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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눈을 떠
이상국 연재 수필 - 아들의 초대
 
세종신문   기사입력  2019/09/05 [14:18]
▲ 수필가 이상국     
소파 왼쪽에 찾던 가방이 있다.
‘이런! 집에 두고 사무실에서 찾으려 하다니.’
삼 일 전부터 가방을 찾았다. 강의 준비할 자료―책, 노트, 출석부, 그런 게 다 들어 있어 그걸 찾아야 비로소 강의 준비를 할 수 있는데 가방이 안 보였던 것이다. 주섬주섬 가방에서 책을 꺼내고 노트를 꺼내고 출석부를 찾는다. 
왜 안 보인 거지. 하루 24시간 옆에 두고, 아니지 일주일 전에 강의가 끝나 던져두고 방치한 것이니, 일주일은 족히 옆에 두고 찾은 꼴이다. 이런 맹추.
확실히 관심이 없으면 눈에 띄어도 보이지 않는 모양이다. 가방을 기를 쓰고 찾았더라면, 사무실에 나가 찾다 없으면 다시 돌아와 눈에 불을 켜고 찾았으리라. 샅샅이 찾았으리라. 잃어버린 것이 비씨카드였다면 죽기 살기로 찾았을 것이다. 누군가 잃어버린 카드로 고가의 물건을 사거나 현금을 인출하는 날이면 나는 완전 망할 것이니.
잃어버려도 그만,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안일에 빠졌던 모양이다. 하긴 4년째 계속되는 강의니.
시들하기도 하거니와 웬만한 건 눈감고도 암기할 것이니. 이런 걸 보고 매너리즘에 빠진다는 거로구나.
나의 모토, 나의 신조, 나의 목표, 이런 것들이 언제나 새로워져야 한다고 외치고 암시하고 강조하고, 역사는 반복하지만 예술을 반복하지 않는다고, 예술은 언제나 참신해야 한다면서 왜 이지경이 된 거냐. 왜 나는 내 강의에 이토록 무관심해졌을까. 내 시시한 강의에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열심히 들어주는 나이 많은 수강생들에 게 미안해할 줄도 모르는구나.
오 헨리의 반전, 요사의 문체,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매직리얼리즘, 파묵의 빛나는 ‘인생’, 윤동주의 맑은 영혼, 만해의 타고 남은 재, 소월의 절규하는 초혼, 에셔의 질주하는 뫼비우스, 마그리트의 겨울에 내리는 비, 맹난자의 확장하는 ‘침묵’, 왜 이런 것들을 외면했던가. 구태의연한 단어의 배치, 단락, 주재와 소재, 구성에만 매달렸는가.
얼마나 맥빠진 강의였는가. 그리 했으니 많은 수강생이 반으로 줄고 또 반으로 줄고, 문 닫을 날이 가까이 왔지 않느냐.
눈을 뜨자. 눈을 떠서 참신한 것 하나하나 찾아야 한다. 왜 어제 강의에 맹난자의 수필 ‘침묵’을 복사해 가지 않았을까. 생각지도 못한 내용이며 다른 것 열 개 설명하는 것보다 가치 있고 수강생들은 눈 반짝이며 들었을 텐데.
교과서에 매몰되지 말고 새로운 것을 찾아 바람을 일으켜야 한다. 어느 날 G는 홑이불 위에 앉혀 하늘로 날려 보내고 L은 유니콘에 태워 지평선이 보이는 푸른 들판을 달리게 하며 Y는 이슬 속에 가두어 거미줄에 매달아 놓고 S는 수천, 수만 개의 눈송이로 아름다운 도시에 하염없이 내리게 하라.
자! 눈을 떠라. 참신한 세상을 올곧게 바라보아라. 그러면 너의 강의실은 빛날 것이며 수많은 수강생들은 환호할 것이니.

수필가 이상국

*이 글은 저작권자의 허락을 받아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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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09/05 [14:18]  최종편집: ⓒ 세종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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