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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이웃나라를 늘 불편하게 하는 국가”
[인터뷰] 여주대학교 박영민 교수
 
이재춘 기자   기사입력  2019/07/24 [15:32]
일본의 경제보복에 따른 일본제품 불매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시점에 여주대학교 박영민 교수를 만나 동학과 한일관계의 뿌리에 대해 들어보았다. 박 교수는 일본은 건국사상 자체가 국수주의적이고 침략적이기 때문에 주변국들에 의해 잘 관리되어야 평화를 유지할 수 있다고 하였다.  

▲ 여주대학교 박영민 교수     © 세종신문

여주와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되었나?

대학 때 여주 금모래은모래 백사장에 엠티를 와서 텐트치고 노래 부르던 추억이 있다. 그 좋았던 기억으로 1998년 여주대 교수로 부임했다. 독서에 몰입했고, 지역사회를 위해 친환경 ‘지렁이 농법’, ‘홈 메이드 와인’ 만들기 등을 지도했다. 책을 통해 얻은 약간의 통찰을 나누고 공유하는 공간이 필요해 아내 김영화 대표와 함께 동네서점 ‘세런디피티78’을 열었다. 세런디피티78은 지역사회의 문화콘텐츠 플랫폼으로 자리매김하려고 노력 중이다. 


‘동학’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

전공이 미생물학이다. 이학박사인데 이학(理學)은 동학에서 말하는 우주의 기(氣)와도 상통한다. 이 우주에는 수많은 생명체가 서로 공존하며 살아가고 있다. 사람 입속에도 다양한 미생물이 존재한다. 작은 우주인 입 안에서 미생물들이 서로 평화롭게 공존하면 질병을 일으키지 않지만, 공존이 깨지면 탈이 난다. 사람 사는 세상과 이치가 같다.

20여 년 전에 아내가 ‘스콧 니어링 자서전’을 소개해 주었다. 스콧 니어링의 사상은 ‘우주 안의 모든 생물은 서로 돕고 의지하며 공존한다’는 것이다. 나의 사상적 지향도 ‘공존’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4차 산업혁명시대에 맞은 ‘시대정신’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평소에 가지고 있었다. 4차 산업혁명의 핵심 키워드는 ‘공유’다. 독서를 통해 우연히 동학을 접하게 되었는데 동학은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밝힐 수 있는 매우 훌륭한 사상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는 기독교 신자다. 동학은 종교가 아니라 역사와 사상으로 접근했다.  


여주에는 동학의 어떤 이야기들이 숨어있나?

동학 2대 교주인 해월 최시형 선생의 포덕 경로를 살펴보면 여주는 굉장히 중요한 지역이다. 여강의 흐름을 보면 동학의 근본이념인 변혁의 기가 존재하는 궁궁을을(弓弓乙乙)지형이다. 수많은 입도자들이 나온 곳이 여주다. 일본군 기록에도 “1895년 1월 여주에서 500여명의 동학농민군과 전투를 벌여 10여명의 사상자를 냈다”고 되어있다. 이후 동학의 흐름을 볼 때 천도교, 증산교, 원불교, 대순진리 등도 다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여주는 동학 이후로 많은 종교들이 각각 교세를 나타내고 있는 곳이다. 대순진리교 본부가 여주에 있는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다.


산북에 해월 최시형 선생의 묘가 있다. 

기록에 의하면 해월선생이 강천면 도전리에서 약 6개월 정도 은신하였다고 한다. 해월선생은 은신 중에도 포교활동을 하며 하눌님께 제사를 올렸다. 어느 여주 장날에 생선을 많이 사는 것을 의심한 관군이 생선을 사 간 사람의 뒤를 밟아 도전리까지 왔다고 한다. 동학 3대 교주 손병희 선생 등이 해월선생을 모시고 있었는데 “동네 어른이 제사를 모신다고 하는데 무슨 난리냐?”며 관군을 호통 쳐 보내고 해월선생을 인근 원주로 피신시켰다. 도전리 피난처에서는 다른 노인이 해월선생인 것처럼 있다가 잡혀갔다. 당시 해월선생은 운을 다했다는 것을 감지하고 잡혀 가실 준비를 하신 것 같다.

해월선생은 1898년 4월 5일 원주 호저면 고산리 송골에서 관군에게 체포되었다. 창도주 최제우와 같은 죄명으로 교수형을 당하고 사흘 동안 효시된 후 매장된 시신을 이종훈 등이 송파에 사는 교인 소유 뒷산에 묻었다가, 2년 뒤인 1900년 3월 12일 여주 원적산 천덕봉으로 이장했다. 


강천면 도전리에 해월선생의 도피가옥이 폐허상태로 남아 있는데 문화재적 가치가 있나?

동학농민전쟁이 끝나고 쫓기던 1897년 8월 현재의 강천면 도전리 전거원동으로 이주해 왔다. 강천면 도전리는 동학 3대 교주인 의암 손병희에게 동학의 도통을 전수한 곳이다. 인근 이천 앵산동, 피체지인 원주 송골 등도 주요 유적지다.

동학은 종교적으로만 접근할 것이 아니라 우리의 귀중한 역사와 문화로 접근해서 잘 보존 관리하고 계승해야 한다. 개인적 의견으로는 지역주민들이 뜻을 모아 직접 시작했으면 한다. 인근에 위치한 장수폭포도 해월선생과 많은 연관이 있을 것인데, 이 역사적인 지역과 유적을 잘 엮어 스토리텔링을 만들어 낸다면 더욱 의미 있는 곳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 박영민 교수는 일본은 건국사상 자체가 국수주의적이고 침략적이기 때문에 주변국들에 의해 잘 관리되어야 평화를 유지할 수 있다고 하였다.     © 세종신문


일본의 군국주의 부활시도가 계속되고 있는데.

