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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전리, 여주의 관광명소로 발전할 수 있다”
[인터뷰] 이충열 강천면이장협의회장
 
이재춘 기자   기사입력  2019/09/19 [14:53]
도전리의 번영을 모색하며 마을주민들과 새로운 활로를 개척하고 있는 이충열 강천면이장협의회장(도전2리 이장)을 만나보았다. 이충열 협의회장은 여주시가 조금만 관심을 가져주면 도전리를 여주 제일의 관광명소로 만들 수 있다고 자신하며 여주시의 지원을 호소하였다.

▲ 왼쪽부터 여주시 강천면 도전리 주민 강정숙 씨, 이충열 도전2리 이장, 권성옥 부녀회장.     © 세종신문

강천면 도전리가 고향인가?

우리 집안은 세종대왕의 다섯째 아들인 광평대군의 후손들로 도전리에서 조상 대대로 살고 있다. 광평대군의 손주 되시는 이지학 할아버지께서 도전리에 자리를 잡으셨다. 도전2리 80만평이 종중 땅이다. 
나는 도전초등학교, 북내면에 있는 여강중학교, 여강고등학교를 졸업했다. 도전리가 행정구역상으로는 강천면이지만 학군으로는 북내면에 속해 학창시절 친구들이 강천보다 북내에 더 많다. 어떤 사람들은 북내면 출신이 강천에서 이장협의회장을 한다고 하더라.(허허허) 내가 중학교 다닐 때 아버지 사업이 어려워져 가족들이 다 서울로 이사를 갔지만 나는 남아서 자취를 하며 중고등학교를 졸업했다. 도회지에 나간 친구들은 방학 때면 시골로 오는데 나는 시골에서 학교를 다니다 방학을 서울에서 보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갔다. 


언제 다시 도전리로 돌아왔나?

도전리는 워낙에 오지라 도전리 출신들은 현역을 가는 것이 아니면 3주 훈련을 받고 군대를 대부분 면제받았다. 고등학교 졸업 후에도 나는 주소가 도전리로 되어 있어서 군대를 면제 받았다. 대학을 안 갔기 때문에 사회생활을 빨리 시작했다. 백화점에서 의류업체 직원을 하다가 누가 의류사업을 해보라고 해서 스물네 살 때 의류도매업을 시작했다. 서울에 살다가 20대 초반에 구리에 아파트를 사서 이사를 하고 그 아파트를 담보로 돈을 대출받아 의류도매업을 크게 시작했다. 그 당시 폴로(Polo)회사가 부도가 나서 그 옷을 받아 백화점에 납품 했다. 당시 돈으로 하루에 6천 만 원의 순수익을 올리기도 했다. 사업이 잘되길래 수 억 원을 투자해 전국의 백화점에 납품을 하는데 폴로가 파산하면서 판로가 하루아침에 막혀버렸다. 결국 사업이 망해 사업체를 청산을 하고 남은 돈으로 고향으로 내려와 집을 짓고 살았다. 그때 나이가 스물아홉이었다. 


마을 이장은 언제부터 하였나?

고향마을 도전리로 내려와 밭을 임대하여 고구마를 심었다. 첫해는 5천 평 정도 심었는데 5년 후에는 10만평을 심었다. 매류에 ‘고구마연합사업단’을 만들어 회장을 맡기도 했으나 농협에서 사업단을 너무 방만하게 운영하여 결국 접었다. 그 무렵 나이 서른여덟에 도전2리 마을이장을 처음 시작했다. 여주 이장들 중에서 제일 어렸고 의욕도 대단했다. 6년 동안 이장을 했는데 그때는 미친 듯이 일을 했다. 지금도 이장이지만 그때처럼 하라면 못할 것 같다. 마을회관도 새로 다 뜯어 고치고 도전2리를 장수마을로 만들었다. 마을에 있는 폭포도 장수폭포라 이름을 붙이고 마을사업을 하나 둘 만들어 나갔다. 당시 마을 사업이 많았는데 농업기술센터의 의견과 후원을 받아 사업을 많이 했다. 그리고 8년 정도 내 일을 하다가 작년부터 다시 이장을 맡아 마을 일을 하고 있다. 


도전2리는 어떤 마을인가?

도전2리는 최근 이주해 오는 사람들이 많아 주민들이 꾸준히 늘고 있다. 현재 약 100가구 정도가 살고 있는데 그 중 70가구는 외지에서 들어 온 사람들이고, 20가구는 전주이씨 광평대군 후손들이며, 10가구 정도가 원주민이다. 앞에서도 잠깐 말했듯이 과거 도전2리는 전주이씨 광평대군 후손들의 집성촌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마을의 대부분의 땅이 전주이씨 종중 땅이다. 전주이씨 광평대군 후손들이 도전리로 들어와 살게 되면 종중 땅을 싸게 준다. 그게 우리 집안의 오랜 전통이다. 학교도 종중 땅에서 희사했고 마을회관도 종중 땅을 기부한 것이다. 도전3리는 천주교 신자들이 많은데 도전2리는 불교신자들이 많다. 아시겠지만 천주교와 불교는 서로 존중하면서 잘 지낸다. 그래서 그런지 도전리는 항상 평온하고 인심이 좋다. 


