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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의 실용주의 정신과 정치
세종철학의 힘 - 생생[거듭살이]의 삶을 찾아서 ⑪
 
세종신문   기사입력  2019/09/05 [14:22]
▲ 김광옥 수원대 명예교수     
세종은 현실에 바탕을 둔 실용정치가였다. 이런 까닭으로 기존의 틀을 깨지 않으면서 도덕과 윤리 사이, 유교와 심학 사이, 나아가 풍수와 무교 사이를 오가며 그들의 실체를 알고자 했다. 우선은 기존의 틀을 인정하면서도 현실의 자[尺]를 통해 새로운 가능성을 찾으려 했다. 세종에게서 새로움이란 기존 사상들 사이의 충돌, 일례로 사람과 사물의 변화 사이에 있을 제 3의 세계를 생각한 것으로 보인다. 
그 중에 하나로 먹고 사는 업에서 특히 생업에 대해 관심과 언급이 상당했음을 보여준다. 《조선실록》 ‘생업’ 원문 전체 기록 252건 중 세종의 언급이 59건으로 약 1/4을 차지한다. 세종은 생업을 강조한 조선의 임금이다. 
 
다양한 직[업] : 국가에서 십학을 설치하고 … 매 학(學)마다 제조만 있고 참좌관이 없어서 … 더구나 악학·의학·음양(陰陽)·풍수(風水) 등 학문은 평소에 가르치지도 않다가 임시하여서 고강(考講)하게 되니, 인재를 뽑는 뜻에 어긋남이 있습니다.(《세종실록》 즉위/12/17)
 
바로 십학에 참좌관을 둔다는 것은 학문의 다양성과 진흥책을 펴는 일이다. 업의 개념으로 다양한 분야들이 상호 교류하며 발전하는 방책을 세운 것이다.  
 
“십학(十學)을 설치하였으니, 좌정승 하윤)의 건의를 따른 것이었다. 첫째는 유학, 둘째는 무학, 세째는 이학(吏學), 네째는 역학(譯學), 다섯째는 음양 풍수학, 여섯째는 의학, 일곱째는 자학(字學), 여덟째는 율학, 아홉째는 산학, 열째는 악학(樂學)인데, 각기 제조관을 두었다.” (《태종실록》 6/11/15)
 
업/직의 다양성은 기술자들의 공인에서 잘 나타난다. 한양의 성을 쌓는데 공장(工匠)이 2,211명이나 동원되었다. 
 
공장工匠 : 우의정 정탁으로 도성 수축 도감 도제조(都城修築都監都提調)를 삼고, 제조 33명과 사(使)·부사·판관·녹사(錄事)를 합하여 1백 90명을 더 두다. 처음에 병조 참판 이명덕이 그 일을 주관하 여 여러 도의 정부(丁夫)를 합계 43만 명을 징발하였다. ...이에 감하여 ... 모두 32만 2천 4백 명이요, 공장(工匠)이 2천 2백 11명이다. ... 군사를 거느린 경력과 수령이 모두 1백 15명이다. (《세종실록》 3/12/10)
 
조선실록에서 공장(工匠) 원문은 전체 624인데 이중 세종이 70건으로 두 번째로 많다. 심
지어 미신이라 여겨 모두들 싫어하고 또 반대하는 무교(巫敎)에 대해서도 억압을 가하지 않
았다.
 
무당 : 장령(掌令) 조자가 아뢰기를, “음사(淫祀)의 금법(禁法)은 여러 번 교지를 내리셨고, 또 《원전(元典)》에 기재되어 있사온데, 나라 무당[國巫]이 아직도 있사오니 이는 근본(根本)이 끊어진 것이 아니옵니다. 청하옵건대, 먼곳으로 내쫓아서 그 요술을 팔지 못하게 하소서. …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음사(淫祀)의 금지는 조종(祖宗) 때부터 시작하였지만, 무녀들이 아직도 끊어져 없어지지 아니하였으니, 내 어찌 감히 갑자기 혁파할 수 있겠는가. … ‘무릇 법을 세우는 것은 시행하기 위해서인데, 시행할 수 없는 법은 세울 수 없는 것이다.’ (《세종실록》25/9/2)  
 
무교 또한 사회의 풍습으로 존재하고 있고 그보다 더욱이 법으로 강제할 문제가 아닌 생활풍속으로 문화의 영역임을 제시하고 있다.

▲ 숙정문. 태조 4(1395)년에 지었으나 태종 13년에 풍수지리학자 최양선(崔揚善)이 지맥을 손상시킨다는 상소를 올린 뒤에는 문을 폐쇄하고 길에 소나무를 심어 통행을 금지하였다. 이후 숙청문은 음양오행 가운데 물을 상징하는 음(陰)에 해당하는 까닭에 나라에 가뭄이 들 때는 기우(祈雨)를 위해 열고, 비가 많이 내리면 닫았다고 한다. 최양선은 세종 조에서도 활약한다.     © 서울스토리


풍수는 과학인가 실용인가 
 
세종 당시는 경복궁이 정비 중인 때여서 여기저기 길과 건물에서 손 볼 일이 있었다. 이런 관계로 최소한의 풍수를 살피지 않을 수 없었다.
 
