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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마을 구석구석 37] 태고의 역사를 간직한 여흥동 연양동
 
이재춘 기자   기사입력  2020/10/30 [13:51]
[여주세종문화재단-세종신문 공동기획]

▲ 여주시 여흥동 연양동 늪말 전경.     © 세종신문

연양동의 유래

연양동은 본래 여주군 주내면의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연촌과 양촌을 병합하여 연양리라 했다. 그 후 2013년 여주군이 시(市)로 승격되면서 연양리에서 연양동으로 개칭되었다. 연양동은 남한강가에 자리 잡은 동네라 주변에 늪이 많고 늪과 관련된 이야기가 많이 전해 오는 마을이다. 자연마을로는 연양리에서 가장 큰 동네로 햇볕이 잘 드는 동네라 하여 붙여진 ‘양촌’이 있다. 연양리 북쪽에 있는 마을로 주변에 크고 작은 늪이 여러 개 있어 늪이 생긴 연촌(늪말)이 있다. 연촌에는 용늪, 그이늪, 조개늪 등 8~9개의 늪이 있었다 하나 1972년 대홍수 때 모두 메워져 남아있는 게 별로 없다. 현재 이곳 주변은 금·은모래지구 관광지가 조성되어 있다. 또한 연양동에는 조포나루와 이호나루가 있다. 조포나루터는 천송리와 이어지는 나루터로 지금의 연양동과 신륵사 국민관광지와 연결된다. 이호나루터는 과거 경기도와 강원도를 잇는 42번 국도를 연결하는 나루터로 유명했다.

▲ 강변공원에 조성된 구석기시대 움집모형.     © 세종신문
 
연양동 구석기 유적

연양동 구석기유적은 연양동 산 348-4번지 일대에 위치한다. 유적은 영진아파트단지 조성을 위해 터파기 공사를 진행하고 있던 중 세종대학교 박물관에 의해 발견되었으며, 기전문화재연구원에 의해 시굴 및 발굴조사가 실시되었다. 시굴조사는 2004년 5월부터 8월까지 진행되었으며, 이미 영진아파트단지 터파기 공사가 진행되어 기반암이 노출된 부분을 제외한 면적(약 11,551㎡)에 대해 조사를 실시하였고, 그 결과 크게 2개의 지점(약 2,575㎡)에서 구석기시대 석기들이 집중적으로 출토되었다. 이러한 성과를 바탕으로 발굴조사계획이 수립되어 2004년 9월부터 2005년 4월까지 2개 지점에 대한 발굴조사를 진행하였다. 

유적의 발굴결과 1,784점의 석기가 출토되었으며, 유물이 출토되는 층위는 하부토양쐐기 바로 아래에 위치하는 적갈색 점토층의 상부이다. 이를 통해 유적의 문화층은 하나로 파악된다. 현재 하부 토양쐐기 형성에 대한 의견은 학자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으나 일반적으로 약 6만 5,000년 전에 형성되었다고 볼 때, 유적의 연대는 그 보다 이른 시기에 속하는 것으로 판단된다. 유물은 구릉의 정상부에서 집중적으로 출토되었고, 출토된 석기의 종류로는 몸돌, 격지, 부스러기, 모룻돌, 자갈돌, 찍개를 비롯한 연모 등이다. 이중 대부분이 석기제작과 관련된 유물이고, 몇 개체의 부합유물이 확인되고 있다. 따라서 유적의 성격은 단기간이라도 석기제작이 이루어졌던 석기제작지로 판단된다.

여주 연양동 구석기유적은 남한강가에 형성된 야외유적으로 여주지역에서는 처음으로 발굴조사가 실시된 유적이며, 이는 지표조사를 통해 다수의 구석기시대 유물들이 찾아진 여주지역 구석기문화의 성격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를 제공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 금은모래강변공원 산책로.     © 세종신문

금모래은모래 유원지

금모래은모래 유원지는 여주 최대의 시민휴식공간이다. 금모래은모래 모래톱은 60년대 까지만 해도 수도권 최대의 피서지였는데 팔당댐이 생기면서 상수원보호 차원에서 물놀이가 금지되었다. 4대강사업 전까지는 강변모래톱 폭이 200m 정도로 그 규모가 엄청났다. 4대강사업이후에는 강변 산책로와 캠핑장, 강변공원 등을 조성하여 여주시민들은 물론 수도권 시민들의 쾌적한 휴식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최근에 여주시에서 강변공원을 새롭게 단장 해 순환산책로를 만들어 시민들이 마음껏 강변을 걸을 수 있도록 했다. 1.2km의 순환산책로는 금은모래강변공원의 외곽을 따라 자전거도로와 황톳길로 조성됐으며 산책로가 공원시설보다 높은 위치에 있어 산책하는 동안 금은모래 강변공원을 조망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24만여㎡의 대 면적을 자랑하는 금은모래강변공원에는 아이누리 놀이터와 함께 야생초화원, 잔디마당 등을 포함하고 있어 코로나19의 스트레스 속에서 소소한 '힐링‘을 즐길 수 있다. 강변공원 일대는 연양동의 늪말로 과거에 여러 개의 자연 못이 있었는데 그 연못이 홍수와 관리 부족으로 생태적 가치를 충분히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쉽다. 

