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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 신륵사 驪州神勒寺 (1)
여주의 문화재를 소개합니다 ②
 
세종신문   기사입력  2019/07/10 [16:05]
▲ 여주박물관 박찬혁 연구원     
신륵사의 연혁

신륵사는 여주시 천송동에 위치한 사찰로, 대한불교조계종 제2교구 본사인 용주사(龍珠寺)의 말사이다. 신라 진평왕 때 원효대사가 창건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지만 이를 뒷받침 할 근거는 없다.

신륵사는 나옹화상이 입적하면서 유명한 사찰이 되었다. 나옹화상은 고려 말의 유명한 고승으로, 가는 곳 마다 사람들이 구름같이 몰려들었다고 한다. 이를 우려한 고려의 권세가들은 그를 밀양 영원사로 귀양 보냈으며, 나옹은 영원사로 가던 중 신륵사에서 입적하였다. 현재 신륵사에 남아있는 유물의 대다수가 이때에 만들어진 것으로, 신륵사가 확인되는 기록 역시 고려 말부터 등장한다. 그런데 최근 극락보전 해체복원 과정에서 통일신라 양식의 불상이 발견되어, 지금의 신륵사 자리에는 오래전부터 사찰이 운영되었을 것으로 추정 해볼 수 있다.

한편 1469년(예종 1) 세종대왕 영릉이 여주로 옮겨지면서, 신륵사는 영릉의 능침사찰(왕과 왕비의 능을 수호하고 명복을 비는 사찰)이 되었고 보은사(報恩寺)라는 명칭으로 바뀌어 왕실과 깊은 관계를 가지게 되었다. 
조선시대에 신륵사는 아름다운 경치로 선비들이 풍류를 즐기는 장소로 유명했으며, 임진왜란 당시 원호 장군이 이곳에서 왜적을 섬멸하기도 했다. 신륵사의 절경을 읊은 시가 지금도 다수 전하고 있으며, 신륵사는 조선시대 후기까지 여러 차례의 중수를 거치면서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신륵사의 명칭과 그 의미

신륵사(神勒寺)의 ‘륵(勒)’은 불교에서의 미륵(彌勒) 또는 짐승의 입에 물리는 재갈을 의미하는 한자로, 이를 풀이하면 ‘신비한 미륵’ 내지는 ‘신비한 재갈’ 정도로 볼 수 있다. 전하는 이야기에 따르면, “고려 고종 때 건너편 마을에서 용마가 나타나 걷잡을 수 없이 사나우므로 사람들이 붙잡을 수가 없었는데, 이때 인당대사가 나서서 고삐를 잡으니 말이 순해졌다. 신력으로 제압했다고 하여 절의 이름은 신륵사라 했다.”고 한다. 이 전설에서 용마는 강의 범람을, 인당대사가 신력으로 제압했다는 것은 사찰을 세우고 강의 수해를 억눌렀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즉, 불력(佛力)으로 재해를 극복하고자 했던 당시 사람들의 기원을 신륵사 이름에서 찾을 수 있다.

이처럼 지세가 약한 곳에 사찰을 세우는 것은 단순히 종교적인 차원 이외에 현실적으로도 효과가 있었다. 수재가 자주 발생하는 곳에 사찰을 건립하게 되면 사찰의 여러 건축물들에 의해 지반이 다져짐으로 지반의 침식을 어느 정도 억누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사찰에서 기거하는 승려들이 유사시 수재방지와 복구에도 노동력을 제공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또한 이곳에서 수행하던 승려들은 남한강의 수위를 항시 확인하는 첨병 역할을 수행했을 것이다.

▲ 여주 신륵사 전경. 좌측(북쪽) 봉미산 아래 쪽에 건물들이 들어서는 산지가람의 배치를 하고 있다.     © 여주박물관 제공


신륵사의 입지와 배치
 
신륵사는 북쪽으로는 봉미산 산자락이 내려오며 남쪽에는 남한강이 흐르는 전형적인 배산임수의 지형에 터를 잡고 있다. 대부분의 사찰이 깊은 산속에 위치하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사람들이 즐겨 찾는 경승지에 접해있다는 점이 중요한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 신륵사의 배치를 살펴보면, 일주문을 통과하여 남한강을 옆에 두고 평행으로 500여 미터를 들어간 뒤 좌측(북쪽) 봉미산 아래쪽에 건물들이 들어서는 산지가람의 배치를 하고 있다. 봉미산이 신륵사를 감싸는 것처럼 보이는 형세를 취하고 있지만 경사가 심하지 않고 사역(寺域) 대부분이 평지에 위치한다. 

신륵사의 공간은 강월헌과 다층전탑, 삼층석탑, 대장각기비가 위치한 ‘강안 구역’과 극락보전과 다층석탑이 위치한 ‘중심 공간’, 조사당 뒤 산비탈에 위치한 보제존자석종과 석종비, 석등이 세워진 ‘석종 구역’으로 크게 나눌 수 있다. (1105호에 ‘신륵사 2편’ 계속)

박찬형 여주박물관 연구원
 
※참고문헌
㈜금성종합건축사사무소,『여주 신륵사 극락보전 수리실측 보고서』 경기도·여주시, 2013.
김효형, 『답사여행의 길잡기7-경기남부와 남한강』, 돌베개, 1996.
문화재청, 『한국의 사찰문화재 인천·경기2』, 문화재청:불교문화재연구소, 2012.
정병삼·홍대한, 『한국의 명찰 9 - 봉미산 신륵사』, 대한불교진흥회, 2011.
정진희·김현정, 『봉미산 신륵사』, 불교성보문화연구소, 1998. 

*이 글은 네이버밴드 여울림(박물관과 함께하는 여주)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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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07/10 [16:05]  최종편집: ⓒ 세종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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