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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사풍(士風)과 신사도(紳士道)
세종철학의 힘 - 생생[거듭살이]의 삶을 찾아서 ⑫
 
세종신문   기사입력  2019/09/26 [17:29]
▲ 김광옥 수원대 명예교수     
세종의 정치에서의 인간관은 사풍(士風)에 근거한 것으로 풀어본 바 있다. 사람은 배워야 하고 선비는 의로움을 지녀야 한다. 의로움은 불의(不義)를 거부하는 것이고 자기 나름의 정신적 자산인 철학과 실용적 자산인 기술을 지니고 있는 통유(通儒)가 되기를 바란다.
 
사풍(士風)   

선비도 일정 수양을 거치면 자기 풍을 갖는다. 이는 학문을 통해서도 현실 인식에서 차이가 드러난다. 정치적으로 현실안주형에서 개혁형 등 그리고 성격에서도 개인의 풍이 생길 것이다. 사풍은 먼저 선비의 염치에서 나타나고, 서로 욕하고 헐뜯는 데서 불미스러워진다. 
 
우사간 변계손 등이 상소하기를, “상벌은 국가의 대전(大典)이고, 염치는 사풍(士風)의 큰 줄기이옵니다.”(《세종실록》 12/4/14)
우정언 정차공이 아뢰기를, “비록 품질(品秩)이 낮은 관리라도 저희들 서로가 욕하고 헐뜯는다 하오면, 이것도 사풍(士風)의 불미[士風不美] 한 것이 되옵거늘, 하물며 대신으로서 서로 과실과 죄악을 폭로하고 드러냈사옴은 더욱 옳지 못한 것이 되옵니다.”(《세종실록》21/11/27) 
 
이에 사풍이나 사도(士道)를 갖추지 못한 선비는 속유(俗儒) 혹은 용속(庸俗)한 사람이 된다. 속유는 어떤 사람인가. 대간에서 연명으로 상소하여 경찬회의 명을 정지하기를 청하며 나오는 말 중에 속유(俗儒)는 ‘시대의 적당성을 통달하지 못한’ 사람이다.
 
속유 : ‘속유(俗儒)들은 시대의 적당성을 통달하지 못하니 어찌 족히 위임하랴.’ 하여 고전에서 빌려왔다. (《세종실록》23/윤11/21)
용속한 선비 : (집현전 부제학 최만리 등이 언문 제작의 부당함을 아뢰자) 임금이 말하기를, 전번에 김문(金汶)이 아뢰기를, ‘언문을 제작함에 불가할 것은 없습니다.’ 하였는데, 지금은 도리어 불가하다 하고, 또 정창손은 말하기를, ‘삼강행실을 반포한 후에 충신·효자·열녀의 무리가 나옴을 볼 수 없는 것은, 사람이 행하고 행하지 않는 것이 사람의 자질(資質) 여하에 있기 때문입니다. 어찌 꼭 언문으로 번역한 후에야 사람이 모두 본받을 것입니까, 하였으니, 이따위 말이 어찌 선비의 이치를 아는 말이겠느냐. ‘아무짝에도 쓸데없는 용속(庸俗)한 선비이다.’ (《세종실록》26/2/20) 

역사적으로 이런 지배계급의 정신으로는 유럽에서 기사도, 신사도 그리고 중국에서는 군자(君子), 일본에서는 무사도가 있다. 간단히 살펴보기로 한다.
 
기사도(騎士道)와 신사도(紳士道) 

유럽에서는 전사계급의 엘리트인 기사가 지켜야 할 윤리적, 미적 행동규범을 뜻하는 기사도가 있다.
심신이 건실한 젊은이가 일정한 성인식을 거치면 무기를 주어 기사서임과 전사 집단에 참가시키는 관습은 예부터 게르만민족 사이에서 행해져 왔다. 단지 전사간의 관행에 그치지 않고 전체교회가 개입하여 신에게 봉사하고 정의를 지키기 위해 '검을 잡는 크리스천'인 것에 특징이 있다.

기사제도가 중세와 더불어 몰락하자 기사도에 대신하여 존경할 만한 남성의 행동규범으로 신사도가 이어서 나타났다. 우선 투쟁본능을 가능한 한 억제하는 태도가 있었다. 함부로 남과 싸우지 않는 것, 어쩔 수 없이 싸우게 되는 경우도 일정한 룰을 지키고(소위 페어플레이 정신), 부상당한 상대를 필요 이상으로 다치게 하지 않는 것이다. 

