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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록여행100 - 역질(疫疾)이 유행하다
 
김태균   기사입력  2020/12/30 [14:33]
▲ 세종신문 김태균 대표     
‘서울에 역질(疫疾)이 유행하다’
 
1421년 세종3년의 마지막날인 12월 29일, 세종실록의 마지막 기사의 내용이다. 공교롭게도 600년전의 한양은 전염병이 유행했다. 

올해는 코로나의 해였다. 과학이 가장 발달한 오늘날에도 전염병은 무서운 파괴력으로 생활을 압도했다. 그러다 보니 당연한줄 알았던 평범한 일상이 감사한 일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마주보고 대화하는 것조차 고마운 일이었다. 감사와 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었음을 새삼 깨닫는다. 2021년은 이 모든 상황이 종료되고 그리운 과거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세종시대에도 역병은 수시로 찾아왔다. 
한 고을이 초토화되기도 하고 집안이 몰락하는 경우도 흔했다. 예로부터 역병은 무서운 것이다. 아직 세균이나 바이러스에 대한 지식이 전무했던 당시의 상황에서는 어떻게 역병에 대처했을까.
세종실록에는 역질, 역병, 돌림병, 전염병 등의 단어로 약 60여회가 등장한다. 상세한 기사도 있고 상황만 간략히 적은 기사도 있다. 세균이나 바이러스의 존재도 모르고 병이 나면 굿을 하던 당시에는 역병이 퍼지면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처참한 광경이 펼쳐진다. 
 
금년 봄에 이르러서는 역질이 크게 유행하여 주린 사람이 병에 걸리면 곧 죽었다. 백성들이 자기 손으로 소와 말을 잡고, 나무껍질을 벗기고, 보리 뿌리를 캐어 먹이를 하며, 처자를 보전하지 못하여 처자를 버리고 도망하는 자도 있고, 혹은 아이를 길에 버리어 아이가 쫓아가면 나무에 잡아매고 가는 자도 있고, 닭과 개가 저절로 죽기도 하였다.(19년 2월 9일)
 
“금년은 역질(疫疾)이 크게 유행하여 사람이 사망하는 이가 많으므로 녹번현(綠磻峴), 향림사(香林寺) 동구(洞口)와 연계원(淵溪院) 등지에 사람의 시체를 나무에 걸어놓기도 하고 구렁에 버리기도 하여, 시체가 드러나 비바람을 맞고 썩어 문드러졌으니 화기(和氣)를 상할까 염려스럽습니다.”
하니, 임금이 놀라면서 즉시 한성부에 명하여 묻도록 하고, 예조에서는 엄중하게 검사하도록 하였다. 
또 명하기를,
“죽은 뒤에 친족이 거두어 장사할 사람이 없는 자를 매장하는 일은 어찌 옛날의 제도에 없겠는가. 자세히 상고하여 아뢰라.” 하였다.(9년 7월 9일)
 
봄이 되어 먹을 것도 떨어졌는데 역병까지 돌았다. 먹을 것을 구하지 못해 처자식을 보전하지 못하고 버리는 장면은 눈물 나게 슬픈 장면이다. 심지어 제대로 매장도 못해 들판이나 산에 버려지는 상황은 짐작만으로도 안타깝다.
또 한 집안이 풍비박산이 나는 예도 있다. 비서실 격인 승정원에서 임금에게 아뢰는 내용이다.
 
승정원에서 아뢰기를,
“사성(司成) 김최(金最)의 집에 역질(疫疾)이 크게 일어나서, 김최가 죽었고, 아들 딸 둘이 또한 죽었으며, 노비(奴婢)로서 죽은 사람도 또한 많아서 시체가 시체를 베고 있는데, 오직 김최의 아내와 노비 한두 사람이 살았으나, 이웃에서 서로 통래하지 아니하여 지금까지 안장(安葬)하지 못하오니, 신 등은 이 말을 듣고 슬픔을 견딜 수 없습니다. 상인(常人)이 이 병을 얻어 죽은 사람은 이미 거두어 장사지내게 하는 법을 만들었는데, 다만 관직이 있는 사람을 거두어 장사지내게 하는 법은 만들지 않았으니, 청컨대 한성부(漢城府)에서 거두어 장사하게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한성부(漢城府)에 개유(開諭)하여 김최와 그 아들 딸들에게 관(棺)을 주어 거두어 장사지내고, 노비는 이미 상정(詳定)한 법에 의거하여 거두어 장사지내고, 그 생존한 사람에게는 모두 진휼(賑恤)을 더하라.”
하였다.(14년 7월 30일)
 
