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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성품
세종 철학의 힘-생생[거듭살이]의 삶을 찾아서 ⑨
 
세종신문   기사입력  2019/08/08 [10:37]
▲ 김광옥 수원대 명예교수     ©
세상 모든 물건에는 나름대로의 성질이 있는데 바로 성품(性品)이나 인품(人品)이다. 사람이 갖춘 격은 바로 인격으로, 인격의 조건은 사람다운 예(禮)를 지킬 줄 아는 지혜가 있어야 하고 그 행동이 항상 일관되어야 한다. 그래야 인격자가 될 수 있다. 태도로 나타나는 것이 인품이라면 성격으로 들어나는 것은 성품[性品 혹은 性稟]이다. 이런 기준으로 조선시대 공부하는 유생의 품성은 어떠해야 했을까. 바로 사풍(士風)을 가질 수 있어야 했다.

근래 인문학이 잠간 붐이 이는 듯하다. 인문학이란 무엇인가. 무슨 일을 하든 자신감을 가지고 즐거운 생활을 운용해내며 스스로 버티어내는 힘이다. 바로 삶의 기쁨을 만들어 가는 힘이다. 그런 생활을 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면 행동과 표정에서 자신감과 편안함을 느낄 수 있다. 이것이 오늘 날 인문학이 꿈꾸는 바람[풍]이라 할 것이다.

세종은 공부하는 선비라면 사풍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풍士風

선비도 어느 정도 수양을 거치면 자기 풍을 갖추게 된다. 학문의 차원이나 현실 인식에서 차이가 드러난다. 예를 들어 정치적으로는 현실유지형이나 개혁형 등으로, 성격에서도 보수적이거나 진보적, 내성적이거나 외향적인 성격을 드러낼 것이다. 실록에서 사풍의 기록을 보자. 사풍은 먼저 선비의 염치에서 나타난다. 
 
· 염치 : 우사간 변계손(卞季孫) 등이 상소하기를, “상벌은 국가의 대전(大典)이고, 염치는 사풍(士風)의 대절(大節)이옵니다.”(세종실록12/4/14)

· 국맥기르기 : 시국의 폐단에 관한 이숙치의 상서문에서 “풍속이 박하고 악한 것은 사풍(士風)이 탐오(貪汚)하고, … 착한 것과 간사한 것을 분별하게 하여 국맥(國脈)을 기르옵기를 바랍니다.” (세종실록 18/6/ 18)

· 사풍 : 우정언 정차공(鄭次恭)이 아뢰기를, “ 비록 품질(品秩)이 낮은 조관(朝官)이라도 저희들 서로가 욕하고 헐뜯는다 하오면, 이것도 사풍(士風)의 불미[사풍불미士風不美] 한 것이 되옵거늘, 하물며 대신(大臣)으로서 서로 과실과 죄악을 폭로하고 드러냈사옴은 더욱 옳지 못한 것이 되옵니다.”(세종실록 21/11/27) 

반면에 사풍이나 사도(士道)를 갖추지 못한 선비는 속유(俗儒) 혹은 용속(庸俗)한 사람이 된다. 속유는 어떤 사람인가. 대간에서 연명으로 상소하여 경찬회의 명을 정지하기를 청하며 나오는 말 중에 속유에 대한 기사가 있다.
 
· 속유 : 속유(俗儒)들은 ‘시대의 적의성을 통달하지 못하니 어찌 족히 위임하랴.’ 하여 고전에서 빌려왔다. 사마광이 평론하기를, ‘유자(儒者)도 군자와 소인이 있으니, 저 속유들은 진실로 족히 더불어 다스리지 못할 것이나, 진유(眞儒)만은 취하여 쓰지 못할 것인가.’ (세종실록 23/윤11/21)  

