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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마을 구석구석 15] 한국 천주교 태동지 산북면 주어리
 
이재춘 기자   기사입력  2020/05/20 [14:27]
[여주세종문화재단-세종신문 공동기획]

▲ 여주시 산북면 주어리 마을 전경.     © 세종신문

주어리의 유래

산북면은 원래 금사면에 속해 있었으나 1970년에 산북출장소를 설치하여 송현, 상품, 후리, 하품, 백자, 용담의 6개 법정리를 관리하다가 1989년에 산북면으로 분리 승격되었다. 주어리는 윗주어, 아랫주어 두 개 자연마을로 구성되어 있는데 하품리에 포함되어 있다가 2013년 여주시로 승격되면서 하품리가 주어리와 명품리로 분리 되었다. 윗주어는 약 500여 년 전에 청주 한 씨들이 씨족마을을 이루고 살았고 아랫주어는 약400여 년 전에 박 씨들이 씨족마을을 이루고 살기 시작했다. 현재는 120가구 정도가 4km의 긴 주어계곡에 흩어져 살고 있다. 

▲ 주어사지.     © 세종신문
 
주어사지와 한국 천주교의 태동

주어리 앵자봉 동쪽에 있는 주어사지는 1779년(정조3년) 남인계열 성호학파의 좌장 권철신의 주도로 한역서학서(漢譯西學書)의 강학이 이루어진 장소로서 한국천주교의 태동지다.

당시 강학에 참석한 인물은 정약전, 김원성, 권상학, 이총억 등이었고 후에 소식을 듣고 이벽이 가담하였다. 이 강학의 연대는 달레(Dallet, C. C.)의 『한국천주교회사』에 1777년으로 되어 있으나 우리나라 사료의 신빙성이 인정되어 기해년(己亥年)인 1779년으로 보는 것이 옳다고 한다.

강학의 내용은 주로 유교경전을 통하여 우주와 인간의 본질과 근본문제를 다루는 것이었으며, 이 강학에서는 한역서학서를 통한 천주교 교리의 검토도 집중적으로 이루어져 강학을 통학 학문탐구로 시작한 서학이 신앙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조선인 최초로 천주교 세례를 받은 이승훈(베드로)의 『만천유고(蔓川遺稿)』에는 기해(己亥) 12월에 이곳에서 이벽과 정약전 등이 「천주공경가(天主恭敬歌)」와 「십계명가(十誡命歌)」를 지었다는 기록이 있다. 강학 장소에 관하여서 다산 정약용이 직접 쓴 『여유당전서(與猶堂全書)』 「녹암권철신묘지명」에는 ‘천진암주어사’라고 기록되어 있는 반면, 같은 책의 「선중씨묘지명」에는 ‘주어사’로만 되어 있어 학자들 간에 논란이 벌어지고 있으나 굳이 어느 한 장소로만 국한시키려는 것은 무리이며 두 장소에서 강학이 이루어졌을 것이라는 것이 일반론적이다.

18세기 후반에 권철신의 주도로 정약전, 이벽 등이 주어사지와 천진암에서 강학을 통해 서학을 탐구하는 과정에 천주교를 접하게 된 것을 한국천주교의 시작으로 보고 있다. 주어사에서 시작한 한국천주교는 유학자들이 불교 사찰에서 천주교를 처음 접했다는 것과 외국 선교사의 선교를 통해서가 아니라 자체적으로 학문을 탐구하는 과정에 자연스럽게 천주교를 받아들였다는 것이 특징이다. 따라서 주어사는 종교화합의 상징이면서 한국천주교의 주체성과 독자성이 확립된 곳이라고 할 수 있다.

▲ 주어사지로 가는 길 초입에 서 있는 느티나무 두 그루.     © 세종신문

500년 역사를 간직한 느티나무 두 그루
 
주어사(走魚寺)에는 한 스님이 절터를 찾던 중 잉어를 따라가 보라는 꿈을 꾸고 실제로 개울을 거슬러 올라가는 고기를 따라가다가 좋은 터를 발견하여 절을 지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아랫주어에서 주어사지로 올라가는 앵자산 초입에는 500년 가까이 된 느티나무가 두 그루가 서 있다. 우리민족은 예부터 오래된 느티나무를 마을을 지켜주는 상징으로 여겨 왔다. 느티나무는 가지가 넓게 퍼지는 특성이 있어 그늘이 많아 정자 근처에 많이 심었다. 느티나무, 팽나무, 은행나무를 3대 정자나무라고 말한다. 옛날에 느티나무를 20리마다 심어서 스무나무 혹은 시무나무라고도 했다.

주어사가 언제 시작되었고 언제 폐사되었는지 알지 못하는 조건에서 이 느티나무가 주어사와 어떤 인연이 있는 지 알 수 없지만 주어사를 오르내리는 스님들과 많은 신자들 그리고 시대를 이끌어간 선각자들의 쉼터가 되었을 것이다. 주어리 느티나무가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지만 길가에 쉼터도 없이 자리 잡고 있어 오가는 사람들이 한번 쳐다보고 갈 뿐이다. 

▲ 나뭇가지에 가려진 각시바위.     © 세종신문

각시바위 신랑바위
 
아랫주어 마을 좌측 앵자산 초입에는 각시바위가 있고 건너편 양자산 중턱에는 마을 주민들이 신랑바위라고 부르는 바위가 있다. 지금은 우거진 나무에 가려 잘 보이지 않지만 바위의 형상이 신랑이 예복을 입고 있는 형상을 하고 있고 주변에 병풍을 친 듯한 모양의 병풍바위가 있다.

