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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의 두 번째 생을 여주에서 살고 있다”
[인터뷰] 북내파출소장 박종국 경감
 
이재춘 기자   기사입력  2019/08/23 [21:18]
시민을 위해 일하고, 시민들과 어울릴 때 경찰관으로서의 보람을 느낀다는 북내파출소 박종국 소장을 만나보았다. 박 소장은 죽을 고비를 넘기고 새롭게 발령 받은 곳이 여주였다면서 ‘경찰의 두 번 째 생을 여주에서 살아가고 있다’고 하였다.   

▲ 박종국 북내파출소 소장     © 세종신문


경찰을 시작한 계기가 무엇인가?

나는 전남 화순에서 8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평생 농사만 지으신 우리 부모님은 8남매를 다 광주에서 공부 시키셨다.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하다 20대 후반에 결혼을 했다. 7급 공무원 시험도 준비하고 기자도 준비했는데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경찰공무원을 포함한 모든 공무원이 만30세까지만 시험을 볼 수 있었는데 다행히 나는 호적에 2년 늦게 올라 서른두 살에 경찰을 시작했다. 세상을 대충 살지는 않았지만 그 당시는 생활이 넉넉하지 못했다. 단칸방에서 아내와 아들과 함께 살면서 진로를 모색했다. 하루는 일용직 노동을 하다가 화장실에서 절반이 찢어져 나간 청와대 경비단 모집 광고를 봤다. 월급과 대우도 좋고 집도 준다고 하길래 3개월 죽어라 공부해서 경찰이 되었다. 1991년 3월 16일 청와대 101 경비단에서 첫 근무를 시작해 6년 7개월을 청와대에 있었다. 


여주에는 언제 어떻게 오게 되었나?

청와대에서 근무하다 서울 광진에서 8년, 양평에서 4년, 경기도 광주에서 4년 근무하다 2016년 특진을 하면서 북내파출소 소장으로 오게 되었다. 2015년 12월 28일 ‘대전 성탄절 총격사건’이 발생했는데 이 사건 피의자를 검거해 특진을 하게 되었다. 그 당시 북내파출소가 어딘지 몰라 내비게이션에 찍고 왔다. 그렇게 여주와 인연을 맺게 되었다. 


특진을 할 정도면 중요한 피의자를 검거한 것 같은데 어떤 사건이었나?

‘대전 성탄절 총격사건’은 크리스마스에 대전시 유성구 대로변에서 총기를 든 강도가 차량운전자에게 총상을 입히고 도주한 사건이다. 사건 직후에는 피의자가 사제 총으로 강도를 한 것으로 추정했다. 2016년 12월 28일 분당에서 광주로 넘어오는 터널에 설치된 범죄추적시스템(WASS)에 피의자 차량이 걸려 순찰 중이던 나와 후배가 출동 하였다. 두 군데 길목을 차단하고 있었는데 경기도 광주에서 피의자의 차량을 만나 3km정도 추적 하였다. 피의자의 차가 주민센터로 들어갔다가 돌아서 나오는 것을 경찰차로 가로 막은 후 체포하기 위해 나와 후배가 피의자 차량 좌우측으로 돌아갔다. 나는 실탄이 장전된 총을, 후배는 전기충격총(테이저건)을 가지고 있었다. 선팅이 진하고 저녁 무렵이어서 피의자 차량 내부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나는 운전석으로 돌고 후배는 조수석으로 돌아갔는데 갑자기 내 귓가로 찢을 듯한 소리를 내며 총탄이 날아갔다. 피의자가 소지한 권총으로 자살을 한 것이다. 피의자를 관통한 유탄이 내 머리를 옆을 스치듯 날아갔다. 그 당시 입은 트라우마로 한 달 정도 밥을 먹지 못했다. 하늘이 도와 살아났다. 
특진을 하고 바로 여주로 왔는데 나는 경찰의 두 번 째 생을 산다는 생각으로 여주시민을 위해 봉사하고 있다. 


시민을 위해 솔선수범하는 경찰관이라고 알려져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당연히 국가경찰로서 할 바를 다 한 것뿐인데 그렇게 알려졌다면 과찬이라고 생각한다. 경찰청의 슬로건이 ‘시민이 경찰이고, 경찰이 시민이다’다. ‘공동체 치안’을 추구하고자 하는 것이다. 치안을 경찰들만 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과 경찰이 하나가 되어 공동체의 주체가 되자는 의미이다. 모든 공직자들이 다 그렇지만 특히 경찰공무원들은 시민을 위해 복무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시민을 만나면 먼저 인사하고, 먼저 다가가고, 먼저 실천한다. 항상 ‘현장에 답이 있다’는 마음으로 생활하고 있는데 여주시민들이 나를 어여삐 봐 주는 것 같아 감사하게 생각한다. 


여주에서 경찰생활을 하며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은 무엇인가?
 