· 용속한 선비 : (집현전 부제학 최만리 등이 언문 제작의 부당함을 아뢰자) 임금이 말하기를, “전번에 김문(金汶)이 아뢰기를, ‘언문을 제작함에 불가할 것은 없습니다.’ 하였는데, 지금은 도리어 불가하다 하고, 또 정창손은 말하기를, ‘《삼강행실》을 반포한 후에 충신·효자·열녀의 무리가 나옴을 볼 수 없는 것은, 사람이 행하고 행하지 않는 것이 사람의 자질(資質) 여하에 있기 때문입니다. 어찌 꼭 언문으로 번역한 후에야 사람이 모두 본받을 것입니까.’ 하였으니, 이따위 말이 어찌 선비의 이치를 아는 말이겠느냐. ‘아무짝에도 쓸데없는 용속(庸俗)한 선비이다.’" (甚無用之俗儒也)(세종실록 26/2/20) 
 
글을 읽지 못해 거듭살아갈 기회를  놓치고 있는 백성들을 사람의 자질 탓으로만 돌리고 있는 정창손은 속유에 속한다. “주문공이 말하기를, ‘속유(俗儒)의 고식지언(姑息之言)이나 속리(俗吏)의 자영지계(自營之計)는 한결같이 형(刑)을 가볍게 하는 것으로 일삼는다.’”(세종실록 21/12/15)고 한다.
 
풍(風)이란 말은 오늘날에도 모든 삶에게 적용된다. 사람들은 평소 입는 복장, 말씨로도 자신을 나타내고 있다. 요즘 나이가 들면 모자를 쓰기 시작하는데 모자를 고르는 일이 쉽지 않다. 모자를 쓰는 순간 자기를 규정짓게 되는데 가령 중절모를 쓰면 신사 풍, 꼭지 베레모는 예술가 풍, 헌팅캡은 활동적인 풍을 나타내 쉽게 결정 지을 수 없다. 이렇듯 모자 하나 고르기에도 생각이 따라야 하는데 매일의 삶에서 자기가 어떻게 사람을 대하고 삶의 의지를 지켜가야 하는지는 삶철학과 연결되는 일이다.

▲ 세종 시대 성리학자인 권근. 사풍을 갖춘 진유라 일컬어진다.     ©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통유와 진유(眞儒) 

세종 1년에  좌의정 박은이 계를 올린다. 

· 문무의 조화 : “문신(文臣)을 선발하여 집현전(集賢殿)에 모아 문풍(文風)을 진흥시키시는 동시에, 문과는 어렵고 무과는 쉬운 때문으로, 자제(子弟)들이 많이 무과로 가니, 지금부터는 《사서(四書)》를 통달한 뒤에라야 무과에 응시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시옵소서." 하니, 임금이 아름답게 여기고 받아들였다
선비가 공부를 한다는 것은 진리라 할 천리(天理)를 정치 현장에서 실현해 내는 일이다. 선비가 정치에 임함에 있어 문관이든 무관이든 단지 한 분야가 아니라 문무를 겸하는 기본 소양을 갖추라는 것이다. 
전회에서 보았듯 세종이 바라는 선비상은 통유다. “통유通儒 : 임금이 대언이 계사(啓事)한 것에 대하여 말하기를, ‘박연(朴堧)은 세상일에 통하지 아니한 학자가 아니라 세상일에 통달한 통유라 할 수 있다.’" 하였다.(세종실록10/2/20) (朴堧, 非迂儒, 可謂通儒。) 

박연은 음악의 이론 뿐 아니라 악기도 만드는 등 관계된 일에 능통한 통유가 되어 있었다. 
세종조의 실록을 보면 당시 성리학자인 권근(權近)을 진유(眞儒, 세종실록 31/2/16) 혹은 유종(儒宗, 세종실록 1/8/16)이라고 부르고, 고려 말에 급제하여 이후 예의판서를 지낸 조용(趙庸)을 종유(宗儒, 세종실록 6/6/28)이라 부르고 있다. 나름의 특성 있는 선비 풍을 지닌 사대부라 하겠다. 
 
김광옥 수원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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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08/08 [10:37]  최종편집: ⓒ 세종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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