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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시대 천문(天文)의 위대성
잘 알려지지 않은 세종대왕 이야기 16
 
세종신문   기사입력  2019/07/11 [13:30]
15세기의 세계천문학의 중심은 자랑스럽게도 한양의 경복궁, 즉 대한민국 서울이었다. 그 당시의 세계사를 되돌아보면 기원전 1세기에 서양의 천문학은 그리스를 중심으로 지중해 연안의 국가들에 일찍부터 우주관이 확립되어 있었다. 그러나 후세에 이르면서 이러한 당대에 정립된 천문 이론의 영향력이 너무 커진 탓에 로마교황청이 이 학설을 권력화하고 절대시함으로써, 이후의 새로운 학설을 주장하는 사람은 핍박받고 그런 학설은 거부당하기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당시의 서양은 16세기까지 약 1500년 동안 천문의 암흑시대를 맞이하게 된다.

중국의 천문학은 원나라의 곽수경의 비상한 노력으로 각종 천문관측기기들이 발명·제작되었고, 수시력과 회회력과 같은 우수한 역법이 시행되는 등 당시에는 최첨단이었으나 명나라가 새롭게 들어서더니 명황제의 무지와 관리소홀로 천문기기들이 대부분 와해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그러나 천문학의 침체와 암흑기를 맞아 전 세계가 모두 후퇴하거나 제자리에 머물러 있는 동안 세종대왕은 곽수경의 천문학 등 과학기술을 토대로 조선의 하늘에 맞게 계승 발전시켰다. 더 나아가 조선을 새로운 창조의 주역으로, 천문학 최우수국가로 발전시켰다. 세종대왕은 즉위 후 하늘을 관측하는 천문학자를 크게 우대하고 서운관의 인원을 대폭 확대하였는데, 규모나 지원에 있어서 명나라의 흠천감(천문관측기관)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충실한 기관으로 발전시켰다. 세종시대에 만들어진 여러 천문관측기구는 조선의 국격을 높이는 계기로 작용하기도 하였으나, 중요한 것은 세종대왕의 백성사랑의 마음과 삶의 질 향상이라는 애민의 마음의 담겨 있다는 것이다.

세종시대의 위대한 발명품 중 하나인 앙부일구는 시간과 절기를 알 수 있는 해시계의 일종이다. 앙부일구는 당시 여러 개가 제작되었을 것이지만, 그 중 두 개는 당시 한양 거리에서 통행이 가장 많은 종묘 앞과 청계천의 혜정교 난간에 설치하였다. 이는 많은 백성들이 이 해시계를 보고 시간과 절기를 알 수 있도록 그들의 편의를 배려한 조치였으니, 이는 세계 최초의 공중시계인 셈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세종대왕은 앙부일구를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는 동시에 글자를 모르는 우매한 백성들의 처지까지 살펴서 십이지상(十二支像, 쥐·소·호랑이···)을 새겨 글자를 대신하였다. 그리고 세종대왕이 가신지 400년이 넘도록 백성들은 앙부일구를 사랑했는데, 19세기의 양반들은 세종시대 때 만들어진 앙부일구를 최고급 재료인 상아나 옥석으로 만들어 주머니에 넣고 다니면서 실용적으로 활용하였다. 
 
세종신문 편집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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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07/11 [13:30]  최종편집: ⓒ 세종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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