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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록여행 65 - 공평하지 않다면 엄중히 논죄하라
 
김태균   기사입력  2020/02/14 [10:34]
세종은 효자였다. 임금의 신분으로 있으면서도 어느 아들도 행하기 어려운 정성을 다했다. 주위의 신하들도 감동했다. 오히려 몸이 상할까 염려했다. 릉에 바치는 지문에 이렇게 적었다.

‘주상은 곁에 모시고서 부채[扇]로 서늘하게 하며 침석을 보시고 친히 탕약(湯藥)을 받들어 무릇 구료하심이 지극하지 않은 것이 없었으나’ 

보름쯤 지나자 나랏일이 지체되는 일이 벌어졌다. 영의정 유정현이 나섰다.
 
영의정부사 유정현이 백관을 거느리고 전(箋)을 올려 아뢰기를,
“상사에 옛 제도를 좇는 것이 비록 성스러운 아드님의 지극한 정이오나, 그 방도가 시의(時宜)에 맞아야 이에 인군(人君)의 통달한 절조라고 합니다. 
공손히 생각하옵건대, 주상 전하는 학식이 깊고 넓으시며, 효심이 순전하고 지극하시어 큰 기업을 이어받으시고, 아침과 밤으로 근심이 바야흐로 많으신데, 양궁을 공경하여 받들어 새벽과 저녁의 봉양을 더욱 도타이 하옵시다가, 어머님께옵서 세상을 버리옵시어, 문득 전하께 지극한 슬픔을 끼치셨사오나, 
그러나 하루 사이의 정무가 만기(萬機)에 이르오니, 만일 재결을 받지 않으면 진실로 시행하기가 어렵습니다. 비록 비통하고 애감하신 정성이 깊으시나, 어찌 나라 부탁함이 소중함을 생각하시지 아니하시나이까.(2년 7월 28일)
 
정사를 보는 일도 여러 번의 청에 의해 시작되었다. 그만큼 어머니를 떠난 상실감이 컸고 신하들도 그러한 임금의 마음을 알고 있었던 듯하다. 그리고 나서 몇일만에 손실경차관(농사상황을 알아보는 조사관)을 각각 지방에 내보낸다. 8월로 넘어간다면 이제 가을로 접어드는 때이고 농사의 잘됨을 가려 상황을 알아보기 위함이다. 문제는 공정함과 정직함이다. ‘공평하게 하라. 그렇지 않으면 엄중하게 죄를 묻겠다’고 했다.
 
여러 도(道)에 손실(損實;천재로 인한 농작물의 피해를 조사하여 면세의 자료로 쓰임) 을 조사하는 경차관(敬差官)을 나누어 보내고 전지(傳旨)하기를,
“관·민간에 폐단이 없도록 힘쓰라. 만일 공평하지 아니한 자가 있거든 법에 의하여 엄중하게 논죄하라.”
하였다.(2년 8월 14일)
 
당시 각 지역의 농사상황을 보고하는 이들은 그 지역 사람들이었다. 공정하게 하기가 어려운 조건이었다. 이조에서는 상소문이 올라오기도 했다. 각 지방의 염치없는 무리들로 건달들이거나 아전 출신들이 있어 이러저러한 관계속에서 공정하지 못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여러 도(道)의 손실 위관(損實委官;천재로 인한 농작물의 피해조사를 위임 받은 지역민들)들이 모두 그 지방의 건달들로 염치없는 무리이거나, 또는 아전으로 출신한 자로 되어 있어, 이로 인하여 손실(損實)을 공정하게 조사하지 못해서 공사(公私) 간에 피해가 되고, 경차관(敬差官)도 또한 두루 찾아가서 검사하지 못하니, 금후로는 지방에서 전록(田祿)을 받는 여러 품관(品官)의 대소 인원(大小人員)에게 시키도록 하고, 공정하고 청렴한 사람을 가려서 차정(差定)하도록 하소서.” 하니, 그대로 따랐다.(2년 8월 20일)
 
그 와중에도 어머니의 묘(헌릉)를 쓰는 일로 많은 사람들을 동원하게 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발생한 인명손상과 민가의 곡식 손실 등에 대해서도 세심하게 신경을 쓴다. 세종은 세심한 사람이었다. 
 