각시바위는 마을주민들이 집에서 방문을 열었을 때 이 바위를 보는 사람이 바람이 난다고 하여 마을에서 보이지 않도록 각시바위 앞에 소나무를 심어 바위를 가렸다는 이야기가 예로부터 전해 오고 있다. 주민들은 각시바위 주변의 나무에는 절대로 손을 대는 일이 없으며, 여기에 들어가는 것도 금기시하여 예전에는 낙엽채취도 삼가 했다. 때문에 주변과 비교하여 이 바위 주변은 항상 나무가 울창하기 때문에 밑에서 이 바위가 잘 보이지 않는다.

한편, 각시바위가 있는 산의 주봉인 앵자봉에서 광주 쪽으로 조금 내려가면 견바위가 있다. 윗주어에 터를 잡은 청주 한씨(韓氏) 장수가 전쟁에 패하여 도망쳐올 때 이 바위를 기어서 넘었다는 전설에 따라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 신랑바위가 있는 양자산 자락.     © 세종신문

주어사지 둘레길
 
산북면은 주어리 주어사지에서 금사면 주록리에 위치한 동학 제2대 교주 최시형 묘소까지 철쭉이 군락을 이루는 둘레길 조성을 계획 중이다. 이곳에 둘레길이 조성되면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서학과 동학이 만나는 상징적인 장소에 둘레길이 조성된다. 또 한편으로 산북면은 용담천 디딤길(둘레길)을 준비하고 있다. 용담천은 산북면을 시작으로 양평군 강상면 세월리에서 남한강과 만나는 총길이 9.66km의 지방하전이다. 용담천 디딤길은 1코스 행복한 장터길, 2코스 물따라 사색길, 3코스 물새, 산새 노래길을 기본 둘레길로 하여 산북의 중심을 흐르는 용담천의 자연환경과 생태보전을 도모하고 이 길들을 통해 자연의 정직함을 닮은 마음을 키워가는 힐링의 길이다. 

주어사지 둘레길은 주어리 마을회관 주차장에서 500년 느티나무를 지나 임도를 따라 문바위계곡을 지나 주어사지를 둘러본다. 이어서 임도를 따라 돌다가 홍개울계곡을 지나 윗주어 마을로 내려오는 약 7km로 약 2시간 정도 걸을 수 있는 산길이다. 지금도 이 길은 임도가 나 있어서 누구나 걸을 수 있고 주말에는 산악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 많이 이용하고 있다. 현재 여주시가 용역설계 중에 있는 주어사에서 최시형 선생 묘까지 연결된 둘레길에 주어리 둘레길도 일부 포함되기 때문에 마을주민들은 여주시가 같이 개발해서 이 둘레길이 주어리의 관광명소가 되기를 바라고 있다. 

[마을人터뷰] 주어리 박성관(65) 이장
 
주어리에 얼마나 살았나?

5대째 살고 있다. 아랫주어에서 1956년에 8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상품초등학교를 마치고 중고등학교는 가까운 양평에서 다녔다. 그때는 양평읍까지 가는 버스가 없어서 양평에서 하숙을 했다. 중학교 때는 강상나루터에서 나룻배를 타고 양평읍으로 건너다녔다. 군대 제대하고 농협에 들어갔는데 30년 근무하다 명예퇴직하고 지금은 동네일을 보고 있다. 여기 주어리는 120가구 정도 된다. 주민이 250명인데 원주민 30% 외지에서 들어와 사는 사람 70%다. 외지에서 많이 들어왔다는 것은 자연환경이 살기는 좋다는 것인데 반면 원주민들이 먹고 살 수 있는 조건은 좋지 못하다는 것이기도 하다. 
 
▲ 여주시 산북면 주어리 박성관 이장.     © 세종신문

주어리의 특징은 무엇인가?

주어리는 마을의 90%가 산이다.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먹고 살기가 정말 힘들었다. 농사는 밭작물인 보리, 밀, 감자, 고구마 이런 거를 화전에 의존해 지어먹었다. 논은 거의 없었다. 참나무 숯을 구워서 파는 사람도 더러 있었고 최근에 와서 주민들이 버섯 농사를 좀 지었는데 그나마도 잘 안되어 지금은 몇 집 없다. 그래도 우리 집에는 논이 좀 있었다. 이맘때 곡식이 떨어지면 장리쌀을 받으러 오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그 당시 장리쌀 한말에 3일 품을 팔아야 했다. 그 시절에는 모를 심으면 바가지 그릇으로 밥을 먹었다. 남의 집 일가면 바가지 그릇이 많았다. 조롱박을 잘라서 뜨거운 물에 튀겨서 긁어내고 말려서 그릇으로 사용했다. 
 
주어리의 발전 전망이 있나?

주어리는 산을 활용해서 관광산업을 발전시켜 주민들의 소득원을 만들어야 한다. 양자산, 앵자봉과 같은 산과 주어사와 같은 문화자원을 잘 결합하고 천혜의 자원인 주어리 계곡을 활용하면 주어리는 최고의 관광지로 될 수 있다고 본다. 주어사지 둘레길 조성에 대해 시에서 용역검토 중이다. 매주 토요일 마다 주어사지 탐방을 한다. 주어사지성역화위원회를 구성해서 천주교, 불교, 기독교와 상관없이 누구나 관심 있는 사람들이 모여 주어사지 둘레길을 탐방한다. 마을 주민들과 외지에서 천주교, 불교, 유교 이런 분들이 주로 온다. 가끔 외국 사람들도 참여한다. 천주교가 대한민국에 언제 어디서 어떤 경로로 전파가 되었는지 정말 궁금한 점이 많다. 주어리는 여주시 관광명소로 발전시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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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0/05/20 [14:27]  최종편집: ⓒ 세종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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