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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록여행51 - 리더의 섬세한 말 한마디 ‘특히 용서하라, 오는 봄에나 시작하라’
 
세종신문   기사입력  2019/09/05 [14:19]
▲ 김태균 세종신문  대표
1419년 12월은 세종이 즉위한지 1년이 조금 넘은 때이다. 
양력 1418년 8월에 즉위한 후 굵직한 사건이 많았다. 세종의 즉위와 함께 아버지 태종이 지휘한 처가집의 몰락으로 장인은 사약을 받아 죽고 장모는 노비가 되었다. 이어서 봄에는 충청도 비인현에 몰려온 왜구들로 떠들썩했고 이로 인해 시작된 대마도 정벌이 진행됐다. 명나라에 새 임금의 추인을 받기위한 사신접대는 소홀히 할 수 없는 큰 일이었다. 그리고 불교의 혁파까지 이 모든 것이 꿈처럼 바람처럼 1년여 사이에 지나갔다. 이제야 내치와 민생에 눈 돌릴 만한 여유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간 실록의 기사가 전하는 조정의 풍경이나 임금의 말과 신하들과의 논변은 정치적이었고 당위적이었다. 하지만 어느정도 안정감을 갖게 되자 자질구레한 임금의 말과 백성을 향한 마음들이 드러난다. 작은 사건들 몇 가지 속에서 임금의 마음이 잔잔하게 보인다.
여러 백성이 살인과 강도의 죄를 짓고 사형을 구형한 것을 보고하는 장면이다. 중죄를 짓고 붙잡혀 형을 받은 사람들이다. 노비들이 많다.
 
대정현 백성 성보개(成甫介)는 고의로 살인하였으므로, 참형에 처하고, 길주(吉州) 백성 최모지리(崔毛知里)와 해풍군(海豐郡)에 사는 사노(私奴) 오마지(吾麿之)는 사람을 구타하여 죽였으므로, 교수형에 처하고, 성주(成州)에 사는 사노 가언금(加言金)은 강도로서 참형에 처하였다.
형조에서 사형수에 대한 죄를 아뢰니, 임금이 말하기를,
"금년에 사형수를 판결한 것이 30여 인이라, 죄수를 위하여 살리는 방도를 강구하는 것이 옳으니, 구형함을 고치라.” 하였다.(11/15)
 
‘살리는 방도를 강구하는 것이 옳다’는 말이 눈에 들어온다. 너무 사형판결이 많았다. 살리는 방법이 있을 것이다. 형벌의 구형량을 조정하라는 말이다. 법을 따르자는 신하들의 의견이 당연히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임금의 마음은 그렇지 않은 듯하다. 

때로 이런 현실적 장면이 오늘날도 많은데 한편으로 보면 손쉽게 결정하기 어렵다는 생각도 든다. 무고하게 죽임을 당한 사람과 그 가족의 억울함을 생각하면 당장이라도 극형에 처하는 것이 맞다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한다. 또 한편으로는 그 안에 무슨 사정이 있었을 것이라는 감상적 생각도 든다. 이러한 혼란을 막기 위해 법률조문이 있는 것이고 이것을 공정하게 집행하는 것이 선진화된 사회임은 틀림없다. 하지만 아직 임금경험이 그다지 없는 1년 조금 넘은 세종은 ‘살리는 방도를 강구하는 것이 옳다’고 말한다. 
 
다음은 어전회의에서 발생한 어이없는 장면이다. 12월 한참 추운 때의 일이다.
 
인정전에 나아가 조회를 받고 편전에서 정사를 보는데, 김점이 갑자기 자리를 떠나 땅에 엎드려 말하기를,
"신에게 자식 하나가 있는데 지금 감기에 걸려 있습니다. 내약방(內藥房)에 입직한 의원 조청(曺聽)에게 병을 보아주도록 명하시기를 원합니다."
하니, 임금이 정색하면서 말하기를,
"여러 중신들과 시종신들이 정사를 아뢰는 편전은 신하를 맞이하여 정사를 모의하는 곳인데, 이에 공공연하게 자기의 사정(私情)을 말하여 부끄러워하지 않으니, 점(漸)은 본디 말할 것도 못되거니와, 대간의 관원이 〈곁에〉 시좌(侍坐)하여 듣고서도 감히 규탄하지 못하니, 그 또한 비겁한 것이로다.” 하였다.(12월 11일)