도전2리 장수폭포는 어떤 폭포인가?

여주 전체를 통틀어 폭포다운 폭포는 장수폭포 하나밖에 없다. 장수폭포도 전주이씨 종중 땅 안에 있는데 폭포 이름이 따로 없어 내가 처음 마을 이장을 볼 때인 2005년 경에 이름을 붙였다. 당시 장수폭포 주변은 쓰레기 투성이고 가끔 무당들이 굿을 한다고 소란을 피우고 그랬다. 비가 많이 내리는 여름철이면 폭포가 장관을 이루어 찾는 사람들이 꽤 있었지만 주변에 편의시설 하나가 없었다. 그래서 도랑을 정리하고 정자, 화장실, 주차장 등을 새로 만들어 주변정리를 깔끔하게 했다. 그런데 이제는 비가 거의 내리지 않아 폭포에 물이 없어 한여름 잠깐을 빼고는 영 볼품이 없다. 여주시가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여주의 명소로 만들 수 있는데 정말 안타깝다. 

 
장수폭포 아래 동학2대 교주 최시형 선생이 도피생활을 했던 집터가 있다고 하던데?

우리 옆집이다. 땅은 전주이씨 종중 땅이고 그 위의 건물은 개인 소유인데 주인이 여주시내에 나가 살고 있어 폐허가 되어가고 있다. 마을 주민들도 그 집에 그런 사연이 있다는 것을 잘 몰랐는데 몇 년 전 동학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찾아와서 알게 되었다. 동학이라는 말은 역사책에서나 들어봤지 다들 잘 모르는데 역사적으로 매우 의미 있는 곳이 폐허가 되어 가니 무슨 대책을 세웠으면 한다. 최시형 선생의 묘가 금사면에 있다고 하는데 여주가 동학과 깊은 인연이 있는 곳임은 분명한 것 같다. 요즘과 같이 일본이 경제보복을 하고 있는 때에 동학을 역사적으로 잘 아는 것도 중요한 것 같다. 그리고 동학과 최시형 선생의 삶을 잘 엮어서 역사기행 같은 것을 만들어도 좋을 것 같다. 도전리 주민들도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 중에 있다. 


▲ 이충열 도전2리 이장은 여주시가 조금만 관심을 가져주면 도전리를 여주 제일의 관광명소로 만들 수 있다고 자신했다.     © 세종신문

장수폭포를 비롯한 도전리를 새롭게 발전시킬 수 있는 구상이 있나?
 
도전리의 특징은 산이 좋고 물이 맑다는 것이다. 생산성을 가진 젊은 사람들 보다는 직장에서 퇴직을 한 노년층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푸른 산과 맑은 물을 이용한 관광산업을 발전시키는 것이 하나의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장수폭포는 관정을 파서 지하수를 끌어 올려 비가 많이 내리지 않을 때도 폭포에 물이 흐르도록 하여 마감산 등산로와 연결하면 정말 좋은 관광자원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금사면 최시형 선생의 묘소와 연결하여 최시형 선생이 피신해 있었던 집을 복원하면 더없이 좋은 관광스토리가 될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여주시가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도전리 자체적으로 경세사업을 할 수 있는 게 또 있나?

관광산업과 함께 산을 활용한 임산물 생산을 생각하고 있다. 도전리 일대 산들에서는 초가을이 되면 자연산 능이버섯이 많이 자라는데 마을 주민들이 능이버섯을 채취해서 연간 5천에서 8천만 원 정도 수익을 올리고 있다. 지금은 자연에 의지하여 채취하는 수준이지만 좀 더 전문성을 갖추면 체계적으로 버섯과 같은 임산물을 재배하고 그 임산물로 마을주민들의 소득을 올릴 수 있어 그 방법도 고민 중이다. 또 하나는 교육 사업인데 북내초등학교 도전분교를 잘 활용하여 획기적인 초등교육을 도전리에서 실시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만약 마을이 발전하고 사람들이 더 찾아 올 수 있는 시설이라면 전주이씨 종중에서 약 10만평 정도 땅을 기부할 의사가 있다. 


평소에 세종대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우리 전주 이씨들이야 특별히 생각하고 말고 할 게 없다. 도전리에 사는 전주 이 씨들은 세종대왕 후손들이고 나는 세종대왕 21대 손이다. 한글을 창제하고 수많은 과학 작품을 만들어 내시는 등 많은 업적을 남겼고 그 업적은 민족의 업적이고 자랑이다. 추측컨대 광평대군 손자인 이지학 할아버지께서 도전리에 처음 들어오신 것은 왕좌를 놓고 권력의 다툼이 심해질 때 혼란을 피해 숨어 들어오셨을 것 같다. 대군의 후손들은 늘 경계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그래도 오늘 우리 전주 이씨들은 세종의 후손이라는 그 자체가 긍지고 자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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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09/19 [14:53]  최종편집: ⓒ 세종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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