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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예인들에게도 공간과 기회를 주어야 한다”
[인터뷰] 강순 전통매듭 작가
 
이재춘 기자   기사입력  2019/07/09 [12:56]
여주에 거주하며 공예활동을 하는 공예인들을 대상으로 여덟 번에 걸쳐 인터뷰를 진행한다. 그 마지막 이야기로 강천면 걸은리에서 ‘전통매듭’을 하는 강순 작가를 만나보았다. 강 작가는 풍속화도 그리면서 전통매듭을 하는데 특유의 멋과 개성으로 민족고유의 예술과 기능을 이어가고 있다.    

▲ 강순 전통매듭 작가.   강 작가의 사진 배경으로 매듭 작품들이 보인다.  © 세종신문


여주가 고향인가?
 
서울에서 태어나 왕십리와 용두동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맑은 물이 흐르는 청계천에서  물놀이를 하고 전찻길 선로에 못을 얹어놓고 지남철을 만들던 생각도 난다. 삼일고가가 생기고 여름이면 무더위를 피해 나온 동네 아이들과 어르신들이 돗자리를 깔고 누워 하늘의 별을 보던 곳이다. 
어려서부터 그림을 그렸지만 미대에 똑 떨어지고 우체국에 취직을 했는데 직장생활에 회의를 느껴 과감히 나왔다. 그리고 그림을 그리네 매듭을 하네 하며 부모님 속을 무척 썩였지만 후회는 없다. 84년에 대한민국 제16회 공예품대전에 풍속화 그림으로 입상하며 86아시안게임, 88올림픽 성수기를 만나 90년까지 그림을 정말 많이 그렸다. 그 대회가 올해 49회가 되었으니 세월도 참 많이 흘렀다.


여주에는 언제 왔나?

남편과 내가 몸이 아파서 여주로 왔다. 남편이 5년 전에 위암 수술을 받고 조용하게 휴식을 취할 곳을 찾고 있었다. 큰 동서형님이 마침 강천면 긴골에 빈집이 있다고 소개를 해 주어 5년 전 남편이 먼저 내려왔다. 남편이 혼자 지내는 걸 힘들어하고 나도 몸이 좋지 않아 마음먹고 4년 전에 왔다. 
하남에서 공방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모든 것을 정리하고 다 챙겨서 여주로 왔다. 지금 사는 곳은 하루에 버스가 네 번 밖에 안다녀 왔다갔다 하기가 힘들다. 나는 운전을 못해 남편이 태워다 주지 않으면 어디를 잘 다닐 수도 없다. 


전통매듭은 어떤 공예인가?

전통매듭은 조선시대부터 내려온 것인데 우리 여인들의 멋과 향기가 담겨있다. 보통 명주실을 쓰지만 요즘은 견사, 금사, 은사가 무척 고급스럽게 나온다. 원색 위주의 색상이 주였는데 요즘은 파스텔 톤으로 색감이 부드럽고 다양해졌다. 아무리 긴 매듭도 하나의 실을 반으로 접어 두 손 끝으로 두 가닥의 끈을 순서대로 엮고 차례대로 조이고 당기면 문양이 완성된다. 30여 가지의 문양 중 도래, 국화, 매화 등을 많이 만든다. 

특히 전통매듭은 앞뒤가 똑같고 좌우대칭이 똑같아 그 아름다움이 수준급이다. 많은 인내와 노력도 필요하지만 보통 많이 쓰는 몇 가지 매듭만 터득하고 나면 목걸이, 팔지, 브롯지, 머리핀 등을 금방 만들 수 있어 재밌다. 이번에 트럼프 대통령 통역사로 활약한 이연향 국무부 국장이 남색원피스에 자색의 긴 전통매듭 목걸이를 착용했던데 정말 눈에 띄었다. 물론 어떤 액세서리라도 멋있고 좋았겠지만, 전통매듭이 화려하지는 않아도 옷과 잘 어울렸다. 내 눈에는 이연향 통역사의 전통매듭이 정말 돋보였다. 


전통매듭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

우리 아버지는 총각 때부터 전통가구에 붙이는 가구 장석을 만드는 장인이셨다. 주로 백동, 신주, 동판을 정으로 두드려 학, 나비, 단청 문양을 만드는데 항상 종이에 문양도안을 그리고 자르고 두드리고 하셨다. 그러니 나는 태어나면서부터 저절로 종이에 문양 그리는 것을 배우고 익히고 습득하게 되었다. 그림은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저절로 느끼며 그려졌다. 처음에는 민속화를 주로 그렸는데 79년 여성동아 부록으로 나온 매듭 책을 접하면서 전통매듭에 푹 빠졌다. 남대문에서 실을 사다 매듭 책을 보고 연습하고, 완성된 제품을 사와 실을 살살 풀어가면서 연습했다고 하면 믿을까? 요즘은 동영상이며 책자, 문화센터 등이 많아 얼마든지 배울 수 있지만 예전에는 그렇지 못했다. 지금도 작품을 들고 나가면 좀 안다는 사람들이 누구에게 배웠냐고 묻는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후 부터는 아버지께서 남기신 장롱 장석들에 매듭을 접목시켜 작품을 만들고 있다. 남이야 알아주든 말든 전통장석이나 전통매듭이 사라져가는 것에 안타까움을 느끼고 있다. 더 늦기 전에 아버지 장석에 내가 못 다한 그림과 매듭을 남겨 우리 딸에게 전해줄까 한다. 