이는 무엇보다도 명예를 소중히 하는 태도로 기사의 의무인 동시에 신사에게도 필요한 것이었다. 신사협정이란 암묵적 계약관계를 가능케 한 것으로 바로 이 명예였다. 또한 여성에 대한 정중한 태도, 노인, 어린이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위로 등도 기사도의 신사도에 대한 유산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비교해 보면 이상적인 기사의 경우는 인격적으로 결합된 신이 내면에 자리 잡고 있지만 신사 및 신사도에 있어서는 그럴 필요성은 없다. 신사도는 기사도의 세속적인 면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판타지랜드 21 참고)

유럽의 신사도(紳士道)에서 신사는 옛 프랑스어로는 gentilz hom(부드러운 사람)으로부터 출발하는데 착하고 정중한 행동을 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영국에서는 원래 가장 낮은 계급의 남자로 에스콰이어(esquire) 아래와 여인 위에 있었다. 

영국의 신사도에는 다음과 같은 덕목들이 있다. 첫째 엄한 규칙 아래 페어플레이 정신으로 상대방을 존중하고 최선을 다한다. 이에  남의 주장을 끝까지 들으며 다수의 주장에 대항하여 자신의 주장을 내세울 수 있는 용기를 가진다. 둘째 현실사회에서 이상을 추구한다. 이에 변화를 과격한 혁명이 아닌 점진적 진화로 이루려는 정신을 가져야 한다. 셋째 자제심, 곧 겸허하면서 풍부한 유머감각이 있어야 한다. 이에 스페셜리스트가 아닌 제너럴리스트로서의 교양이 있어야 한다. 아이들 응석을 받아주지 않고 남의 아이도 내 집 아이처럼 꾸짖을 수 있어야 한다. 넷째 공공(公共)의 배려 속에 자기희생을 감수해야 한다. 다섯째 현대에서는 자기 집 나름의 개성 있는 생활방식-이를테면 의례나 요리솜씨를 지녀야 한다. 더불어 외국어, 악기연주 등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최정화 참고)

현대에 와서는 세계의 여러 민족이 섞이고 있어서 영국 나름의 신사도도 빛을 잃고 있다고 하겠으나 민족을 떠나 인간으로서의 품위를 유지하는 것이 신사도의 바른 계승이 되겠다.

▲ 선비정신을 되새기고자 영주시가 소수서원 앞에 세운 영주 선비상.     © 구글 이미지 검색


무사도(武士道)

일본에는 무사도라는 정신이 있다. 무사도는 16세기부터 사용되기 시작했다. 상무 정신으로서 무예와 싸움터에서의 용맹성 등을 말한다. 또한 검소한 생활, 친절, 정직성뿐만 아니라 효도 중요시되었다. 그러나 사무라이는 설령 부모에 해가 될지라도 주군에 대해 끝까지 의리를 지켜야 했다.

도쿠가와시대[德川時代, 1603~1867]에는 무사도의 개념이 유교사상의 영향을 받아 의리나 의무를 강조하는 보다 포괄적인 도덕체계로 변했다. 사무라이는 유교에서 말하는 '군자'와 동일시되었으며 가장 중요한 역할은 하층계급에게 덕을 베푸는 것이라고 가르쳤다. 권위에 대한 복종이 강조되었지만 법을 위반할지라도 의무가 우선시되었다.

무사도는 그 자체로 일본의 민족주의를 일으키는 데 기여했으며 1945년까지의 전쟁기간 동안에는 일본인들의 사기를 강화시켰다. (다음 백과 참고)

그러나 무사도도 잘못된 광기(狂氣)에 빠져들면 인간의 몸이 폭탄이 되는 가미가제[神風] 특공대로 변질한 바 있다. 인간을 쇠붙이로 취급한 인류 역사상 가장 잔혹한 집단 질환에 빠져들게 했다. 역사가 기억해야할 사건이다.

역사적으로 각 문화에는 지켜야 할 정신문화가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선비정신으로서 세종시대의 사풍(士風)을 현대적으로 계승해 볼 가치가 있을 것이다. 

김광옥 수원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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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09/26 [17:29]  최종편집: ⓒ 세종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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