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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록여행 105 - 웃음 속에 숨은 칼들
 
김태균   기사입력  2021/02/10 [10:27]
▲ 세종신문 김태균 대표     
소리장도(笑裏藏刀)란 말은 웃음 속에 칼을 품고 있다는 뜻이다. 
웃고 있으나 해칠 뜻을 품고 있을 때, 웃음 속에 날카로운 이해관계를 감추고 있을 때 주로 쓴다. 이 말이 그대로 적용되는 곳이 바로 국가 간의 외교무대이다. 그 곳에서의 진실은 웃음 속에 숨어있고 이 진의를 빨리 파악하고 대처하는 것이 외교의 기술일 것이다.
 
말 1만마리를 보내면서 조정은 사신접대를 해야 하는 번거로운 일들을 하고 있었다. 그 중에 가장 번거롭고 신경 쓰이는 일은 사신의 개인적 필요를 채워주는 일이다.
 
임금이 태평관에 거둥하여 사신을 전송할 때, 매[鷹] 그린 족자를 주었으니, 해수(海壽)의 청에 응한 것이다. 수의 성품이 탐욕이 많아서, 무엇이든지 주면 조금도 사례하지 아니하고 청구하는 것이 그침이 없었다(3년 10월 5일)
 
지금이야 각국에 파견된 외교사절은 나름의 규정에 따라 주고받는 것이 정해져 있다. 하지만 예전에는 사신이 다른 국가에 파견될 때는 그만큼 고생도 하고 황제의 대리자란 강력한 권력도 작용하다 보니 어느정도는 사욕을 채우는 것이 허용되는 분위기였다. 그러다 보니 한몫 잡아가려고 하는 사신이 대부분이다. 
사실상 욕심이 없는 청렴한 사신은 없다. 다만 축재를 하면서 우리의 입장을 최대한 반영하려는 사신이 있는것과 온갖 트집을 잡으면서 자꾸 이것저것 요구하고 협박하면서 얼마라도 더 받아내려는 사신이 있을 뿐이다. 거의 매일 사신 일행이 묵고 있는 곳으로 물건을 보낸다.
 
태상왕(태종)이 병조 판서 조말생을 보내어 사신에게 세마포(細麻布) 40필, 세모시 20필, 인삼(人蔘) 30근, 차(茶) 2말, 석등잔(石登盞) 2벌, 초구(貂裘) 1벌을 주고, 따라온 두목(頭目) 여덟 사람에게도 모두 저포(苧布)와 마포(麻布) 각 1필씩 주었다.(10월 3일)
임금이 지신사 김익정을 사신에게 보내어, 세마포(細麻布) 40필, 세모시 20필, 인삼(人蔘) 30근, 채화석(彩花席) 12장, 차 3말, 석등잔(石登盞) 2벌, 옷 한 벌, 초구(貂裘)·모관(毛冠)·이엄(耳掩)·호슬(護膝)·목화[靴] 등을 주고, 두목(頭目) 여덟 사람에게도 모두 마포(麻布) 2필, 옷·모관(毛冠)·목화[靴]를 주었다.(10월 4일)
 
이런 식이다. 
틈틈이 대접하며 마음을 얻어야 한다. 사신의 마음을 흡족하게 해 놓아야 본국에 돌아갔을 때 어긋나지 않는다. 몇 마디의 말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때로는 국가의 운명이 흔들리기도 하기 때문이다. 
사실상 사신의 공무는 간단하다. 말 1만마리를 사가는 것은 이미 얘기가 다 된 것이고, 기타 사소한 업무야 절차대로 하면 될 것이고 나머지가 무엇이겠는가. 사신이 도착하여 해야 할 공식업무는 이미 이 한장면에서 다 마무리되었다.
 
