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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록여행49 - ‘오래된 폐습을 갑자기 개혁할 수 없어서’
 
김태균   기사입력  2019/08/28 [13:44]
▲세종신문 대표 김태균    
어느 시대에나 신구의 충돌은 있게 마련이다. 신세대와 구세대, 신학문과 구학문, 전통과 개혁의 갈등은 역사의 진보를 이루는 자연스럽고 당연한 과정일 것이다. 우리나라는 그 어느때 보다 이러한 신구의 갈등과 미래지향의 중대한 갈림길에 서 있다. 
 
첫째는, 남북의 관계가 극적으로 변화될 수 있는 분기점이다. ‘평화경제’라는 이름으로 진행되는 경제협력과 대륙과의 연결은 근세기에 경험하지 못한 전혀 다른 지정학적 변화를 몰고 올 것이다. 새로운 세기의 한반도가 될지 다시 반도의 반 토막으로 힘겨운 패권대결의 장에서 눈치보는 꼬맹이로 살지를 결정하게 될 것이다.

둘째는, 미국과 중국의 패권경쟁이다. 기술패권으로 시작한 대결이 무역대결로 이어지고 있고 그리고 다시 금융대결로, 다시 군사적 힘의 대결이 이루어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의 머리위와 코앞의 면전에서 맞붙는 이 상황은 어떤 파편이 튈지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셋째는, 일본의 무역보복으로 불리는 경제전쟁의 촉발이다. 역사인식의 문제를 경제적 이권의 문제로 전도 시키더니 드디어 친일과 반일, 독립과 협력이라는 의제를 만들어 내고 있고 더 나아가 군사적 대립의 측면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어떤 이는 고개를 숙이라 하고 어떤 이는 우리 스스로 독립을 할 수 있는 좋은 호기라고도 한다. 국민들은 불매운동을 벌이고 정부는 ‘결코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천명하며 힘을 모아 주기를 호소하고 있다. 마치 우리가 발을 딛고 서있는 세개의 축이 동시에 흔들리는 듯한 엄중한 국면이다. 
 
여기에 더해 장관 한사람의 임명을 두고 벌이는 마구잡이식 의혹 만들고 부풀리기는 점입가경이다. 무엇이 진실인지 헷갈리게 만들면서 ‘나쁜놈과 나쁜 가족’이라는 이미지 붙이기에만 성공하면 나머지는 문제가 안된다는 식의 ‘아무말 대잔치’는 역겹기 그지없다. 10일동안 쏟아진 야당과 언론의 의혹 만들기와 확산이 3만건이라니 놀랍다. 해명해야 할 사람의 입은 하나인데 그 마저도 말못하게 해 두고 수많은 입들이 온통 악담으로 덮고 있다. 어디에 숨어있다가 이렇게 한번에 튀어나와서 총 공세를 퍼부으며 장관 하나를 낙마 시키기 위한 연합이 이루어지는지 신기하다. 
 
하지만 세상이 예전 같지 않게 변했다는 사실은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될 것이다. 진실 또는 사실은 튀어나오지 못하게 묻어두고 이미지의 선동만으로 국민들의 의식을 휘어잡고 나아가기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다. 동시에 오래된 세력의 구습을 혁파한다는 것이 얼마나 지난하고 힘든 과제인지를 다시한번 느낀다. 의혹을 받는 당사자의 입과 객관적 해명의 장을 통해 옥석이 가려지기를 기다려 본다. 
 
조선왕조를 개국한지 약 30년, 아직도 고려의 구습은 여전했다. 그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문화적 현상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불교의 영향이었다. 유학의 나라를 표방한 조선의 지배계급의 입장에서는 어떤 형식으로든 불교의 영향력을 축소시켜야 할 입장인데 딱히 적당한 명분을 만들기 어려웠던 와중에 마침 유명한 절의 중들이 계집종들을 취한 사례가 보고되었다. 이것은 정부 입장에서는 잘 활용할 적절한 정치적 재료가 된다. 

세종1년 11월28일 임금에게는 불교 혁파에 관한 상소가 줄줄이 올라온다. 의정부와 6조, 사간원의  상소다. 
 
