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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록여행 76 - 세종의 회의법
 
김태균   기사입력  2020/05/28 [10:52]
▲ 세종신문 김태균 대표     
일이 만들어지고 추진되는 과정에는 거의 대부분 회의가 있다. 그런데 모여서 의논하는 과정인 이 회의를 진행하는 일이 참 만만치 않다. 누군가 한사람이 주도하면서 의견이 모아지지 않기도 하고, 말없는 몇 사람이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앉아 있을 때도 있다. 권위를 앞세우면 회의가 잘 진행되지 않는다. ‘뭐하러 모이라고 그래. 자기가 알아서 하지’라는 마음이 싹트기도 한다. 그렇다고 모든 의견을 다 듣는다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고 시간을 조절하는 것도 그렇다. 

회의는 어느 시대에나 있어왔고 지금도 모든 조직과 개인사이에는 회의가 있다. 왕이라는 신분을 가진 절대 군주였던 세종은 어떤 회의를 했을까. 세종의 회의장면을 돌아보며 몇 가지 원리들을 유추해 본다.
 
1. 회의시간에는 지나친 예의에 집착하지 마라.
 
많은 신하들이 임금의 앞에 드나들면서 모두 땅에 엎드리니, 임금이 말하기를,
“내가 들으니, 중국의 사대부들은 황제의 앞에 나아올 때나 물러갈 때에 절대로 머리를 숙이고 땅에 엎드리는 예절이 없다고 한다.” 하였다.(5년 7월 3일)
 
어전회의를 하는 자리에서 신하들이 땅에 엎드리는 것을 하지말라고 당부했다. 곧은 자세로 회의에 임하라는 말이다. 그래야 자신의 의견을 기탄없이 말할 수 있게 된다는 얘기다. 의견을 듣고 지혜를 모으자는 자리인데 권위를 의식한 예에 매이면 이러한 생각이 자연스레 나올 수 없다. 위의 장면에서 세종의 특이한 화법이 있다. 직접 자신의 의견을 말할 때는 자주 고전과 중국의 사례를 인용해 자신의 생각을 드러낸다. 거부감을 없애고 직접적인 지시처럼 보이지 않게 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2. 왕의 잘잘못을 모두 직언하라.
 
임금이 말하기를,
지금으로 말하면 비록 무사하고 평안하다고 하나, 옛날에 미치지 못함이 분명하다. 그런데 아직 과감(果敢)한 말로 면전에서 쟁간(爭諫)하는 자를 보지 못하였으며, 또 말하는 것이 매우 절실 강직하지 않다. 어째서 지금 사람은 옛사람 같지 못한가. 각자가 힘써 생각하여 나의 다스림을 도우라. 더구나, 대간(臺諫)은 언책(言責)을 직임으로 삼는 것이니, 해야 할 말이 있으면 반드시 다 말하라(7년 12월 8일)
 
세종은 경청의 왕이었다. 어전회의에서는 90%정도가 듣기에 집중했다. 그 중에서 반드시 경계한 것이 아부성 발언이다. 한 가지에 3가닥의 벼 이삭을 발견한 것을 두고 임금의 은덕이라고 칭송하자 이를 야단치며 경계하기도 했다. 사실 리더의 위치에서 자신의 잘못을 지적하는 사람, 참 애매하다. 직언하라 해 놓고 직언하면 불편하다. 인간의 본성일터, 이를 지혜롭게 하는 사람이 명신이다. 충신은 목숨을 내놓고 직언하지만 명신은 깨닫도록 우회적으로 심기를 살펴가며 이야기한다. 회의에서 허심탄회하게 문제를 얘기하면서도 나름의 룰은 있을 터이다. 하지만 세종은 이런 모든 일에서 권위를 내세우지 않았다. 
 
3. 긴급사안이 발생하면 한장소에 모여 의논하라.
 
임금이 명하기를
“무릇 의논의 대상이 될 만한 공사는 정부(政府)나 여러 조(曹)가 한 장소에서 가부를 회의하여, 서로 논란한 뒤에 계달(啓達)하는 것이 옳다” 하였다.
 