일본이라는 나라는 이웃나라를 늘 불편하게 하는 국가다. 즉 일본은 국제적으로 관리되어야 하는 국가다. 역사를 살펴보면, 우리가 일본과 사이좋게 지낸 기간은 약 200년 정도 된다. 임진왜란 등을 겪은 후 조선에서 수신사, 통신사 사절을 파견할 때다. 그때 일본은 조선 선비 강황이 전해준 성리학에 매료되어 통치이념으로 삼았다. 세월이 지나면서 우리와 일본이 성리학을 다르게 해석하기 시작한다. 일본은 국수주의 경향으로 흐르게 되고 도쿠가와 가문에 의해 주도된다. 복잡한 일본 내 정치역학 관계로 도쿠가와 막부에 핍박을 받았던 지역 조슈번(지금의 야마구치 현)을 비롯한 4곳의 번주 쪽에서 정권을 탈취하고 메이지유신을 실행하였다. 이토 히로부미로부터 오늘의 아베 신조로 이어져 오는 메이지유신 세력들은 국수주의적 사상을 가지고 있다. 인류공영, 생명존중 같은 보편적 이념은 하위개념으로 본다.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현재 일본 정부를 이끌고 있다. 


일본제품 불매운동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하나?

민간 차원에서는 당연히 일본제품 불매운동을 해야 한다. 좀 더 철저하게 지속적으로, 그리고 조용하게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현 정국을 주도하고 하고 있는 아베 수상의 가계를 잘 알아야 한다. 아베의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두 사람 다 친한파로 분류될 만큼 우리에게 우호적인 평화주의자였다. 그러나 아베의 외할아버지 기시 노부스케 수상은 완전한 국수주의자였다. 외할아버지의 영향아래 자라서인지 아베도 젊은 시설에는 친한파였다가 점차 침략파로 그 본색을 드러내고 있다. 아베의 정신적 멘토는 ‘요시다 쇼인’이라는 사람인데, 메이지 유신의 본당이다. 그 제자들이 제국주의자가 되어 조선을 침략한 이토 히로부미를 비롯한 군부들이다. ‘이토 히로부미’와 어울린 패거리들이 명성황후 시해를 주도한 자들이고. 이런 점을 고려한다면 여주의 시민단체 입장은 확고해야 한다.


반목과 대결로 점철된 한일관계의 근원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우리의 건국이념은 홍익인간, 제세이화 등 인류공영에 바탕을 두었다. 이와 달리 일본의 건국이념은 이웃나라를 침략해서라도 세상을 다스려야 한다는 것으로 보편적인 우주평화, 지구평화와는 거리가 멀다. 세계의 양심적인 나라, 세력과 연대해 일본의 잘못된 점을 알려야 한다. 그런데, 세상인심은 경제력에 큰 비중을 둔다. 일단 우리가 세계문화를 창달하는 문화강국, 경제강국이 되어야 한다. 조짐과 가능성이 보인다. 꿈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해월사상과 여주, 한일관계에서 어떤 연관성을 찾을 수 있나?

해월사상은 “인내천, 즉 사람이 곧 하늘이다”로만 알려져 있는데, 이보다 한발 더 나아가 생명사상을 전하고 있다. 천경(天敬), 인경(人敬)을 지나 물경(物敬)을 이야기 하고 있다. 지금과 같은 시대에 꼭 필요한 사상이자 철학이다. 동식물은 물론 물건이 탄생하기까지의 전 과정에 우주적인 협력체계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았다면 내 손에 들어 올 수 없었다는 의미다. 서양에서는 이런 혁명적인 철학을 고안할 수 없을 거다.

우리나라와 일본 역사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지배층 차원에서는 예로부터 핏줄이 얽혀있다. 조금만 더 열린 시각으로 본다면 형제끼리 싸우는 꼴이다. 서로 모르고 있는 것이다. 이런 현상을 설명해 주는 열쇠가 기연불연(基然不然)이다. 일본도 제국주의의 출발점인 메이지 시대는 물러갔다. 이제 ‘레이와’라는 연호를 사용한다. 우리와 성신외교로 평화롭게 지낸 에도시대의 정신을 회복하고 해월의 철학을 공유하여 경제력에 걸 맞는 세계평화와 인류공영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 이것이 지속 가능한 일본을 만들어 가는 길이다.


해월사상과 세종정신에 공통점이 있다면?

해월사상에는 원효, 이황의 사상이 저류에 흐르고 있듯이 세종 정신의 구체적 발현이라고도 평가할 수 있다. 세종의 천민(天民)과 대천이물(代天理物)의 정치사상을 보면 “백성은 빈부귀천 없이 누구나 다 하늘로써 비롯된 천민”으로 간주 하였고, 임금이 백성을 다스릴 때는 “하늘을 대신하여 만물을 다스리니 마땅히 하늘의 도를 순종해야 한다” 등이다. 이외에도 세종은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생명존중, 민심까지 헤아리는 민생해결, 사람을 신명나게 하는 소통교화의 정치를 펼쳤다. 세종과 해월사상은 한글창제에도 그 정신이 흐르고 있음을 확인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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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07/24 [15:32]  최종편집: ⓒ 세종신문
 
파룽다 19/07/24 [20:19] 수정 삭제  
  박교수님의견에 공감합니다. 지역이 살아야 국가가 강해지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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