▲ 신륵사 앞 남한강을 지나는 황포돛배.     © 세종신문

황포돛배

황포돛배는 황톳물을 들인 돛을 단 배를 말하는데 고려 시대부터 1950년대까지 남한강의 중요한 수상운송 수단이었다. 하남시 배알미동에서는 예부터 배를 만들어 한강 이북지방을 드나들 수 있는 강배인 돛배를 제공했는데 대부분 황포돛배라는 명칭으로 많이 남아 있다. 황포라는 명칭은 돛의 색깔이 누렇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며, 한강의 역사를 말하는 대표적 상징물이기도 하여서 서울 월드컵경기장은 황포돛배가 모여 있는 형상으로 경기장을 조성하기도 하였다. 조선시대 한강을 왕래하면서 상류로는 단양, 제천에서부터 하류로는 마포에 이르기까지 식량, 땔감, 소금 등을 수송하는데 사용되었다. 현재는 연양동 일대 관광 상품으로 여주시와 개인사업자가 화석엔진으로 가동되는 황포돛배를 운영하고 있다.  

마을人터뷰 신동수(64) 선생

연양동에서 얼마나 오랫동안 뿌리를 내리고 살아왔나?

집안 대대로 연양동을 터전으로 살아왔다. 나는 1957년에 연양동에서 태어나 여주초등학교, 여주중학교, 여주농고를 나왔는데 학교를 다 걸어 다녔다. 집 앞에 있는 길도 예전에는 소로 길이었다. 양촌이 연양1통, 늪말이 연양2통인데 마을 뒤로 전원주택단지가 구성되어 사람이 많이 산다. 대부분이 외지에서 들어온 사람들이다. 나도 젊어서 잠깐 나가서 살다가 다시 들어와 여기서 살고 있다. 옛 고향집에서 92세 어머니를 모시고 살고 있다. 우리 집이 50년 이 넘었는데 우리 아버지께서 내가 두 살 때 세상을 뜨셔서 어머니가 친정 오빠에게 부탁해서 집을 지었다. 우리 어머니는 서른두 살 때 홀로 되셔서 60년을 사셨다. 대단하신 분이다.  

▲ 신동수 선생.     © 세종신문

강변에 살면서 남한강에 대해 추억이 많을 것 같은데….
 
연양동에는 예전에 나루터가 두 군데 있었다. 하나는 조포나루고 또 하나는 이호나루다. 조포나루는 사람들만 건너다녔지만 이호나루는 사람도 건너다니고 버스도 건너다닐 정도로 컸다. 버스가 여주를 지나 강원도로 가려면 이호나루에서 나룻배로 건너야 했다. 이호나루가 최고로 큰 나루다. 우리 종중산이 강천 쪽에 있어서 할아버지 상여가 이호나루에서 나룻배로 건너갔다. 장마가 지고나면 이 아래 금모래은모래에 모래가 수북이 쌓이고 또 어떤 때는 큰물이 모래를 쓸어내리면 자갈만 있는 때도 있고 그랬다. 우리가 어렸을 때 모래밭이 엄청나게 컸다. 고무신을 손에 들고 모래밭을 냅다 뛰어가다 발이 뜨거워 모래를 파서 시원한 모래가 나오면 섰다 가고 그랬다. 모래사장 폭이 200m가 넘었다. 여름에 금모래은모래 유원지가 열리면 동부고속 버스가 금모래은모래에서 먼저 출발해서 여주터미널에 들려 사람들을 싣고 서울로 올라가고 그랬다. 하루에 버스가 7~80대가 들어왔다. 버드나무, 미루나무 그늘아래서 모래사장에 사람들이 빼곡했다. 팔당댐이 생기고 나서부터는 남한강에서 수영을 못하게 막았다. 
 
연양동에서의 삶은 어땠나?

난 국가유공자다. 군대에서 지뢰사고로 발을 다쳐서 고향에서 그냥 일을 조금씩 하며 살고 있다. 군대 병장 때 발목지뢰를 밟았는데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앞굽으로 밟아서 발목이 날아가지는 않고 발이 반만 절단되었다. 제4땅굴이 발견된 강원도 양구 펀치볼 DMZ에서 수색 중에 부상을 입었다. 지뢰사고로 부상을 입은 부하를 후송하다 나도 그만 지뢰를 밟았다. 수색을 할 때는 통로를 개척하는데 그 폭이 좁다. 지뢰사고로 부상을 당한 부하를 네 명이 들것으로 들고 나오다 보니 통로가 너무 좁아 가장자리 지뢰를 밟은 것이다. 그 아우가 자책감에 자꾸 찾아오고 그래서 엄청 구박을 해서 찾아오지 못하게 했다. 그 친구가 후에 목사가 되었다는 소식은 들었다. 동기들은 32개월 했는데 나는 39개월 만에 부산 통합병원에서 제대를 했다. 부산통합병원에서 발 절반 날린 값으로 80만원 받고 제대했다. 제대하고 고향으로 왔는데 국가 유공자들은 정부차원에서 회사에 취직을 시켜주어 여주에 있는 직장에 취직을 했다. 야구공 만드는 회사였다. 그 회사가 지금도 여주에 있는데 요새는 야구공을 외국에서 수입하고 있어서 다른 유통업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연양동의 지금 모습에 만족하나? 

옛날에는 여기가 아늑하고 참 좋았었는데 지금은 외지 사람들이 많이 들어와서 살기가 좀 삭막하다. 외지 사람들이 땅을 사서 들어오면 울타리부터 먼저 치고 심지어는 농로 길도 막아버린다. 여기는 90%이상이 외지인들이다. 새마을운동 하고 그럴 때는 서로가 협의해서 땅을 내놓고 길을 만들고 그랬는데 지금은 자로 금을 그어 서 자기 땅이라고 농로도 막아버리니 참 기가 막힐 일이다. 그만큼 세상이 삭막해졌다. 이제는 세상이 달라져 연양동도 외지 사람이 더 많이 산다. 그건 어쩔 수 없다. 옛날로 돌아갈 수는 없지만 모든 마을 사람들이 서로 돕고 협력하며 조금씩 양보하고 이해하며 살 수 있었으면 한다. 그런 날이 올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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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0/10/30 [13:51]  최종편집: ⓒ 세종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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