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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록여행42-‘백두산 근처에 한 땅이 있는데… 마땅히 찾아내어 우리나라의 경계로 해야겠다’
 
세종신문   기사입력  2019/07/04 [16:21]
▲ 세종신문 대표 김태균  
한반도 평화체제 논의가 다시 긴박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설마 하던 일이 작년부터 있더니 지난 6월 30일에는 남북미 3국의 정상이 분단의 상징인 판문점에서 만나는 일까지 벌어졌다. 3차 북미 정상회담인 셈인데 누구도 예상치 못한 일이다. 이런 만남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수많은 이해관계의 장애들을 넘어서야 했을 것이다.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모르지만, 평화체제를 안정화 하기 위한 비핵화와 체제 보장, 그리고 경제협력과 민간교류 등의 정치적 외교적 절차들이 안정적으로 진행되기를 기대한다. 그리고 그 안정의 토대로 북한과 합해 모두 우리땅이라고 말하고 우리나라라고 말하는 일이 어색하지 않은 날이 속히 오기를 바란다.

우리는 외국을 갈 때 해외에 간다고 한다. 해외란 바다건너란 말인데 현재 우리 입장에서는 육로로 가는 길이 없기 때문에 자연스레 붙은 말일 것이다. 그런데 얼마전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이 2차 북미회담을 위해 기차를 타고 베트남을 갔다 왔다. 필자는 이 장면을 보고 깜짝 놀랐다. ‘아 베트남을 기차로 갈수도 있구나’라는 탄식이 나왔다. 그럼 우리가 북녘 땅을 통과할 수만 있다면 베트남뿐만 아니라 실크로드를 타고 중동국가를 거쳐 독일, 이태리, 프랑스를 거쳐 유럽의 끝인 포루투갈까지도 모두 기차(육로)로 갈수 있다. 

당연한 사실을 오랫동안 생각하지 못했다. 상상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상상할 수 있다. 압록강과 백두산, 두만강으로 이어지는 영토가 우리의 공간이라고 생각하면 어디든 기차와 자동차로 이동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상상력의 근원이 600년전 현재 한반도의 국경을 통합해 놓은 세종의 공이라는 것은 생각하기 어렵다. 

세종의 대표적인 업적 중에 하나가 4군6진을 개척한 일이다. 세종은 어전회의에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한다. 봄기운이 한창일 때이다.
 
백두산 근처에 한 땅이 있는데, 명나라의 태조 고황제가 고려에 예속시켰다. 내가 《지리지(地理志)》를 보니 한 옛성의 터가 백두산 앞에 가로놓여 있는데, 이것이 그 땅이 아닌가 의심된다. 마땅히 찾아 내어 우리 나라의 경계(境界)로 하여야 하겠다(세종14/4/2)
 
당시만 해도 조선의 영토는 바다로 연해 있는 동서남은 분명하였으나 북쪽의 경계는 애매했다. 지금의 국경인 압록강과 백두산 그리고 두만강으로 이어지는 영토경계가 아니었다. 북쪽은 평안북도와 함경북도는 사실 관리체계안에 제대로 두지 못한지역이 많았다. 그러다 보니 여진족들이 수시로 넘어와 거주하기도 하고 주민들의 곡식과 가축들을 약탈해 가기도 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북쪽경계를 획정하는 일이 만만치 않았고 어디에 방어진지를 구축해야 하는가도 주요 논점 중에 하나였다. 그러다 보니 험난한 북방지역의 영토를 포기해야 하는 용성후퇴론이 조정내에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용성은 지금의 평안북도 태천군의 옛이름인데 이곳은 평양에서도 그리 멀지 않은 곳이다. 그 이북에 자강도와 양강도, 함경북도가 있다. 북녘 땅의 절반 가까이가 가로로 그어져서 나라의 경계밖으로 나갈 뻔했다. 엄청난 지역이 무주공산으로 남겨질 수도 있었다.
 
세종은 재위 14년 2월에 신하들의 강력한 주장에 밀려 함경도 끝자락인 두만강 남쪽에 있던 경원부의 방어진지를 평안북도 용성지역으로 내리는 논의를 하게 된다. 명분은 경원부가 너무 북쪽이어서 군사들을 징집하기도 어렵고 군량을 지원하기도 어려우니 지세가 험해 방어하기에 좋고 한양이나 평양에서 거리가 가까운 용성이 적합하다고 주장한 것이다. 하지만 세종은 두만강을 경계선으로 하고 함흥 이북을 실질적인 국가영토로 운영하고자 했기에 신하들의 ‘용성 후퇴’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다음달 세종은 영의정 황희와 의논하고 현지를 다녀오게 했다. 가장 형편을 잘 살피고 올 노 신하를 보낸 것이다. 황희는 호조판서(경제부장관) 안순과 함께 한달동안 현지를 둘러보고 의견을 올리는데 ‘옮기긴 하되 그 빈 공간에 백성들을 이주시켜’ 개간하게 하자는 절충안이었다. 세종은 만족할 수 없었다. 