풍수 : 지리의 술법은 괴이하고 망령된 것이어서 옛글이나 현인의 글에 보이지 아니하고, 유식한 선비가 모두 말하기를 부끄러워하는 바입니다. 그 말에 이르기를, ‘화와 복은 모두 조상의 묏자리나 사는 집터의 방위의 길흉에 연유한다.’고 하오니, 사람의 수명이나 화복은 모두 처음부터 타고나는 것이요, 또 착한 일을 하면 백 가지 복이 내리고 착하지 않은 일을 하면 백 가지 재앙이 내리는 것은 이치의 당연한 것이온데, 만약 그 말과 같다 하오면 처음부터 타고난 것은 과연 어디에 있으며 선악의 보응이 틀리지 않는 이치는 또한 어디에 있겠습니까. … 이제 최양선과 이진 등이 좁고 옹색한 편견으로 지리를 약간 배워 가지고서 그것을 매개로 승진하기를 요구하고자 글을 올리어 망령하게 궁궐의 이해를 말한 일이 있사온데, 만일 전하의 명철하심이 아니었다면 태조께서 만대를 위하여 생각하신 것이 거의 떨어져 없어졌을 것입니다. 이같은 무엄하고 망령된 무리를 그냥 두고 죄주지 아니하면 요망한 말과 괴상한 행위로 술법을 지세하고 승진을 희망하는 무리가 잇달아 나올 것이 깊이 두렵사옵니다. … 바라옵건대, 글하는 선비들에게 거짓 술법을 배우지 못하게 하시어 습관 풍속을 철저히 억제하시면 십분 다행하겠사옵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그대들이 언관(言官)의 자리에 있으므로 그 본 바와 들은 바의 일을 말로 하여 아뢰니 내가 매우 가상하게 여기나, 그러나 지리의 논설을 배척함은 너무나 과하지 아니하냐. 세상 사람들이 집을 짓고 부모를 장사지낼 때에 모두 지리를 쓰고, 또 우리 태조·태종께서도 도읍을 건설하고 능침을 경영하심에 모두 지리를 쓰셨는데, 어찌 아뢴 말과 행한 것이 서로 다르냐. 이는 말과 행위가 틀린 것이다. 또 최양선은 자기가 공부한 것을 임금에게 진술하였으니 충성된다고 말하는 것이 옳을 일이지, 요망한 말과 괴상한 술법이라고 논하여 죄를 다스리려 함은 무슨 까닭이냐." 하매, 지평 홍상검(洪尙儉)이 아뢰기를, "지리의 공부는 서운관(書雲觀)에서 맡아 하는 것인데, 이제 집현전의 유신들에게 명하여 풍수학을 강명하게 하시어서 최양선이 그릇되고 망령스러운 소견으로 감히 궁궐의 이해를 말하였으니, 이것이 신 등이 전하를 위하여 말한 바입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그대의 말한 바가 소장에 진술한 것과 같지 아니함은 또 어찌된 것이냐. 물러가 동료들과 더불어 다시 생각해 보라." 하였다. (《세종실록》 15/7/26)
 
풍수 : (임금이 최양선의 파직에 대해) ‘양선이 마음으로 깨달은 이치가 없다.’ 하면 가하거니와, 지리(地理)에 어찌 마음으로 깨달을 이치가 있겠느냐 함은 불가하다. ... 모두 자손의 길흉으로써 말하였는데, 양선의 말한 것이 무엇이 가히 죄가 될 것인가. ... 이제 양선의 말한 바를 불순하다 하여 만일 버리고 쓰지 아니하면, 이는 뒷사람들의 말할 길을 막는 것이므로 파직시키는 것은 불가하다.” 하였다.(《세종실록》 25/2/7)
 
이조(吏曹)에서는 풍수를 하는 최양선에 대하여 지리를 마음으로 깨달아 안다는 것은 허위라고 죄목을 댄다. 세종은 “최양선의 인품으로 천리에 대해 마음으로 깨달은 것이 있다면 못 믿겠으나 지리와 연관해 지리상 길한 곳이 자손에게도 길하다고 하는 것은 일종의 마음의 깨달음이 아니겠느냐” 고 되묻는다. 즉 천리에 관한 것은 성품과 연관이 되지만 기술 즉 실용에 관한 것은 마음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풍수란 전이나 지금이나 순수 과학은 아니지만 생활과학의 성격이 있음은 사실이 아닌가. 

세종은 풍수를 일부 인정했으나 그렇다고 풍설은 안 믿었다. 제주에서 용을 보았다는 세종 12년과 22년의 풍설에 대해 끝까지 질문을 한 세종의 모습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다음 기회에 소개)  

김광옥 수원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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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09/05 [14:22]  최종편집: ⓒ 세종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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