임금이 계속하여 예를 행하고, 또 칙서를 받는데, 칙서에 이르기를,
“칙서가 도착되거든, 왕은 곧 말 1만 필을 가려서 보내게 하여 국용에 쓰게 하면, 마땅히 값을 치를 것이다. 이제 소감 해수를 보내어 앞서 가게 하고 채단으로 된 안팎 옷감을 칙사(勅賜)하니, 왕은 받으라. 왕에게는 저·사·채·견 각 40필을 왕비에게는 저·사·채·견 각 20필이다.”
하였다. 예를 마치고 해수는 태평관(太平館)으로 돌아가니, 두 임금도 태평관에 거둥하여 하마연(下馬宴)을 베풀었다. 태상왕이 해수에게 말하기를,
“비록 하기 어려운 일이나, 마땅히 힘을 다할 것인데, 이러한 일에 감히 마음을 다하지 아니하겠는가.”
하니, 수가 말하기를,
“참으로 옳은 말입니다.”
하였다. 태상왕은 수에게 술을 주고 좌석으로 돌아와 앉으니, 임금이 그 좌석 앞에 나아가 꿇어앉아 술을 받아서 부복하고 마시는데, 수는 일어나지 아니하였으니, 황제의 사신이 존엄으로 누르는 것이다. 잔치를 파하고 태상왕은 신궁(新宮)으로, 임금은 창덕궁으로 돌아왔다.(9월 21일)
 
사신은 앉아있고 임금은 그 앞에서 무릎을 꿇고 술잔을 받는 모습을 지켜보는 신하와 백성들의 마음에는 울화가 치밀 것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얼굴에 웃음을 품고 있어야 함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니.
역시 사신 해수는 말로 갚는 일은 잘하고 이해관계 앞에서는 냉정하다. 두가지 사례가 그렇다.
 
태상왕이 원자(元子)를 명하여 나와서 사신을 보라 하고, 인하여 이르기를,
“이는 지금 왕의 맏아들인데, 명나라 임금에게 주달하여 세자로 책봉하려 하니, 다행히 명사(明使)는 잘 주달하여 주기 바란다.”
하였다. 사신이 이르기를,
“감히 진력하지 않겠는가.”
하면서, 원자의 손을 잡고 칭찬하기를 오랫동안 하였다. 잔치를 배설하여 해가 저물 때에 겨우 파하였다. 사신이 나갈 때에, 두 임금이 다시 중문 밖에까지 전송하고, 태상왕은 조말생을, 임금은 김익정을 보내어 태평관에 나가서 사신을 위안케 하고(9월 21일)
 
해수(海壽)가 관마(官馬) 여남은 마리를 가져다 보고 제조(提調) 조비형(曺備衡)에게 이르기를,
“만일 이 말을 타다가는 두 발이 땅에 닿겠다.” 고 하니, 비형이 이르기를,
“큰 말은 본국의 소산이 아니라.”
하였다. 수가 이르기를,
“재상들의 타고 다니는 말을 보면, 어찌 준마가 없다고 하겠는가. 마땅히 준마를 뽑아서 가져 오도록 하라.”
하였다.(9월 26일)
 
실록에는 '사신이 수강궁에 이르니, 두 임금이 중문(中門) 밖에 나아가 맞아 정전(正殿)에 들어와 다례(茶禮)를 행하고, 안구(鞍具)와 말 1필, 매[鷹] 1마리를 주었는데, 사신은 일어서서 즐겁게 받았다‘와 같은 대목이 자주 나온다. 한달을 있게 되면 거의 매일 이런 잔치를 열고 그에 걸 맞는 선물을 주어야 한다. 
외교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진실한 손님 접대가 아닌 힘과 이해의 논리를 웃음속에 포장한 관계란 것이 쉬운 일은 아닐 텐데 말이다.
 
하지만 이 와중에도 세종은 인간적인 모습을 보인다. 명나라로부터 받은 선물을 신하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임금이 승정원에게 이르기를,
“내가 왕위에 오른 뒤로부터 명나라 임금의 주는 것을 받게 된 것이, 이번이 처음이다. 경들과 같이 나누고자 하노라.”
하니, 지신사 김익정 등이 계(啓)하기를,
“명나라 임금의 은총으로 주는 것을 받으셨으면, 마땅히 어부(御府)에 장치할 것이요, 허비할 것이 아니라.”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경들은 사양하지 말라.”
하고, 바로 의정부·육조 참판 이상 도진무(都鎭撫)·육대언(六代言)·병조 참의·지사(知事)에게 단자견(段子絹) 1필씩을 각각 내려 주었다.(9월 23일)
 
마음을 얻는 일은 이런 일들이 쌓여서 단단해지지 않을까 싶다. 그것이 세종이 인재들과 함께 위대한 일을 한 힘일 것이다.
 
세종신문 대표 김태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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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1/02/10 [10:27]  최종편집: ⓒ 세종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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