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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청년들, 여주 동학의 길을 걷다
개벽학당과 대만·일본 청년들 세종대왕릉과 해월 최시형 선생 피신지와 묘소 탐방
 
이재춘 기자   기사입력  2019/11/04 [12:10]
▲ 동아시아 청년들이 장수폭포 앞에 '해월 최시형 피신지' 팻말을 세우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 세종신문

지난 3일부터 이틀 동안 동학을 공부하는 ‘개벽학당’ 청년들과 일본과 대만 등에서 온 참가자 40여 명이 세종대왕릉과 명성황후생가, 강천면 도전리 최시형 선생 피신지 및 묘소를 방문하였다.

동학이 말하는 ‘개벽’이 여주와 인연이 깊다고 여기고 있는 동아시아 청년들은 동학의 길을 걸으며 한글을 창제한 세종대왕의 영릉과 동학 2대 교주 해월 최시형의 피신지와 묘소를 찾아 참배 했다. 

▲ 북카페 세런디피티 78에 모여 탐방 준비를 하고 있는 동아시아 청년들     © 세종신문

동아시아 청년들은 2일 오전 10시 여주시 상거동에 위치한 북카페 ‘세런디피티 78’에 모여 서로 인사를 나누고 다함께 왈츠를 추었다. 이어서 여주세종문화재단 전 상임이사 조성문 선생의 안내로 세종대왕릉과 명성황후 생가를 탐방하고 ‘한글과 세종, 그리고 동학’에 대해서 토론을 진행하였다. 토론 중에는 지난 9월부터 훈민정음 해례본을 강독해 왔는데 그 경험을 공유하기도 하였다.

‘일성콘도’에서 숙박을 한 일행은 3일 아침 신륵사 산책을 진행한 후 9시 30분에 ‘세런디피티 78’에 모여 한국, 대만, 일본의 시를 같이 낭송하고 강천면 도전리 최시형 선생 피신지로 이동 하였다.

동아시아 청년들에게 ‘여주 동학의 길’을 안내하고 있는 여주대 박영민 교수는 “개벽학당 청년들은 ‘한글창제’와 ‘동학창도’를 두 번의 ‘개벽’으로 여기는데 그 두 번의 개벽이 여주에서 하나로 연결되어 있어 여주를 성지처럼 여긴다”며 개벽학당 청년들이 동학의 길을 걷기 위해 여주를 선택하게 된 배경을 알려 주었다. 

▲ 해월 최시형 선생의 피신지를 둘러보고 있는 동아시아 청년들     © 세종신문


동아시아 청년들은 도전2리 해월 최시형 선생의 피신지 뒤편 ‘장수폭포’ 주차장에서 도전2리 이충열 이장과 권성옥 부녀회장 등 마을 주민들과 인사를 나누고 피신지를 둘러보았다. 해월 최시형 선생의 피신지에서는 동화작가 장주식 선생이 안내를 하였다. 장주식 선생은 최근에 여주의 인물을 글로 쓰고 있는데 그 인물들 중에 해월 최시형 선생도 포함되어 있어 해월 선생에 대해 잘 알고 있다.


장주식 선생은 “해월 선생은 1897년 여름에 이곳에 피신을 오셨다가 1898년 초에 원주 송골로 가셨다”며 “도전리에 피신해 있는 동안 건강이 많이 좋지 않았지만 70세의 연세에 둘째 아들도 낳았고 손병희 선생에게 도통을 전수하기도 하였다”고 말했다. 장주식 선생의 안내에 따르면 해월 선생은 이천 수산리에서 점동면 도리나룻터를 건너 도전리로 들어왔다고 한다. 도전리 피신지는 ‘이천식천(以天食天)’을 설파한 곳으로 이천식천은 하늘과 사람 뿐 아니라 만물이 다 하나라는 삼경(경천경인경물)사상이라고 하였다.

해월 최시형 선생의 피신지를 둘러본 이토시마 시의원이자 동아시아생명문화연구소장인 후지 요시히로는 “해월 프로젝트를 진행하여 많은 사람들이 돌 하나 흙 한줌을 쌓아가며 피신지를 복원해야 한다”며 “해월 최시형의 피신지가 축하의 자리, 기쁨의 자리로 되었으면 좋겠다”고 하였다.

▲ 장수폭포 앞에 팻말을 세우고 기념식을 진행하는 동아시아 청년들     © 세종신문


해월 최시형 선생의 피신지를 둘러본 동아시아 청년들은 피신지 뒤편 장수폭포로 자리를 옮겨 서각으로 파온 ‘해월 최시형 피신지’ 팻말을 세웠다. 팻말을 세우는 과정에 장수폭포를 둘러보는 사람, 명상을 하는 사람, 노래를 부르는 사람, 폭포수에 손을 담그는 사람 등 100여 년 전의 해월을 각자의 방식으로 느끼고 있었다. 동아시아 청년들은 팻말을 세운 후 간단한 기념식을 진행하며 노래도 부르고, 시도 낭송하고, 기념촬영도 하였다. 그리고 이들은 다시 금사면 주록리에 있는 최시형 선생의 묘소로 향했다.

동아시아 청년들이 장수폭포를 떠난 후 ‘해월 최시형 피신지’라는 팻말은 물소리, 바람소리, 새소리와 함께 장수폭포의 또 하나의 이야기로 남았다.

▲    동아시아 청년들이 떠난 후 장수폭포를 지키고 서 있는 팻말 © 세종신문


해월 최시형 선생의 피신지는 구전으로만 전해져 올 뿐 역사적 고증이 없다. 또한 동학이 가지는 역사적 특수성으로 인해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데 이번 동아시아 청년들의 방문을 계기로 역사적, 문화적 가치가 새롭게 인정될 수 있을지 새로운 숙제가 남겨졌다.

도전2리 이충열 이장은 “마을 주민들은 그냥 그렇게 마을에 살고 있을 뿐이지만 해월 최시형 선생 피신지와 장수폭포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많은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는 것 같다. 여기가 잘 복원되어 여주의 명소로 자리 잡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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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11/04 [12:10]  최종편집: ⓒ 세종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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