조속히 결정해야 하는 공사의 경우를 앞두고 내린 명령이다. 공사 하나를 진행하는데 관여되는 관청과 관리들이 많다 보니 여러 부서에서 중복된 서류를 꾸미고 여기저기 의논하러 다니는 것을 두고 한 명이다. 관련자들이 많고 사안이 시급한 경우는 관련부서의 실무자들이 직접 모여서 의견조율을 매듭지으라는 명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4. 소수의 의견도 경청하되 한사람의 말만으로 결정하면 안 된다.
 
임금이 사람을 시켜 전지하기를,
“경의 뜻은 잘 알았으나, 한 사람의 말만 가지고 작정할 수 없으니, 삼의정(三議政)과 변 참찬(卞參贊)에게 다시 의논하라.” 하였다.
 
허조란 신하가 궁중의 상사예법에 대한 의견을 상소하자 이에 대응한 임금의 말이다. 당시 대부분의 신하들은 자유롭게 임금에게 상소를 올리고 그에 대한 논의를 할 수 있었다. 그 중에는 아주 소수의 의견들도 있고 이 또한 자유롭게 개진되었으나 중요한 결정에 대해서는 여러사람의 의견을 다시 구하는 태도를 보인다. 우리도 좀 친하거나 신뢰하는 사람의 의견을 따라 자신의 의견인양 관철시키려 하는 모습을 종종 보게 된다. 소수의 의견도 존중하되 다양한 의견을 종합하여 결정하는 모습은 매우 민주적인 모습이다.
 
5. 모든 말을 다 듣지만 그대로 따르지는 않았다.
 
허조(許稠)가 아뢰기를,
“백성(部民)의 원통하고 억울함을 호소하는 소장(訴狀)을 수리하여, 관리의 오판(誤判)한 것을 처단하게 하는 것은 존비(尊卑)의 구분(區分)을 상실할까 두렵습니다. 원컨대 전일 소신이 헌책(獻策)한 것에 따르게 하소서.” 하매, 임금이 말하기를,
“고금 천하(古今天下)에 어찌 약소(弱小)한 백성은 억울함도 말하지 못할 이치가 있을 수 있겠는가. 경의 뜻은 좋지만, 정사로서 실시하기에는 정당하지 않다.” 하였다. 
조(稠)가 물러가니, 임금이 안숭선에게 말하기를,
“조는 고집불통(固執不通)이야.” 하니, 숭선이 아뢰기를,
“정치하는 도리는 아랫 백성의 심정이 위에 통하게 하는 것입니다. 서경(書經)에 말하기를, ‘필부필부(匹夫匹婦)가 그 뜻을 펴지 못하고 자진(自盡)하게 되면, 남의 임금 된 자는 함께 더불어 그 공을 이룰 사람이 없을 것이다.’고 하였습니다. 천하에 어찌 원통함을 호소하는 소송을 수리하지 않는 정치가 있겠습니까.”
하매, 임금이 웃으며 말하기를,
“그대 말이 내 마음에 꼭 맞는다. 이제부터 수리하여 처리하게 하고, 그 소장(訴狀) 때문에 관리에게 죄주는 일이 없게 한다면 거의 두 가지가 다 원만할 것이다. 이것으로 전지(傳旨)를 내리게 하라.” 하였다. (15년 10월 23일)
 
백성들이 관리들의 횡포나 문제를 고소할 수 없게 하자는 의견을 올렸다. 상하의 구분이 없어진다는 논리다. 이름하여 '부민고소 금지법‘이다. 하지만 세종의 생각은 달랐다. 약한 백성이 억울함을 말할 수 없는 이치는 없는 것이라는 입장이다. 허조라는 신하의 말을 다 듣고 나서 그가 나가자 그를 고집불통이라고 한마디 했다. 그리고 비서실장의 의견을 들으며 내용을 조율하는 장면이다. 
 
이제 집단 지성의 시대를 열어갈 수 있다.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과점들을 모아 그 이상의 해법들을 찾아 나설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나를 따르라’는 카리스마 보다는 ‘우리 의논합시다’가 더 낫다. 

세종신문 대표 김태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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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0/05/28 [10:52]  최종편집: ⓒ 세종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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