한 집안이 몰락한 예다. 암담한 상황이었을 것이다. 그래도 다행히 임금에게 보고되어 나랏님의 지원에 의한 마무리는 할 수 있게 되었다. 일반 백성들이 이런 일을 당했다면 과연 어땠을까. 
전염병이 돌자 당시 국가적인 조처 중에 하나는 한양의 모든 공사를 정지하는 것이었다. 사람들이 모이면 전염병이 퍼질 것이고 그럼 더 큰 문제가 발생할 것을 염두에 둔 조치이다. '전염병은 여러 사람들이 모인 가운데서 잘 퍼지는 것‘이란 김종서의 발언은 전염병을 막기위한 거리두기의 기본원리인가 보다.
 
임금이 말하기를,
“지금 안평·영창(迎昌)의 집 일을 가지고 본다면 서울 안에 전염병이 크게 유행하는 것을 알 수 있으니, 그것을 오부로 하여금 구료에 힘쓰게 하라. 또 성중(城中)의 영선(營繕)하는 공사가 한두 가지가 아니어서 경기의 선군들도 또한 와서 역사에 나가고 있으니, 이 무리들이 아마 집을 떠난 채 전염병에 걸린다면 반드시 〈죽음을〉 면하지 못할 것이다. 그 중 내월의 역사에 나가기 위하여 올라오는 도중에 있는 선군은 통첩을 내어 돌아가게 하는 것이 어떠할까.”
하니, 종서 등이 아뢰기를,
“전염병은 여러 사람들이 모인 가운데서 잘 퍼지는 것입니다. 신 등의 생각이 이에 미치지 못하였는데, 주상의 말씀은 옳습니다.”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역사에 나아가는 선군은 내 생각으로는 그들이 반드시 충분한 식량을 갖고 오지 않았을 것이다. 만약 그들을 선소(船所)로 가게 한다면 그것은 그들을 굶주리게 하는 것이니, 그들을 죄다 풀어주어 집으로 돌아가게 하는 것이 어떨까.”
하니, 종서 등이 아뢰기를,
“당번 선군들을 물러가 제집에서 쉬게 한다면 이 또한 착하신 은전(恩典)이겠습니다.”
하매, 즉시 병조에 명하여 놓아 주어 돌아가게 하고, 이어 서울 안의 긴급하지 아니한 영선 공사를 정지하라고 명하였다.(14년 4월 22일)
 
세종의 정치에서 중요한 지점이 있다. 
‘비록 하늘의 운수가 그렇더라도 사람이 할 일은 최선을 다해서 해보자’는 태도다. 그는 언제나 더 나은 방법, 더 잘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는 일에 마음을 썼다. 이런 일이 있을 때에는 먼저 공부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일이 많았다. 역질이 퍼지는 지역의 수령들에게 약이름을 지시(처방)하기도 한다. 디테일에 강한 임금이었다. 디테일에 악마가 있다지만 동시에 디테일에 해법이 있기도 하다. 
비록 그것이 반드시 꼭 맞는 해법이 아니더라도 관리나 의료인들 입장에서는 간단히 넘길 문제가 아니었을 것이다. 
 
“내가 들으니 지방 각도에 역질이 퍼져 있다 하나, 그 고을 수령들이 마음을 써서 살리려고 하지 아니 한다고 하니, 그들에게 향소산(香蘇散)·십신탕(十神湯)·승마갈근탕(升麻葛根湯)·소시호탕(小柴胡湯) 등을 약재로 제작(劑作)하게 하고, 의학 생도(醫學生徒)들을 시켜서 병이 나는 대로 바로 진찰하여 치료(治療)하도록 하고, 또 각기 그 근처에 있는 무녀(巫女)들을 시켜 무시(無時)로 출입하며 죽을 쑤어 공급하게 하고, 항상 고찰하여 비명에 죽는 일이 없도록 하라.”(6년 2월 30일)
 
세종신문 대표 김태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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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0/12/30 [14:33]  최종편집: ⓒ 세종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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