▲ 강순 작가의 거북 매듭 작품.     © 세종신문


작품 활동을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은 것은?

초등학교 방과 후 수업을 할 때다. 1년을 한 번도 빠지지 않고 꼬박 수업을 다 받은 학생인데, 키가 크고 덩치도 있어 남자처럼 무뚝뚝한 6학년 여학생이다. 보통 아이들은 떠드느라 수업이 잘 안되는데 이 학생은 열심히 하기도 했지만 특히 실을 만지는 감각이 너무 좋았다. 하기 싫은 영어 방과 후 수업을 듣는 조건으로 매듭을 하고 있다고 했다. 작년 생일에 전화를 했는데 친구소식도 들려주고 정말 반가웠다. 

그리고 우연히 매듭 수업을 받으러 오신 분이 내 그림도 좋아했지만 아버지 장석을 무척 좋아했다. 그 사람 집에 고가구며 도자기가 무척 많았는데 우리 전통이 살아있는 작품들을 수집하고 있었다. 아버지께서 남겨주신 백동촛대, 자물통 등 많은 것을 사갔다. 아버지의 유품들이 좋은 곳에 가게 되어 정말 기뻤다. 그리고 그 집은 언제든지 갈 수 있어서 아버지 생각이 나면 놀러 갈 수 있게 되어 좋다.


‘공예의 도시 여주’가 가능하다고 생각하나?

처음 여주에 내려와서 센터나 박물관, 시청을 찾아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봤다. 도자기는 지원이나 할 수 있는 일이 많지만 그 외의 공예인들에게는 별 도움이 안 되는 것 같았다. 우연히 신륵사 안 도자세상 관계자를 만났다. 이야기가 잘 되어 도자세상에 민속화 그림 재능기부를 하고 주말에 부스하나를 제공받아 운영할 수 있었다. 전통매듭 체험과 판매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어 2년 동안 나름 열심히 전통매듭을 알리고자 노력했다. 다른 곳 보다 신륵사관광단지 안에는 도자기축제, 오곡나루축제 등 기타행사가 많고 여행객들이 많아 이곳을 잘 활용하면 아주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 강순 작가의 풍속화 <시집가는 날 신부대기실 풍경>.     © 세종신문


여주에서 공예인들이 살아가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이 뭐라고 생각하나?

우리 공예인들은 보통 30~40년씩 된 사람들이 많다. 공예는 공장에서 찍어내듯이 막 나오는 제품이 아니다. 한 땀 한 땀 내 손에서 시작해 내 손에서 끝난다. 한 가지 물건을 만들기 위해 하루도 걸리고, 일주일도 걸리고, 몇 달씩도 걸리지만 그 노력과 시간만큼 가치가 인정되고 그 값어치로 판매되지 않는다. 

공예인이라는 자부심과 긍지도 좋지만 어느 정도 생활이 되어야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작품 활동 하면서 식당도 하고 다른 일과 겸할 수밖에 없다. 나도 꽃집을 십년이나 했다. 꽃을 사 가시는 분께 선물로 매듭을 주고, 그림도 팔고 그랬다. 주 업종이 바뀌는 처지가 되어 버린다. 공예인들이 다른 거 안 하고 공예만으로도 먹고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가장 절실하다. 


공예품을 전시하고 판매할 수 있는 좋은 방안이 있나?

보통 공예 하는 사람들이 자급자족을 하다 보니 소규모로 운영하는 사람들이 많다. 자본이 많고 큰 규모로 운영하는 분들은 공모전이니 축제니 그런 행사장을 찾아다니지 않아도 항상 바쁘고 거래처 운영하기도 벅차다. 번듯하게 상가를 얻어 멋들어지게 진열하고 고객을 맞이한다면 얼마나 좋겠나? 상가 임대료 마련하랴, 재료비 내랴 걱정이 태산이고 매일 적자라 결국 문을 닫는다. 행사장 쫓아다니며 천막 펴고 접으며 덥고 추운 곳에서 작품 아니, 상품을 판다는 것이 그리 녹녹치 않다. 그렇다고 다른 곳에 납품한다는 것은 단가도 맞지 않고 물량을 맞출 수도 없다. 결국 내 손으로 팔아야 하는데 그러자면 공예인들이 뭉쳐 협회를 잘 운영해야 한다. 체험수업도 운영하고 판매도 할 수 있는 공간이 제공되면 좋겠다. 신륵사 안에 여주시에서 건물을 짓고 있던데 도자기만이 아닌 우리 공예인들도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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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07/09 [12:56]  최종편집: ⓒ 세종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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