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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록여행 62 - 주상의 효성을 심히 아름답게 여긴다
 
김태균   기사입력  2020/01/08 [13:27]
어진 정치의 대명사인 세종은 효자로도 유명하다. 
참을 때 참을 줄 알고 섬길때 섬기며 이미 세워진 질서를 중하게 여겼던 그가 재빠르게 처신한 몇 안되는 사례가 어머니 원경왕후의 병간호였다. 나중에 ‘바른 정치는 효로부터 말미암는다’란 말도 했다. 
 
세종 2년 5월 말, 한참 더운 여름날이다. 가뭄은 어느정도 해소됐고 깊이 신경 쓸 정치상황은 없었다. 그때 세종은 어머니 원경왕후, 대비에게 문안을 갔다. 그런데 그날 학질에 걸려 앓기 시작했다. 27일의 일이다.
 
임금이 대비에게 문안하였다. 대비가 이날부터 학질병을 앓기 시작하였다.(2년 5월 27일)
 
학질은 몸을 벌벌 떨며 주기적으로 열이 나는 병이다. 사람이 견디지 못할 정도로 포악스러운 질병이라 해서 붙은 이름이다. 요즘으로 치면 말라리아다. 모기에 물려서 전염되는 일종의 전염병이다.
임금은 이틀 뒤 29일 다시 어머니를 찾아 뵙고 직접 병구완을 하고 환관들을 시켜 절에 가서 시주하며 기도하게 했다. 개경사는 지금의 구리시의 검암산에 있다. 태조 이성계의 능인 건원릉이 있고 제사를 모시는 절이었다. 
 
낙천정에 나아가 대비께 뵈옵고, 드디어 머물러 병석에 모시고 환관 김용기(金龍奇)를 개경사(開慶寺)에 보내어 관음(觀音)께 기도하고, 인하여 중들에게 시식(施食)하였다.(2년 5월 29일)
 
지금 같으면 말라리아로 판명이 나면 전염성이 있으므로 환자를 격리하고 전문 의사들이 직접 처치했겠지만 그 당시만 해도 세균에 대한 이해가 없던 때이다. 하지만 그는 효자였다. 모든 일을 뒤로하고 할 바를 다했다.

다음날은 이천에 있는 맏형 양녕대군을 불러 올렸다. 그리고 다음날은 종친과 승려 그리고 천문을 보는 사람과 무속인을 시켜 곳곳에서 기도하며 굿을 하게했다. 저녁에는 맹인 승려 7명을 불러모아 대비가 있는 뜰에 기도처를 마련했다. 이때 임금은 ‘수라도 들지 않고 침소에도 들지 아니하며 정성을 다해 기도했다’라고 적고 있다. 

차도가 없자 이틀이 지나 피병(避病)을 결심한다. 피병이란 병을 피해 도망가는 것이다. 실록은 이렇게 전한다.

임금과 양녕·효령이 대비를 모시고 개경사에 가서 피병(避病)할새, 술사둔갑법(術士遁甲法)을 써서 시위를 다 물리치고 밤에 환관 2인, 시녀(侍女) 5인, 내노(內奴) 14인만 데리고 대비를 가마로 모시어 곧 개경사로 향하니, 밤이 이미 삼경[三鼓]이라, 절에 가까이 이르러 임금이 다만 한 사람만 데리고 먼저 본사(本寺)에 가서 있을 방을 깨끗이 쓸고 돌아와, 대비를 맞아 절에 머문 지 나흘이 되도록 사람들에게 알리지 아니하고 낙천정 시위를 평상과 같이 하니, 안팎에서 그 향방을 알지 못하였다. 임금이 친히 약사 여래에 가 정성껏 부지런히 불공하고 중에게 시식하되, 병세는 오히려 감하지 아니하였다.(2년 6월 6일)
 
세종의 처신을 보면 굉장히 마음이 급하고 어떻게든 할 수 있는 일을 하기위한 서두름이 보인다. 어머니를 모시고 절에 간지 4일동안이나 대비의 행방을 알리지 않았다. 절에 도착한 시간도 삼경이라 하니 지금으로 치면 밤 11시-1시 사이다. 

