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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판에 색이 스며들 듯 그림에 스며든다”
[인터뷰] ‘목화공방’ 한기만 작가
 
이재춘 기자   기사입력  2019/06/21 [11:37]
여주 공예인들을 대상으로 8회에 걸쳐 인터뷰를 진행한다. 그 일곱 번째로 이야기로 강천면 걸은리 ‘목화공방’ 한기만 작가를 만나보았다. 한 작가는 아픈 몸으로 인터뷰를 하면서도 삶이 담긴 이야기와 예술관을 솔직하게 들려주었다.    

▲ 강천면 걸은리 ‘목화공방’ 한기만 작가.     © 이재춘 기자
강천이 고향인가?

1973년 이 곳 강천면 걸은리에서 태어났다. 아마 우리 아버지도 이 집에서 태어나셨을 것이다. 집 바로 옆 걸은초등학교를 다녔고 강천중학교, 여흥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걸은초등학교는 폐교되어 지금은 도자기 관련 교육장으로 이용하고 있다. 군대를 잠깐 다녀온 것 말고는 평생을 이 곳 강천에서 살았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목화공방’은 어떤 공방인가?

‘목아박물관’을 설립하신 목아 박찬수 선생은 내가 가장 존경하는 분 중 한 분이다. 박찬수 선생님과 함께 ‘목아박물관’에서 오랫동안 일을 했다. ‘아티스트프리마켓’에 참가하면서 나에게도 이름이 하나 있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박찬수 선생님의 호 목아는 나무 목(木)에 새싹 아(芽)를 쓴다. 나는 나무에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니까 목화(木化)라고 쓰자고 생각해서 내 작업실을 목화공방이라 이름 붙였다. 공방이라고 해서 거창한 공간이 아니라 그냥 내 작업실이다. 내가 어릴 때 잠을 자던 아래채 작은 방을 작업실로 쓴다. 


그림은 언제부터 그리기 시작했나?

나보다 여덟 살 많은 작은형이 있는데 우리 작은형이 학창시절에 그림도 잘 그리고 공부도 잘했다. 작은형은 늘 부모님의 칭찬과 사랑을 독차지 했다. 나는 공부도 못하고 뭐 하나 잘하는 것이 없어 작은형이 칭찬 받는 것이 늘 부러웠다. 아무리 생각해도 공부는 잘할 것 같지 않고 그림은 나도 좀 그릴 수 있을 것 같아 조금씩 따라 그렸다. 그림을 계속 그리다 보니 솜씨가 늘어 나도 칭찬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미대를 가고 싶어 한 달 정도 미술학원에 다니기도 했지만 미술학원 한 달로는 어림도 없었다. 당시 우리 집 형편에 미술학원 한 달도 사실 감당하기 어려웠다. 

▲ 한기만 작가의 <금계도>. 수탉이 물결치는 바닷가 바위 위에 한발로 온갖 잡귀들을 잡을 듯 서 있고, 불로초, 늙은 벽오동, 넘실거리는 바닷물 위에 산호가 있다. 닭은 새벽에 잡귀를 쫓고 밝은 세상을 알리는 상서롭고 신비로운 길조로 여겨졌다. 전통기법을 응용하여 목재의 결, 재질을 살려 표현하였다.     © 이재춘 기자

그림을 본격적으로 그리기 시작한 계기는?
 
고등학교 다닐 때 우리 집 아래에 목아박물관이 생겼다. 미대진학을 포기하고 그곳을 찾아가 박찬수 선생님께 그림을 배우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처음에는 시큰둥하셨는데 내가 계속 찾아가니까 서울 공릉동에 있는 공방으로 찾아오라고 하셨다. 짐을 싸들고 서울 공릉동에 찾아가 그림을 배웠다. 그리고 몇 달 후 군대를 가게 되었다. 군대를 마치고 다시 목아박물관을 찾아 갔는데 그 때는 공방을 목아박물관으로 옮겨온 상태여서 집에서 출퇴근 하며 본격적으로 그림을 배우고 그리기 시작했다. 내가 그림을 배우고 생업으로 하기 까지는 목아박물관과 인연이 깊다. 

 
그림을 그린다고 할 때 부모님 반대는 없었나?

없었다. 속으로는 반대를 하셨는데 말씀을 안 하셨는지 모르지만. 사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내 앞가림을 잘 했다. 친구들이 사고를 치고 말썽을 많이 부려 혼이 날 때도 나는 적당히 잘 빠져나왔다. 자라면서 부모님을 속상하게 하는 일이 없었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 부모님은 언제나 내가 하는 일을 그대로 인정해 주셨다. 아버지는 다정하게 나를 돌봐주셨고 어머니는 언제나 든든하게 나를 지켜봐 주셨다. 