계속되는 논의가운데서 세종의 한마디가 중요한 전기를 마련했다. 바로 ‘내가 지리지를 보니 백두산 근처에 한 땅이 있는데…’로 시작하는 대목이다. 당시만 해도 대부분의 신하들은 마천령 이북은 우리땅이 아니라고 간주했으며 백두산이 본국이 아니니 단군제사에서 제외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마천령은 함경남도와 북도의 경계쯤 있는 해발 700여 미터의 고개이다. 

세종은 명태조(주원장)의 조치로 한 기록이 아닌 지리지의 기록을 근거로 백두산을 우리 영토로 해야한다고 주장했고, 이에 황희는 ‘지당한 말씀’으로 동의하며 4군6진 개척을 위해 적극적인 태도로 변하게 된다. 이를 계기로 백두산 수복 프로젝트도 시작되고 4군6진의 구체적인 개척 프로젝트도 탄력을 받게 된다. 물론 그 과정에서 많은 어려움과 난관들이 있었지만 지금의 한반도 경계를 만들고 남북의 통일을 기반으로 한 신경제의 토대는 세종대에 만들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세종 15년 11월21일에 드디어 이런 논의에 종지부를 찍고 북쪽 국경에 관한 교지를 발표하게 했다.
 
옛날부터 제왕(帝王)들은 국토를 개척하여 나라의 근본으로 삼는 일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은 이가 없었음은, 역사책을 상고하여 보면 분명하게 알 수 있다. 또 우리 나라는 북쪽으로 두만강을 경계(境界)로 하였으니, 하늘이 만들고 땅이 이루어 놓은 험고(險固)한 땅이며, 웅번(雄藩)이 호위(護衛)하여 봉역(封域)을 한계(限界)하였다. 태조(太祖)께서 처음으로 경원부(慶源府)를 설치하였고, 태종께서 경원부의 치소(治所)를 소다로(蘇多老)에 옮겼으니, 다 왕업의 기초를 시작한 땅을 중하게 여겼기 때문일 것이다. 

태종께서 일찍이 명령하신 바가 있으니, ‘만약 오랑캐들이 와서 살거든 곧 배척해 내쫓아서 적의 소굴이 되지 말게 하라. ’고 하셨다. 이제 저 소다로(蘇多老)와 공주(孔州)가 거칠은 풀밭이 되었으며, 오랑캐의 기마(騎馬)가 밟아 유린(蹂躪)하면서 제멋대로 놀며 사냥하는 마당이 되었다. 내가 매양 이 일을 생각할 때마다 가슴이 아프다. 

또 알목하(斡木河)는 곧 두만강의 남쪽, 우리의 국경 안에 있다. 토지가 비옥하여 경농(耕農)과 목축(牧畜)에 적당하며, 바로 요충지(要衝地)에 위치하였으니, 거진(巨鎭)을 설치하여 나라의 북쪽 문을 웅장하게 하기에 합당하다. 태조 때에 맹가첩목아(猛哥站木兒)가 순종하여 와서 우리 나라의 번리(藩籬)가 되기를 청하였다. 태조께서 사방에 있는 오랑캐를 지키려는 생각에서 우선 허락하셨더니, 이 자가 스스로 멸망하게 되어 번리(藩籬)가 일공(一空)하여졌다. 일의 기회가 왔으니 절호의 시기를 잃어버릴 수는 없다. 

내가 선인들의 뜻을 이어 이루어서, 다시 경원부(慶源府)를 소다로(蘇多老, 경원군)에 되돌려 옮기고, 영북진(寧北鎭)을 알목하(斡木河, 함경북도 회령지역)에 옮긴 뒤에, 이주(移住)할 백성들을 모아서 충실하게 만들고자 한다. 그리하여 삼가 조종으로부터 물려받은 천험(天險)의 국토를 지키고, 변방 백성들의 교대로 수비하는 노고(勞苦)를 조금이나마 덜어 주고자 할 뿐이니, 큰 일을 좋아하고 공(功) 세우기를 즐겨하여 국경을 열어 넓히려는 것과는 다르다.(세종15/11/21)
 
북녘 땅을 자유로이 밟게 되면 이곳들을 둘러보고 싶다. 
얼마전의 남북미 3국의 정상이 판문점에서 회동하는 모습을 보며 600년전 세종의 치열한 논의와 역사책에서 발견한 한 줄의 영감으로 정해 놓은 국가경계의 흔적들을 살펴보는 일이 멀지 않기를 소망해 본다.
   
세종신문 대표 김태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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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07/04 [16:21]  최종편집: ⓒ 세종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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