경찰관에게 사건 사고는 일상이지만 생활고에 시달리는 시민을 만날 때가 제일 힘들다. 2018년 2월 추운 겨울이었다. ‘양손에 칼을 들고 자살을 하려고 한다’는 신고가 들어왔다. 현장에 출동해 보니 자녀 학비를 대지 못하고, 남편의 폭력에 시달려온 여성이 양손에 칼을 들고 방문을 걸어 잠그고 자살을 하겠다며 울부짖고 있었다. 경찰이 오면 바로 칼로 찔러 죽어버리겠다고 하는 여성을 겨우 설득하여 무장을 풀고 방안으로 들어가 1시간 넘게 대화를 했다. 이후에 홍문지구대 직원들이 성금을 모아 전달했고 여주시의 긴급자금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1년이 지나 새로운 지원을 받을 수 있는지 물어보려고 전화를 했는데, 그 여성은 빚을 갚지 못해 경찰이 전화를 하는 것이라며 불안해해서 더 이상 전화를 하지 못했다. 처지가 너무 곤란해 도움을 받을 여유조차 없다고 생각하니 정말 안타까웠다. 


경찰을 하면서 스스로 간직하고 있는 기준이나 다짐이 있을 것 같은데?

나는 국가에서 지급한 제복을 입고 시민을 위해 복무해야 하는 대한민국경찰관이다. 국민에게 인사 잘하고, 국민의 어려움을 경청하고, 국민의 입장에서 일하며 국민의 소중한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것이 나의 사명이라고 생각한다. 북내파출소에서 근무하면서 매일 아침 오학초 등교를 살피고 있는데 어떤 사람은 뭐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냐고 한다. 그런데 그 사람이 모르는 것이 있다. 우리 경찰관들이 국민을 위해 일하고 그 일이 잘 마무리 되었을 때 느끼는 성취감은 정말 큰 것이다. 오학초 학생들이 무사히 다 등교를 하고 나서 수업을 시작하는 종소리를 듣고 난 후 조용한 골목에서 혼자 피우는 담배 맛이 얼마나 고소한지 모른다. 

▲ 박종국 북내파출소 소장     © 세종신문


경찰관으로서 가장 힘들 때는 언제인가?

우리 경찰관들은 오로지 시민을 위해 일한다. 그러나 우리가 시민을 좋을 일로 만나기보다는 힘들고 어려운 일로 만나는 경우가 더 많다. 그러다 보니 시민들 중에 자신의 책임과 의무는 다하지 않고 권리만 주장하는 사람들이 가끔 있는데 이럴 때 가장 힘들다. 경찰관을 무시하는 경우도 많고 심한 경우에는 욕설과 폭력을 쓰기도 한다. 물론 공무집행방해죄라는 것이 있지만 경찰이 시민을 이 법으로 걸기가 쉽지 않다. 나도 지금까지 딱 한 번 걸어봤다. 어떻게 해서라도 시민들을 이해하고 헤아려보려고 하지만 도를 넘는 경우가 많아 힘들다. 시민과 경찰이 치안의 동반자라는 입장에서 손을 잡고 머리를 맞대고 협력하는 관계로 되기를 바랄 뿐이다. 또 하나는 동료 경찰이 고통을 느끼는 것을 지켜 볼 때가 힘들다. 사건 현장에서 불의의 사고나 타격에 의해 피를 흘리며 쓰러진 동료를 대할 때는 정말 힘들다. 


경찰관으로서 바라 본 여주는 어떤 곳인가?

여주는 천혜의 자연환경과 교통요충지로 도시와 농촌이 균형 있게 분포되어 있는 살기 좋은 소도시다. 인심이 좋고 유서 깊은 고장 여주에서 근무하게 된 것을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다. 여주에서 3년 7개월 동안 근무하면서 내가 직접 체험해 보니 여주 사람들이 순박하고 예술적 감각이 풍부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시민의 35%가 자원봉사자로 이웃을 도울 줄 알고 역사적인 깊이와 풍모가 있는 곳이다. 관광자원이 풍부하여 미래의 발전가능성이 매우 높은 곳이라고 생각한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텃새가 심하다는 것이다. 텃새로 치자면 여주는 전국에서 두 번째 가라면 서러워 할 곳이 아닌가 싶다. 


치안의 측면에서 개선되어야 할 점이 있다면?

제일 중요한 것이 기초질서를 확립하는 것이다. 기초 질서는 시민들의 생명과 직결된 정말 중요한 사회적 기준이다. 여주는 도농복합도시로 노인들이 많아 무단횡단이나 안전모 미착용과 같은 기초질서를 지키지 않는 경우가 많다. 사고 자체를 미리 예방하는 것이 우선이지만 또한 중요한 것은 사고가 났을 때 그 피해를 줄이는 것이다. 기초질서를 지키면 사고도 예방하고 불의의 사고가 발생했을 시민의 귀중한 생명을 지킬 수 있다. 교통법규를 준수하고 기초질서를 잘 지키는 것이 문화시민의 기본적인 모습이라는 것을 여주시민들이 꼭 알아주었으면 한다. 


평소 세종대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왔나?

우리가 평상시에 ‘산소’의 중요함을 잘 모르듯 내가 여주에 오기 전에는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한글’의 중요성을 잘 몰랐다. 여주에 와서 세종대왕에 대해 이야기도 많이 듣고 책도 접할 기회가 생겼다. 그러다 보니 세종대왕에 대해 더 구체적으로 공부하게 되어 세종대왕의 ‘애민정신’, ‘창조정신’을 새롭게 대하고 있다. 특히 세종대왕의 인간적인 성품과 애민정신, 그리고 독서를 즐겨 하신 것은 우리 후대들이 본받아야 할 표상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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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08/23 [21:18]  최종편집: ⓒ 세종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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