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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군주 세종
잘 알려지지 않은 세종대왕 이야기 21
 
세종신문   기사입력  2020/01/29 [16:16]
세종께서 왕위에 오른 후 처음 한 공식발언은 ‘의논하자!’였다. 

세종은 토론을 매우 중시했고 숙의의 과정을 거쳐서 중요한 국사에 대해 결정하는 군주였다. 32년의 재임기간 중 총 1천 8백여 차례의 경연을 실시하였는데 이는 월평균 5회에 해당한다. 

이는 역대 어느 임금보다도 많은 수치인데, 더욱이 그 이전까지는 형식적으로 행해지던 경연을 활성화시켰으며, 후대 임금들이 활발하게 경연을 할 수 있는 토대가 되었다. 

경연이란 언관과 재상들이 왕 앞에 모여서 고전(經)을 놓고 공부하면서 당면과제를 함께 풀어가는 독특한 회의방식(筵)를 말한다. 이처럼 세종은 고전 강독으로 시작하는 경연을 당면한 국정현안까지 함께 의논하는 자리로 활용했다. ‘말’과 ‘일’을 엮는 방식으로 회의를 진행한 것이다.

세종의 대화법은 먼저 상대의 말을 수긍하고 경청하되 이어서 자신의 주장을 펼치는 화법을 구사했다. ‘그 뜻이 좋소, 그대 말이 아름답소’ 등, 상대방의 기분을 높여주거나 존중하는 말을 자주 사용했다. 

또한, 세종은 좀처럼 화를 내지 않고 평정심을 유지하였는데, 이로 인해 회의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회의가 탁상공론으로 그치지 않고 생산적이고 창의적인 회의가 되도록 이끌었으며, 허조, 최만리 등 반대자도 회의에 참석시켜 회의참석자들이 집단적 착각에 빠지지 않토록 토론의 예방적 효과를 거두었다.
 
또한 세종 자신의 주장을 일방적으로 주장하기 보다는 ‘어찌하면 좋겠는가?(이위하여)’ 하며 수시로 상대방에게 질문을 통해 말문을 열게 하고 신하들의 말을 끝까지 들어주는 경청의 군주였다.    

세종시대의 과학기술성과물(C4J0K21O19 -중국 4건, 일본 0건, 우리나라 21건, 동아시아 이외 전지역 19건)과 대명외교, 여진족 토벌 등 대부분의 국가적 난제를 슬기롭게 해결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이러한 세종의 화법과 경연회의를 통한 활발한 토론문화의 산물이었다고 할 수 있다. 
 
세종신문 편집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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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0/01/29 [16:16]  최종편집: ⓒ 세종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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