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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록여행 106 - 골프 그리고 호학군주
 
김태균   기사입력  2021/02/25 [11:16]
▲ 세종신문 김태균 대표     
세종대왕이 골프를 즐긴 임금이라고 하면 모두 진짜냐며 묻는다.
실록의 기록을 보면 골프와 비슷한데 이름은 격구라 불렀다. 실록의 기록을 통해 세종이 즐겼던 골프(?)경기의 모습을 보자.
 
태상왕이 임금과 더불어 비로소 신궁의 내정(內庭)에서 구(毬)를 쳤다. 
일기가 추워서 교외(郊外)에는 나갈 수 없으므로, 〈내정에서〉 이 놀음을 하였는데, 이듬해 봄에 이르러서야 그치었다. 
입시(入侍)하여 구를 친 사람은 효령 대군 이보·익평 부원군(益平府院君) 석근(石根)·경녕군 이비·공녕군 이인·의평군(義平君) 이원생(李元生)·순평군(順平君) 이군생(李群生)·한평군(漢平君) 조연·도총제(都摠制) 이징·이담(李湛)·광록경(光祿卿) 권영균(權永均)이다.
구를 치는 방법은 편을 나누어 승부를 겨루는 것이다. 〈치는〉 몽둥이는, 모양은 숟가락과 같고, 크기는 손바닥만 한데, 물소 가죽으로 만들었으며, 두꺼운 대나무로써 합하여 자루를 만들었다. 구의 크기는 달걀만 한데, 마노(碼碯), 혹은 나무로써 만들었다. 땅을 주발과 같이 파서 이름을 와아(窩兒)라 하는데, 혹은 전각(殿閣)을 사이에 두고, 혹은 섬돌 위에, 혹은 평지에 구멍[窩]을 만든다. 〈구를〉 치는 사람은, 혹은 꿇어앉기도 하고, 혹은 서기도 하여 구를 치는데, 구가 혹은 날라 넘어가기도 하고, 혹은 비스듬히 일어나기도 하고, 혹은 구르기도 하여, 각기 구멍 있는 데의 적당한데 따라서 한다. 구가 구멍에 들어가면 점수(點數)를 얻게 되는데, 그 절목(節目)이 매우 많다.(3년 11월 25일)
 
때는 겨울이다. 
추워서 교외에 나갈 수 없어 궁궐 안에서 격구를 치며 몸을 움직이는 놀이를 하는데 봄이 되어서 그쳤다 하니 겨울내내 틈만 나면 격구를 한 모양이다. 
드라마 사극에서 자주 보이는 권력다툼을 하고 술판을 벌이는 모습에 익숙한 것 외에 궁궐내에서 골프채 비슷한 걸 들고 다니면서 공을 치는 모습을 상상하기는 쉽지 않다. 기록을 통해 경기하는 모습을 상상해 보면 잔디밭은 아니지만 건물과 건물 사이의 공간들을 이용해서 와아(개구리굴)라는 구멍에 공을 치는데 그 구멍이 평지에도 있지만 섬돌 위에도 있었다 하니 상당한 기술이 필요한 일이었던 것 같다. 
앉기도 하고 서기도 해서 치는데 나르기도, 구르기도 하는 걸 보면 나름 다양한 전략이 필요한 놀이였음이 짐작된다. 놀이의 모습으로 보면 하키보다는 조금 더 정교하고 운동장이 아닌 건물의 빈공간을 이용하여 놀이를 하는 것도 차이가 있지만 현재의 골프를 연상시킨다. 
세종시대에 즐겼던 격구를 골프의 기원이라 하기에 무리가 있을 수 있지만 신선한 모습이다. 궁중속의 최고권력자들과 가족들, 근신들이 모여 옷을 편하게 입고 편을 갈라 공놀이를 하는 모습은 권력투쟁의 핵심인 궁궐내의 모습과는 쉽게 연상되지 않는다.
 