임금이 말하기를,
“산릉(山陵)에 군정(軍丁) 수가 만 명이 넘으니 어찌 사망한 자가 없을 수 없으며, 또는 길가에 벼와 곡식도 반드시 손상되었을 것이니, 유사(有司)에게 명령하여 사망한 자는 부의하고, 손상된 것은 보상하여 주라.” 하였다.(8월 25일)
 
그러던 와중에 돌발적인 주제가 하나 불거진다. 나중에 ‘수령고소금지법’이란 주제로 불리는 내용을 깐깐한 재상 허조가 들고 나온다. 지금까지의 기사에서는 연관기록이 별로 없었다. 하지만 당시의 상황에서는 다양한 하극상이 있었음을 시사하며 상전의 불법과 수탈을 고발하고 노비가 주인을 고소하는 등의 일들이 심심찮게 이루어지고 있었음을 드러낸다. 이제부터 그 문제가 상왕과 공식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한다. 지금의 시선으로 본다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 같지만 그 시대의 계급사회에서는 질서를 지켜야 하는 사대부의 기득권을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다. 허조와 그의 동료 신하들의 변이다. 머리를 땅에 부딪히며 아뢸 정도로 심각했나 보다. 
 
허조(稠)가 계(啓)하기를,
“근래에 주현(州縣)의 아전이나 백성들이 그의 수령(守令)의 범(犯)한 것을 고하는 자가 흔히 있으니, 풍속(風俗)이 박하고 악해지는 것이 이렇게 심할 수가 없어서, 신은 일찍이 통분하게 여겼으므로, 앞서 옛날 일을 인용하여 글을 올려 진청하였으나, 그 사이에 이의(異議)가 있어 윤허하심을 받지 못하였습니다. 
만약 이를 막고 금하지 아니하면 장차 아내는 그 남편을 배반할 것이고, 아들은 그 아비를 배반할 것이고, 노비(奴婢)는 그 주인을 모해할 것이니, 이것을 당옥(堂屋)에 비한다면, 들보와 기둥은 군부(君父)이요, 창문과 지게문[戶]은 신자(臣子)인 것입니다. 차라리 창호(窓戶)를 상할지언정 어찌 동량을 보호하지 않겠습니까. 만일 윤허하심을 얻게 되면 신은 죽어도 뉘우침이 없겠습니다.”
하고, 사모를 벗고 머리로 땅을 부딪치며 아뢰기를,
“신이 일찍부터 통분하게 여겼던 것을 오늘에야 계달(啓達)하게 된 것입니다.” 라고 하였다.(9월 4일)
 
예조 판서 허조 등이 계하기를,
“가만히 생각하오면, 천하나 국가는 인륜이 있는 곳이라, 임금과 신하의 상하 구분이 각각 없을 수 없는 것이니, 조금이라도 능멸히 여기는 마음이 있을 수 없는 법인데, 근자에 와서는 아래에 있는 사람으로 윗사람의 일을 엿보다가 조그마한 틈이라도 있는 것을 알게 되면, 그럴듯하게 만들어 하소연하며, 윗사람을 업신여기는 마음을 함부로 하는 일이 자주 있으니, 이와 같은 풍조는 단연히 자라지 못하게 할 것입니다. 옛 사람의 말에, ‘별[星]만한 불이라도 온 들을 태운다. ’고 하였으니, 만약 이대로 두어서 금하지 아니한다면, 이 풍조의 폐단은 임금이라도 신하를 둘 수 없게 되고, 아비라도 자식을 거느릴 수 없는 지경에 이를 것이니, 그러므로 이를 방지하여 금할 수 있는 한두 가지의 천근(淺近;생각따위가 깊지 아니하고 얕은)한 방안을 뒤에 차례대로 적어 올리나이다. (9월 13일)
 
요약하면 이렇다. 
상하가 있는 관계에서 윗사람이 잘못을 했다고 해서 아랫사람이 비방하고 고소하는 일은 아주 큰 폐단을 갖고 올 풍조라는 것이다. 계급사회에서 가진 자의 횡포를 가려줄 가림막이 될지, 일반 백성의 억울함을 풀어줄 수 있는 장치가 마련될지 논의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이 논의는 꽤나 오래 이어간다.

상하의 질서를 무너뜨리는 일은 있을 수 없다는 지배자의 완고한 의식과 힘없는 백성이 그나마 고소고발이라도 해야 억울함을 벗고 숨쉬고 살수 있다는 피지배자의 항변이 맞부딪히는 현장이다.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란다는 말이 이런 구도의 흔들림에서 나오는 것일 게다. 허조는 명백히 보수주의자다. 
 
세종신문 대표 김태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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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0/02/14 [10:34]  최종편집: ⓒ 세종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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