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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직자는 6개월 후를 내다보며 일해야 한다”
[인터뷰] 김연석 강천면장
 
이재춘 기자   기사입력  2019/09/26 [16:51]
강천면의 현안을 살펴보고 그 전망을 알아보기 위해 김연석 강천면장을 만나보았다. 김연석 면장은 “강천면을 위해 제대로 일하기 위해서는 주민들을 이해하고 주민의 신뢰를 얻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하며 주민들과 호흡하고 소통하기 위해 애를 쓰고 있었다.   


여주가 고향인가?

대신면 보통리에서 7녀 1남 중 막내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내가 태어나던 해에 대신면 부면장을 하시고 내가 여덟 살 때 지병으로 돌아가셨다. 위로 누나들이 일곱 명이 있는 막내 아들이다 보니 어머니께서는 어떻게 해서라도 나를 서울에서 공부시켜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셨다. 열 살 때 서울로 전학을 가서 둘째 누나와 자취를 하며 공부를 했다. 일곱째 누나도 순전히 나를 돌봐주기 위해 같이 갔다. 동대문구 답십리에서 도봉구 쌍문동까지 5~6학년 2년 동안 통학했다. 그리고 중고등학교는 동대문구에 있는 학교를 다녔다. 


공무원이 된 계기는 무엇인가?

우연인지 필연인지 사연이 좀 길다. 너무 어려서 부모님 곁을 떠나서 그랬는지 몰라도 중학교 3학년 때부터 공부에 흥미를 잃고 친구들과 어울려 다녔다. 지금 키가 중3 때 키 그대로인데 중학생치고는 키가 꽤 컸다. 

내가 서울로 전학 갈 때 나를 돌봐준다고 같이 갔던 일곱째 누나는 공부를 열심히 해서 성균관대에 들어갔는데 난 공부를 안 한 건 아니지만 내가 원하는 대학에는 들어가지 못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을 가기 위해 재수, 삼수를 했는데 결국 대학을 포기하고 군대를 갔다. 전역 후 두 달도 채 되기 전에 여주에서 공무원을 하는 큰누나와 매형에게 공무원시험에 원서를 접수해 놨으니 시험을 보라는 전화가 왔다. 나는 생각이 없었는데 시험 전날 어머니께서 올라오셔서 새벽같이 찰밥을 해 주시고는 내 등을 떠밀어 새벽 전철로 수원으로 갔다. 수원에서 친구들을 만나 놀아야겠다 했는데 역에 너무 일찍 도착해 연락할 길이 없었다. 일요일 이른 아침이라 친구들을 만날 방법이 없어 그냥 공무원 시험을 보러 갔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지금까지 공직에 몸담고 있다. 

▲ 김연석 여주시 강천면장.     © 세종신문


중간에 공무원을 그만 둘 생각은 없었나?
 
1991년 6월경 시험을 보고 9월 추석 무렵에 합격자 발표가 났다. 그리고 11월 28일에 북내면사무소에 첫 발령을 받았다. 추석 때 큰누나와 매형의 강권도 있었고 어머니의 기대를 저버릴 수 없어 서울생활을 접고 여주로 내려왔다. 모르긴 몰라도 한생을 공직자로 살아오신 아버지의 영향도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북내면사무소에 발령을 받고 공무원생활을 하는데 처음 며칠은 하루 종일 동네 쓰레기만 주웠다. 12월 첫 주 그 추운 날 오학동, 오금동 일대를 다니는데 ‘공무원 생활이 이런 거라면 도저히 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 발령 일주일째 되는 날 사직서를 냈다. 그런데 그 사직서를 받아 든 담당계장이 우리 큰 매형에게 전화를 해서 그날 밤 엄청나게 혼이 났다.

그리고 몇 달 후 오학출장소로 파견을 나갔다. 오학출장소에서는 하루 종일 호적등본만 복사했다. 지금은 전산화가 되어 있지만 그때는 주민들이 호적등본을 떼러 오면 호적을 복사를 해서 내줬는데 하루 종일 복사만 했다. 내 자신이 참 한심해서 발령 1년 1개월 만에 또 사직서를 제출했다. 물론 그 사직서도 반려되었고 얼마 후 군 행정계로 발령되었다. 행정계는 지금의 인사과와 같은 곳인데 그 곳에서 선배 계장님을 통해 행정업무에 대한 모든 것을 배울 수 있었다. 그 때부터 내 스스로 공무원임을 자각하고 본격적으로 공무원 생활을 시작했다.   


강천면장으로서 포부가 있을 것 같은데…

나는 공직생활 28년 동안 약 4년 정도를 빼고는 대부분을 본청에서 근무했다. 강천면에도 면장이 되어서야 처음 왔다. 나는 여주시민들과 마찬가지로 여주를 아끼고 사랑한다. 강천주민들은 누구보다도 강천을 아끼고 사랑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강천면장인 내가 강천주민들과 호흡하고 소통한다면 나의 모든 능력을 강천을 위해서 쓸 수 있다고 생각한다. 중요한 것은 강천 주민들로부터 신뢰를 얻는 것이다.