의정부와 육조, 사간원이 상소하기를,
"석가는 천축국(天竺國) 정반왕(淨飯王)의 아들로서, 성(城)을 넘어 출가하여, 설산(雪山)에서 도를 닦고 성중(城中)에서 걸식하였으매, 초조(初祖) 달마(達摩)와 6조 혜능(惠能)이 혹은 장삼을 입고 벽을 향하여 좌선하였으며, 혹은 웃옷을 벗어 메고 방아를 찧었으며, 종을 두고 공양하였다는 것은 듣지 못하였습니다. 국가에서 회암사는 불교의 수법 도량(修法道場)이요, 진관사는 수륙 도량(水陸道場)이므로, 노비를 넉넉하게 주어 공양하게 하였으니, 여기에 있는 자는 진실로 마음을 깨끗하게 가지고 욕심을 적게 하여, 불조(佛祖)의 임금을 수(壽)하게 하고 나라를 복되게 하는 정신을 계승하고, 국가의 무거운 은혜에 보답하여야 할 것인데, 이제 회암사 중 가휴(可休)·정후(正厚)와 진관사(津寬寺) 중 사익(斯益)·성주(省珠) 등 수십여 인은 항상 절의 계집종과 음욕을 방자히 행하여 삼보(三寶)를 더럽혔고 국법을 범하였습니다. 이름난 절로서 이와 같을진댄, 딴 절 중들의 더럽고 행실이 없음은 단정코 알 수 있습니다. 여러 절에 노비가 있는 것은 대개 예부터 내려오는 폐습에 기인한 것이므로, 갑자기 개혁하지 못하던 것이나, 이것은 중들을 죄에 빠지게 하는 것으로서, 불도의 수치일 뿐만 아니라, 또한 국법의 결함이라 하겠습니다. 공손하게 생각하건대, 주상 전하께서는 총명하고 슬기로운 자질로서, 천명을 받고 왕위에 오르시어 정신을 가다듬고 정치를 하고 계시니, 옛날의 폐습을 개혁하고 새로운 정사를 선포함이 마땅합니다. 신 등은 원컨대 여러 절의 노비를 다 없애어 중들로 하여금 음란한 행동으로 죄에 빠지는 잘못이 없고 청정 과욕(淸淨寡欲)하는 아름다움이 있게 하면, 이 위에 더 다행이 없을까 합니다.".(1년 11월28일)
 
눈에 띄는 대목이 ‘여러 절에 노비가 있는 것은 대개 예로부터 내려오는 폐습에 기인한 것이므로 갑자기 개혁하지 못하던 것’이란 대목이다. 어느 시절이나 이와 같은 폐습은 있다. 다만 이것을 급격히 고치기에는 많은 저항과 위험이 따르기에 그 과정의 지난함을 이겨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때와 명분을 만난 상황에서는 해야 할 일을 해야 한다. 결국 임금이 3의정 및 대사헌을 불러서 명한다.
 
"서울과 지방의 사찰 노비를 혁파함이 가하다. 개경(開慶)·연경(衍慶)·대자암(大慈菴)의 노비도 또한 혁파할 것이나, 오직 정업원(淨業院)은 과부(寡婦)들이 모인 곳이고, 또 노자(奴子)가 가까이 하는 곳이 아니니 면하라.”(1년 11월 28일)
 
그런데 노회한 정치가 태종의 눈에는 다르게 보이는 모양이다. 다음과 같은 말로 신하들과 상의한다. 
 
상왕이 조말생과 원숙에게 묻기를,
"절의 노비를 이제 다 혁파하였는데, 중들의 생각에는 또 장차 절의 전토를 혁파하여 불도가 영영 끊어진다 할 것이니, 이것도 또한 염려하지 아니할 수 없는 것이다. 비록 불교를 물리치려고 하나, 그 업(業)이 이미 오래되어서 갑자기 혁파할 수 없으니, 회암사 같은 이름난 절에는 전토를 더 주어서, 그들의 마음을 위로하는 것만 같지 못하다.” 하니, 말생 등이 답하여 아뢰기를,
"상교가 매우 합당합니다.” 하였다.(1년 11월 29일)
 
노비혁파는 했으나 장차 전답까지 혁파한다고 생각하고 민심을 혼란케 한다면 염려할 일이라 여기고 사람이 많이 모이는 절에는 오히려 전답을 더 주는 회유책을 쓴다. 이것이 정치인가 싶은 대목이다. 마음 같아서야 싹 쓸어버리고 싶지만 뿌리깊은 불교의 영향력을 고려하여 한발 물러서는 정치력도 발휘하는 것이다. 결국 세종의 명으로 다음과 같은 지시가 떨어진다. 약간의 타협점인 것이다.
 
왕지(王旨)하기를,
"회암사와 진관사의 중 가휴와 사익 등 수십여 명이 그 절의 비자를 간음하여 그 도를 스스로 파괴하였다. 그러므로 각절의 노비를 모두 혁파하여 죄에 빠지지 않게 한 것이다. 그러나 회암사는 종들이 모이는 곳으로서 생리(生理)117) 가 근심스러우니, 호조에서 밭 1백 결을 더 주게 하라.” 하였다.
다시 임금이 말하기를, "도망하고 있는 자는 굳이 캐물을 수 없으나, 간음을 범한 중들은 비록 대사(大赦) 이전이라도 모두 머리를 길러서 군정(軍丁)에 충당하라.” 하였다.(1년 12월 1-2일)
 
지난 100년간 우리 근대사는 곳곳에서 뒤틀렸다. 
친일이 반공이 되고, 반공은 친미와 손잡고 분단을 고착했고, 친일과 반공의 토양에서 자리잡은 독재는 산업화의 주역이 되었으며, 이것이 보수가 되고 분단은 친일-보수를 튼튼하게 만드는 자양분을 공급했다. 
하지만 이제는 자의반 타의반 적폐의 민낯을 드러내는 시대를 만나 자강하는 한반도의 세력과 이대로를 외치는 ‘자칭 보수’가 미래를 담보로 투쟁의 장에 있다. 한번쯤 태풍이 불어야 바닷속 찌꺼기들이 청소되고 새로운 생태계가 만들어지는 것이 자연법칙인 것처럼 그런 건강한 국가운명의 생태계를 위해 필요한 과정이라면 정신 똑바로 차리고 국민 된 도리를 해야 할 것이다.

세종신문 대표 김태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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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08/28 [13:44]  최종편집: ⓒ 세종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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