▲ 한기만 작가의 <여주강의 관음보살님>. 넘실거리는 여주 남한강물 바위 위에 앉아있는 관음보살을 목재의 결을 살려 안료와 순금분을 이용한 전통기법으로 표현하였다.     © 이재춘 기자

작품 속에 나만의 예술적 특징이 있다면?

목아박물관에서 오랫동안 일을 하다 보니 옛날의 유명한 민속작품을 목판에 그리는 경우가 많다. 목재의 재질과 결을 살려 전통기법으로 재현하는 것이다. 똑 같은 그림이라도 종이에 그리는 것과 천에 그리는 것은 그 느낌이 다르다. 목재에 그리는 것은 그 목재의 재질과 결에 따라 또 다르다. 어떤 목재를 사용할 것인지 목재를 고르는 것도 중요하고 목재의 상태도 고려해야 한다. 내 그림의 특징을 들라고 하면 그림의 색을 잘 만들어 내는 것이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이 내 작품의 색을 보고 무슨 안료를 쓰는지 어떤 기법으로 칠을 하는지를 묻곤 하는데 같은 안료를 써도 그리는 사람마다 다 다르고 색칠하는 기법을 배운다 해도 받아들이는 정도가 다 다른 것이다. 내 느낌, 내 감성, 내 터치가 나만의 색을 만든다고 생각한다. 

 
민족 고유의 미술작품을 목재에 재현하는 과정이 힘들지 않나?
그림을 그리는 동안은 힘들지 않다. 그림을 그릴 때는 너무 즐겁고 행복해 푹 빠져든다. 시간이 얼마나 갔는지도 모르고 뭐를 먹었는지도 알 수 없이 목판에 색이 스며들 듯 그림 속으로 스며든다. 예술가나 공예가들 대부분이 그럴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 일을 해 낼 수 없다. 그런데 그림을 그리지 않는 동안 내 몸은 정말 많이 아프다. 뼈가 틀어지고 근육이 뭉쳐 있어서 지금은 그림을 그리고 싶어도 많이 그리지 못한다. 몸이 너무 아파 목아박물관 직원도 그만 두고 최소한의 일만 맡아서 하고 있다. 목판에 그림을 그리는 것은 그렇게 행복할 수 없는데 이상하게 몸은 계속 망가지고 있다. 걱정이다. 


▲ 한기만 작가의 그림 도구들.     © 이재춘 기자

‘아티스트프리마켓’에 참여하는 이유는?

아티스트프리마켓은 예술가와 공예가들이 대중들과 만나고 소통하는 공간이다. 그리고 다른 예술가와 공예가들을 만나는 곳이다. 몇 달 몇 년에 걸쳐서 만들어야 하는 대작이 아니라 사람들이 일상생활에서 필요하겠다고 생각되는 것을 마음가는대로 손길가는대로 만들어 나간다. 가격도 내 마음대로 아무렇게나 정한다. 비싸다고 하는 사람도 있고 싸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 가격 흥정을 잘 못해 어떤 때는 손님이 주는 대로 받는 경우도 있다. 아티스트프리마켓에서는 돈을 번다기 보다는 사람의 마음을 번다고 하는 것이 맞을 것 같다. 그곳에 모이는 작가들이나 공예가들도 사람들이 다 좋다. 요즘에는 몸이 너무 아파서 잘 못 나간다. 

▲ 한기만 작가의 <새가 날아든다>. 작업을 하다보면 계절마다 온갖 새들이 날아온다고. 새들의 노랫소릴 듣다가 그린 그림.     © 이재춘 기자


‘목화공방’으로 먹고 살기가 좀 어떤가?

돈을 많이 벌자고 하는 일이 아니라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이다. 먹고 사는 문제는 어떻게 생각 하는가에 따라 다를 수 있다. 시골집에서 어머니와 둘이 사는데 맨날 약을 달고 산다. 약값만 해도 만만치 않다. 그렇다고 굶는 것도 아니다. 밥은 먹고 산다. 일을 하면 돈을 벌고 일을 하지 않으면 돈을 벌지 못한다. 그런데 난 아파서 누워있는 때가 많다. 그래도 어머니와 함께 더불어 살고 있다. 목아박물관에서 요청한 목화를 그리고 있는데 박물관에서 값을 잘 쳐서 준다. 그러면 나는 그 돈으로 약을 사먹고 힘을 내서 그림도 그리고 아티스트플리마켓에서 내다 팔 물건도 만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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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06/21 [11:37]  최종편집: ⓒ 세종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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