강천에 몇 년 있을지 모르겠지만 있는 동안에는 강천을 위해서 모든 것을 다 바쳐 일할 생각이다. 나의 공직생활 좌우명은 언제 어느 자리에 있더라도 그 자리에 있을 때 뭔가 한가자라도 해냈다는 자부심을 가지는 것이다. 내가 맡은 일을 해 낼 수 있겠는지 얼마나 잘 해 낼 수 있을지 스스로 깊이 생각하고 결정하는 것이다. 


강천면의 주요 현안은 무엇인가?

여주시 12개 읍면동 중 10개 읍면동에는 주민복합시설이 마련되어 있다. 하지만 강천면에는 아직 주민복합시설이 없다. 그래서 주민복합시설을 세울 수 있는 부지를 확보할 계획이다. 강천면은 주민복합시설과 같은 편의시설이 없다보니 면소재지가 면소재지로서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또한 강천섬이 강천에 있는데도 강천주민들은 혜택을 거의 보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10월 12일 강천면 12개 리가 참여하는 ‘강천섬리버마켓’을 준비하고 있다. 강천면 12개 리에서 각 마을별로 생산되는 농축어산물을 가지고 와서 판매도 하고 축제도 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 10월 첫 강천섬리버마켓을 시작으로 내년에는 봄·가을 각 두 달씩 열 계획이다. 강천섬 ‘맘스 아일랜드’ 사업과 잘 맞물릴 수 있도록 해나갈 것이다.

또 하나는 간매리에서 부평리로 연결되는 시 도로 중 삿갓봉까지 도로를 강천의 대표명소로 만들 생각이다. 여주시민들 뿐 아니라 관광객들이 걷기 좋은 길, 슬로워킹을 통해 힐링할 수 있는 명소로 만들 생각이다. 


이주민이 계속 늘어나고 있는데 원주민과의 자연스런 융화를 위해 준비하는 게 있나?

원주민들은 누구보다 강천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이주민들은 강천이 살기가 좋아 찾아오는 사람들이다. 이들 간에는 문화적 차이가 분명히 있다. 그 문화적 차이를 극복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선 서로 문화적 차이가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강천에 이주민들이 많이 온다는 것은 사회적으로 상당한 경험과 역량을 가진 사람들이 지역으로 들어온다고 생각하면 된다. 이 사람들의 다양한 역량과 재능을 어떻게 강천을 위해 모아낼 것인지를 고민하고 있다. 그래서 이주민 몇 분과 간담회를 준비하고 있다. 이주민들이 느끼는 어려움이 무엇인지, 이들의 생각이 무엇인지 직접 만나서 들어보고 이주민들이 강천에서 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행정적 도움을 주고자 한다.

원주민과 이주민 간의 문화적인 차이는 충돌하고 있는 직접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원주민과 이주민이 공통의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새로운 문화 주제로 모아내는 것이 답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더더욱 강천 주민복합시설이 중요한 것이다. 

▲ 여주시 강천면 도전2리에 위치한 해월 최시형 선생의 은신가옥.     © 세종신문 자료사진


도전2리에 해월 최시형 선생의 은신처가 있다는데 알고 있나?

물론 알고 있다. 내가 강천면장으로 오기 전에 문화관광과장으로 있었는데 그때 이항진 시장님의 지시로 해월 선생과 동학, 그리고 여주의 관계를 문헌적으로 조사를 했다. 동학은 종교적인 측면보다 외세의 간섭과 당대 지배층의 억압에 맞서 저항한 민중들의 삶으로 접근해야 한다. 금사면 주록리에 있는 해월 선생의 묘소와 도전리에 있는 해월 선생의 은신처가 여주와 어떤 깊은 인연이 있는가를 밝혀보고자 했다.

그리고 동학은 독립운동과도 떼려야 뗄 수 없다. 올해는 3.1운동 100주년이 되는 해인데 여주 곳곳에서 동학과 독립운동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문헌적으로 역사적으로 잘 밝혀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도전리에 있는 해월 최시형 선생의 은신처를 지역문화유산으로 등재하거나 여주시나 경기도의 예산을 들여 보존하기 위해서도 반드시 고증이 필요하다. 고증이 되지 않는 조건에서는 문화재로 등재하고 관리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공직자로서 평소 세종대왕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나?

여주대 박현모 교수의 ‘세종의 적솔력’이라는 책이 있다. 세종대왕은 백성을 위해 늘 앞장서서 실천을 하셨다. 나는 여기서 ‘지도자는 항상 한 발 앞서서 이끌어 간다’는 말에 깊이 공감하였다. 특히 주민을 위해 일하는 공직자들은 6개월 앞을 내다보고 일을 해야 한다. 공직자는 시민의 미래를 책임지는 입장에서 공직사업 하나하나가 시민의 이익을 위해 복무할 수 있도록 일을 해야 한다. 내일을 내다보지 못하는 오늘은 앞서 나가는 것이 아니라 끌려 다닐 수밖에 없다. 공직자가 행정업무에 끌려 다니면 주민들을 위해 제대로 일을 할 수 없다. ‘적솔력’, 즉 미래를 내다보고 앞장서 실천하는 그 힘은 결국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과 끝까지 책임지겠다는 관점에서 출발한 것이다. 나도 세종대왕의 ‘적솔력’을 따라 배우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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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09/26 [16:51]  최종편집: ⓒ 세종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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