당시의 위급한 마음은 얼마나 간절했을까 싶다. 이러한 전후 사정을 전해 듣게 된 상왕 태종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내가 대비와 주상의 간 곳을 몰랐더니, 오늘에야 알고 보니 주상이 대비의 학질(瘧疾)을 근심하여 몸소 필부의 행동을 친히 하여, 단마(單馬)로써 환자 두 사람만을 데리고 대비를 모시고 나가 피하여 병 떼기를 꾀하니, 심히 그 효성을 아름답게 여긴다.”
 
다시 임금은 계속 할 바를 한다. ‘두 형인 양녕·효령과 함께 대비를 모시고 도가류(道家流)의 중 해순(海恂)으로 하여금 먼저 둔갑술을 행하게 하고, 풍양(豐壤) 남촌(南村) 주부(注簿) 최전(崔詮)의 집을 찾아 가서 이에 머물러 기도하였으나, 병이 오히려 낫지 아니하였다.’ 도가의 둔갑술까지 동원하고 장소를 자꾸 옮겨 병을 피해 도망 다닌다. 

다음날은 ‘도류승(道流僧) 14인을 모아서 밤에 도지 정근(桃枝精勤)을 베풀었는데, 임금은 깊이 근심하므로, 정신이 흐리었고, 역마를 탄 자가 연락하여 그치지 아니하였다.’고 적고 있다. 도지정근이란 복숭아 가지를 붙잡고 흔들며 기도하는 것이다.

다음날도 ‘임금도 또한 복숭아 가지를 잡고 지성으로 종일토록 기도하였으나, 병은 오히려 낫지 아니하였다. 날이 저물어 파하였다.’고 했다. 상왕 태종도 함께 병구완을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임금의 절박함은 계속 이어진다.
 
“대비의 병이 비록 염려되나, 주상이 어찌 먹지 않을 수가 있느뇨. 힘써 식사를 하여 늙은 나에게 효도하라.” 하였다. 임금이 홀로 대비를 모시고 종일토록 문을 닫아 두 대군도 역시 입시할 수 없었다. 이날에 대비 병환이 조금 덜하매, 비로소 수라를 들므로, 사옹(司饔) 김오을마(金吾乙麿)가 죽을 조미하여 드리니, 대비가 조금 자시는지라, 임금이 기뻐하여 사옹에게 옷 한 벌을 내려 주었다.(6월 14일)
 
임금이 홀로 종일토록 대비를 모시고 문을 닫고 있으므로, 두 대군도 들어갈 수 없었다. 이날에 대비 병환이 조금 덜하였다.(16일)
 
밤 이경에 임금이 대비를 모시고 풍양 이궁으로 돌아오니, 이날에 대비의 병환이 다시 발하여 좀 중하였다.(19일)

임금이 교지를 내려 이르기를, "대비의 학질이 오래 되어도 낫지 않으니, 능히 다스릴 자가 있으면 장차 두터운 상을 줄 것이니, 널리 찾아 구하거든 역마를 주어서 보내라."하였다. 이 때에 대비 병환이 점점 심하여 가매, 임금이 주야로 모셔 잠시라도 곁을 떠나지 않고, 탕약과 음식을 친히 맛보지 않으면 드리지 않고, 병환을 낫게 할 수 있다는 말이 있으면, 어떠한 일이든지 하지 않는 것이 없었다.(20일)
 
그렇게 매일 옮기다시피 병을 피해 도망 다니기를 계속했다. 국사는 손을 대지 못했다. 결국 7월 10일 원경왕후, 세종의 모친은 세상을 떠났다. 발병한지 한달 보름만이다. 인명은 제천이다. 그날의 장면을 실록은 이렇게 전한다. 
 
낮 오시에 대비가 별전에서 훙(薨)하니, 춘추가 56세이요, 중궁(中宮)에 정위(正位)한 지 21년이다. 임금이 옷을 갈아 입고, 머리 풀고, 발 벗고, 부르짖어 통곡하니, 상왕이 거적자리[苫次]에 나아가 미음[糜粥]을 전하니, 이 때 임금이 음식을 진어하지 않은 지 이미 수일이라, 상왕이 눈물을 흘리며 울면서 권하였다.(7월 10일)
 
 
세종신문 대표 김태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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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0/01/08 [13:27]  최종편집: ⓒ 세종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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