또 한편으로는 세종의 호학, 즉 학문하기를 좋아하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늘 배우기를 즐겨하고 책읽기에 관한한 첫손가락에 드는 분이다. 
왕자시절에 너무 책을 많이 읽어 아버지 태종이 모든 서책을 빼앗아간 일화는 유명하다. 하지만 그 가운데서도 병풍 밑에 남겨진 구소수간이란 편지모음집을 천 번 넘게 읽었다는 기록도 전해지는 것을 보면 세종의 호학은 천성이었나 보다.
임금이 되어서도 경연을 열심히 주최하고 참여했다. 심지어 아버지 태종이 태상왕이 되고 세종이 임금이 된 지 3년차가 되었는데도 책 읽고 토론하기를 열심히 한 세종을 두고 '과거보는 선비‘처럼 한다고 한마디 했을 정도이다.
 
정사를 보았다. 근신(近臣)에게 이르기를,
“내가 오늘 경연을 열고자 하는데, 경연 당상관(經筵堂上官)과 간관(諫官)·사관(史官)은 제외하고 강관(講官) 2, 3명으로 하여금 시강(侍講)하게 하라.”
하였다. 또 이르기를,
“내가 《자치통감강목(資治通鑑綱目)》을 보고자 하니, 변계량이 성리(性理)의 학문에 관한 글을 보기를 청하므로, 오늘 비로소 《사서(四書)》를 강(講)하게 하니, 경들은 이를 알 것이다.”
하였다. 지신사 김익정이 대언(代言) 한 사람으로 하여금 입시(入侍)하기를 청하니, 임금이 그대로 따랐다. 이날에 비로소 《대학(大學)》을 강하였다. 
임금은 본디부터 유학(儒學)을 좋아하여, 매양 맑은 새벽에 정사를 보고, 인하여 경연에 나아가서 강론하기를 게을리하지 아니하나, 궁중에 있을 적에는 글을 읽어 밤중이 되어도 그만두지 않으니, 태상왕이 그의 정신이 피로할까 염려하여, 금지시키며 이르기를,
“과거(科擧)를 보는 선비는 이와 같이 해야 되겠지마는, 〈임금은〉 어찌 신고(辛苦)함이 이같이 하느냐.”
하였다.(3년 11월 7일)
 
자치통감강목은 역사적 사실에 대한 내용과 해석을 곁들인 방대한 책으로 알려져 있다. 남송의 대학자 주희가 사마광이 편찬한 자치통감을 주석을 달아 편집한 책이다. 세종은 이 책을 보고자 했으나 변계량이 성리학의 기초를 더 튼튼히 해야 한다는 주장을 한 것이다. 때문에 대학을 논하기 시작했다.
사관의 평가가 익숙하다. ‘유학을 좋아하고, 강론을 게을리 않으며 밤중까지 글을 읽어’ 아버지가 그의 피로를 걱정하여 책읽기를 금지시켰다는 대목이다. 왕자시절의 금지와 같은 대목이다. 그리고 한마디 더 붙인다. 임금이 과거보는 선비처럼 공부하며 몸을 고단하게 해서야 되겠는가 하고.
 
세종의 호학은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그 호학이 지향하는 바가 단순한 지식욕이 아니라 백성을 위해 있었다는 대목이 실록에서 계속 읽힌다. 그가 위대한 군주로 남게 된 이유는 본질에 집중했기 때문이다. 
임금의 자리는 ‘하늘을 대신하여 백성을 다스리는(인군지직 대천이물)’ 것이라는 것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엄숙해 보이는 세종이 골프와 비슷한 경기를 하는 모습은 상상이 잘 가지는 않는다. 
여주에서는 봄이 오면 세종대왕배 골프대회를 개최하면 좋겠다. 

세종신문 대표 김태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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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1/02/25 [11:16]  최종편집: ⓒ 세종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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