄기 아래에 위치해 마을 옆에는 긴 능선이 있는데 능선 안쪽 마을을 안두렁이, 바깥쪽을 바깥두렁이라고 한다. 거재골은 고촌리를 일컫는 말로 옛날에 군량미를 저장하는 큰 창고가 있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고추거리는 바깥두렁이 서쪽에 있는 마을이다.          
 
양자산과 용담천

여주시 산북면과 양평군 강상면, 강하면과 경계를 이루는 양자산은 수도권에 위치해 있고 산세가 부드러워 오래전부터 명산으로 알려져 왔다. 명품리를 감싸 안은 듯 솟아 있는 양자산의 높이는 709.5m로 앵자봉과 붙어 있으며 주변의 산 가운데 가장 높다. 도토리가 많다고 알려져 있으며 능선이 부드러워 산행하기에 적당하다. 

용담천은 산북면 상품리에서 발원하여 명품리, 백자리를 가로질러 북동쪽으로 흐르다 남한강으로 합류하는 지방하천이다. 용담천은 유역 내 주어천과 세월천의 2개의 소하천을 포함하고 있다. 하천연장 9.66km, 유로연장은 11km, 유역면적 47.86㎢이다. 용담천은 인근 양자산과 더불어 명품리의 훌륭한 자연경관을 이룰 뿐 아니라 명품리의 가치를 높여주고 오랫동안 주민들의 식수원과 농업용수로 사용되어 왔다. 

▲ 명품리 보호수. 400년 된 느티나무다.     © 세종신문

명품리 느티나무
 
명품리에는 보호수로 지정된 느티나무가 세 그루 있다. 첫 번째 느티나무는 산북면 명품리 706번지에 ‘여주-46’로 지정되어 있다. 야산이 끝나는 지점 농가 옆에 있는 400년 정도 된 느티나무다. 그 외에도 주어리에서 앵자봉에 오르는 도로 사이에 여주-47로 지정된 400년 된 느티나무가 있다. 또한 명품리 525번지에 여주-48로 지정된 수령 350년이 된 느티나무가 있다. 오래된 느티나무가 많다는 것은 명품리에 오래전부터 마을이 존재해 왔음을 알려준다. 

▲ 느린 숨 장독대.     © 세종신문
 
전통 장류의 명소 ‘느린 숨’

명품리에서 전통장류를 생산하고 있는 ‘느린 숨’이 있어 마을의 자랑으로 되고 있다. 최예숙 대표의 말에 따르면 ‘느린 숨’은 농업인 소규모 창업기술 시범사업장으로 지역여건에 맞는 일감을 발굴하여 농가소득 증대와 농업기반 조성을 위한 기술지원 사업을 하고 있다고 한다. ‘느린 숨’은 명품리의 청정한 자연에서 나는 먹거리와 문화를 공유하며 급하지 않고 여유 있는 느림의 가치를 추구하고 있다. ‘느린 숨’은 ‘전통장문화원’이다. 품실의 3정승 후손들에게 전해져 내려오는 전통 장류의 명맥을 잇기 위해 장류 판매 및 체험을 진행하고 있다. ‘느린 숨’은 직접 농사지은 농산물을 이용해 재래식 된장, 간장, 장아찌 등을 생산 판매하고 있다. 

▲ 명품리 소재 죽포미술관의 야외조각공원.     © 세종신문

죽포미술관

명품리 느티나무 여주-46 뒤 고촌길 26-10에 위치한 죽포미술관은 2001년 개원한 사립미술관으로 문화관광부에 등록되어 있다. 죽포미술관은 미술전시실과 야외 조각공원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개인미술품을 물론 한국, 중국 도자기와 불교미술 품이 다수 전시되어 있다. 병원을 운영하던 미술관 원장 조윤석씨는 미술품 수집가로 그림도 직접 그리고 있다. 조 원장은 그동안 수집한 미술품을 전시하고 싶어 양자산 자락의 물 맑고 공기 좋은 명품리에 미술관을 열게 되었다고 한다. 죽포미술관은 한국과 중국의 미술문화의 특징과 상호융화 과정을 비교할 수 있는 도자기 200여점, 중국유화 100여점, 중국전지 1000여점, 중국수묵채색화 400여점을 비롯한 만다라, 탱화, 태피스트리 등이 전시되어 있다. 죽포미수관은 명품리의 숨은 명소이자 여주시의 또 하나의 자랑이 아닐 수 없다. 

[마을人터뷰] 윤홍주(87) 선생

언제부터 명품리로 들어와 살게 되었나? 

1934년 용인군 구성면에서 태어났다. 명품리 노인회 총무를 맡고 있는데 나는 갑술생 87세이고 우리 안사람은 노인회 회장을 맡고 있는데 41년생 81세다. 구성면에서 분당 신도시로 이주해 한 30년 살다가 농어촌공사에서 정년퇴직하고 10년 전에 왔다. 대신면 가산리 425번지 과수원을 사서 배 농사를 짓기 시작하면서 여주에 새롭게 뿌리를 내리고 살고 있다. 
 
어린 시절은 용인에서 보냈나?