김점은 염치가 없고 말을 지리하게 하며 자기 잇속을 서슴없이 챙기는 사람이다. 내용은 이렇다. 여러 신하들과 함께 하는 어전회의 중에 갑자기 임금 앞에 따로 나와 엎드려서 자식이 아픈데 궁의 실력 있는 의사 조청이란 사람을 아들치료에 보내 달라고 청하는 대목이다. 상상하기 어려운 대목이지만 이런 장면을 만들 수 있는 김점이란 사람의 면면을 볼 수 있는 장면이다. 세종은 정색하며 말했다.

‘공사를 논하는 자리에서 사적인 청탁을 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으니 참 할말이 없다. 그런데 그 사람은 그렇다 쳐도 옆에 있는 대간들은 그걸 보고만 있단 말이냐. 당장 뛰쳐나와 김점의 그릇된 점을 규탄하며 말해야 하지 않겠는가. 너희 대간들이 비겁하다’란 말이다. 

대간의 언로를 확 틔워주는 처사이다. 이후로 대간들은 매우 직설적이고 당당하게 임금과 신하들의 말에 대해 주저함 없는 비판의 어조를 이어간다. 이런 장면에서 그냥 눈살을 찌푸리며 혀를 차고 그러려니 할 수도 있었지만 이때 대간의 할 일을 직설로 표현한 젊은 세종의 상황활용 능력이 돋보인다.
 
형조에서 아뢰기를,
"박성로(朴成老)가 세 번이나 절도를 범했으니, 법에 의하여 당연히 참형에 처하여야 합니다."
하매, 임금이 이르기를,
"성로가 이미 독자(獨子)요, 금년에 죽을 죄수가 너무 많으니 특히 용서하라."
하였다. 유영(柳穎)이 아뢰기를,
"후일에 반드시 폐단이 있을 것이니, 마땅히 법대로 하여야 합니다.” 하므로 이를 좇았다.
경기 감사(京畿監司) 조치(曺致)가 군인을 출동시켜 재목(材木)을 베어 양녕의 가사(家舍)를 짓자 보고하니, 임금이 이르기를,
"요즈음 한참 추운 때이니, 오는 봄에나 시작하라.” 하였다.(1년 12월 25일)
 
중죄를 지었더라도 독자이니 용서해주자고 한다. 결국 법대로 처결은 됐지만 국가운영의 책임자 입장에서는 갖기 어려운 마음가짐이다. 사형에 해당하는 생활형 강력범죄들은 임금의 국가운영에 있어서 강력한 처벌이 훨씬 더 조치일 것이다. 하지만 길게 보면 이처럼 용서하여 재생의 기회를 주고자 하는 마음들이 모여서 위대한 업적을 만들어낸 것은 아닐까 싶다.

이어 붙은 기사의 배경은 양녕에 대한 이야기다. 양녕은 세종의 형이고 한때 세자였으나 쫓겨난 사람이다. 여러가지 문제가 많았다. 결국 경기도 이천지역에 양녕의 거처를 마련해 주기로 했다. 이를 위해 경기감사가 책임을 지고 양년의 거처를 짓기 위해 나무를 베고자 하는 보고를 올리니 ‘날이 풀리면 시작하라’고 말한다. 
당시 일꾼들이란 인근의 백성들을 동원하는 일이다. 나라에서 일당을 주기도 하지만 어떤 경우는 스스로 먹을 것을 싸 들고 와서 일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일도 흔했다. 세종의 요지는 간단하다. 추운 날 한사람을 위한 집 짓기를 위해 많은 백성들을 고생시키지 말고 좋은 날 하자는 것이다.
 
다음 장면은 다시 한 번 백성의 안위를 위해 섬세한 관심을 쏟는 임금의 마음을 알게 하는 장면이다. 1월 27일의 일이다.
 
"지금 일기가 따뜻하니 강의 얼음이 장차 풀리게 되어 사람이 빠질까 염려되니, 각 나루터에 명하여 얼음을 깨고 사람을 건너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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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09/05 [14:19]  최종편집: ⓒ 세종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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