용인 구성면에서 열일곱 살까지 살았다. 초등학교는 구성국민학교를 졸업하고 신갈고등공민학교를 마쳤다. 3형제 중 막내고 아래로 여동생이 하나 있다. 신갈고등공민학교 다닐 때 6.25전쟁이 났다. 그때가 지금의 중학교 졸업반이었다. 사변이 나서 충북 황간으로 피난을 갔다가 다시 돌아왔는데 큰형은 제1국민병으로 갔고 작은형은 북한 의용군으로 끌려갔다. 큰형은 제1국민병에서 열병에 걸렸는데 치료를 못해 길에 쓰러졌는데 미군들이 붙들어 가서 거제도 포로수용소에 집어넣었다. 작은형은 의용군으로 붙잡혀 가 소식이 없다가 38선을 넘어서 도망을 왔다가 포로수용소에 끌려갔다. 우리 형님 둘 다 거제도 포로수용소에 있다가 이승만 대통령이 북으로 갈 사람은 북으로 가고 남에 있을 사람은 남에 있으라 하니까 형님들 둘 다 고향집으로 돌아왔다.  

▲ 윤홍주(87) 선생과 아내 김순열(81) 여사.     © 세종신문
 
한국전쟁 기간에 어떻게 생활 했나?

1.4후퇴 때는 우리 학생들만 다섯 명이 피난을 갔다. 먹을 것이 없으니까 유엔군 군속으로 일을 하다가 북상하는 유엔군을 따라 38선까지 갔다가 휴전이 되어서 다시 집으로 왔다. 미군들 식사당번하고 그러면서 밥만 얻어먹고 있었다. 한 1년 후에 집으로 오니 형님들은 다 군인 가고 없으니까 내가 집안일을 맡아서 했다. 우리 어머니랑 수원 비행장에서 석유를 각자 한통씩 사서 수여선 철도를 타고 양지 개나리동네에 와서 석유를 쌀로 바꿔서 식량으로 사용하고 그랬다. 석유 한통이면 쌀 두말과 바꿨다. 신갈서 수여선을 내려서 한 4km 걸어서 구성면으로 돌아오곤 했다. 

결혼은 언제 했나?

때가 되어 나도 군대를 갔다가 제대하고 구성면으로 왔다. 구성에 우리 논과 밭이 30여마지기 되었다. 농사 짓다가 농어촌공사에 시험을 봐서 입사를 해서 23년 근무했다. 결혼은 스물일곱에 했다. 우리 집사람은 용인 원삼면이 고향이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용인읍 시장에서 수예점을 하고 있었다. 결혼을 해서 분당에서 만물상회를 했는데 집사람은 가게를 보고 나는 농어촌공사에 출근하고 그랬다. 분당5일장에서 가게를 했다. 결혼하고 아들 셋을 뒀다. 
 
명품리에는 어떻게 오게 되었나?

분당에서 30년 살다가 누가 소개를 해서 대신면에서 과수원하며 노후를 보내려고 왔다. 집을 얻어 산북에서 살면서 대신면 가산리 배 과수원에 왔다 갔다 하면서 농사를 지었다. 처음에는 백자리에 살다가 한 4년 지나나서 명품리 안두렁이로 이사를 왔다. 
과수원일을 해보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1년에 소독을 8번 한다. 2천 평에 500수 배밭이다. 배가 많이 달리면 솎아내야 한다. 제초작업 해야지 봉지 씌워야지 그렇게 배를 수확해 농협에 팔다 보니까 매년 200만원씩 적자를 봤다. 내가 한 2년 해보니까 정말 힘들었다. 도저히 타산이 맞지 않아서 그만뒀다. 아들에게 물려줄 것도 안 되고 배 농사를 지으면 안 되겠다 싶어 임대를 줬다. 지금은 임차인이 배나무를 다 파내고 거기다가 인삼농사를 짓고 있다. 
 
아내 김순열 씨 : 우리가 여기 온 이유가 있다. 둘째 아들이 마흔하나에 암에 걸려서 먼저 갔다. 둘째 아들 먼저 보내고 내가 정신을 못 차리다시피 했다. 대신면 가산리에 배밭을 사서 왔다 갔다 하다가 여기 산북면을 알게 되었다. 공기도 좋고 한적해서 내가 여기에 살자고 했다. 겨울에도 따뜻한 방에서 잘 수가 없어서 맨날 문을 열어놓고 살았다. 가을 추수가 지나면 미친 마음을 달래려고 들판으로 나가 하염없이 벼이삭을 주웠다. 그렇게 주운 벼이삭을 탈곡을 해서 방아를 찧어 떡을 해서 동네사람들에게 나눠주고 그랬다. 
 
6년 남짓 살아 본 명품리는 어떤 곳인가?

명품리에 살아보니까 여기 사람들은 법 없이 살 정도로 어질고 협동심이 강하다. 마을 주민들이 노인회 후원을 잘 하고 노인회 회원들도 협력을 잘 한다. 명품리는 물 맑고 공기도 좋지만 뭐니 뭐니 해도 인심이 최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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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1/11/15 [09:34]  최종편집: ⓒ 세종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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