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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록여행 41-시끄러운 외교, 속상한 말, 답답한 정치 (4)
 
세종신문   기사입력  2019/06/21 [11:00]
▲ 세종신문 대표 김태균
황엄을 대표로 한 약 1,000여 명에 이르는 대규모 중국 사신단이 도착한 날이 8월 17일이다. 실록의 날자는 음력으로 기록되어 있다. 지금 8월 15일은 추석명절, 한가위로 지내는데 실록에는 지금의 추석같은 분위기의 기록이 없다.

어쨌든 지금 조정은 사신단을 잘 대접하고 기분 나쁘지 않게 해서 돌려보내는 것이 중요한 업무다. 사신단은 한달후인 8월 18일에 한양을 떠난다. 한달간 조정과 한양은 떠들썩 했을 것이고 관련된 사람들은 힘든 시간을 보내지 않았을까. 먼저 떠나는 날의 장면을 기록으로 본다.
 
임금이 태평관에 행차하여 전별연을 베풀었다. 그리고 다음날 황엄과 왕현이 돌아와 인경지(印經紙) 1만 장을 바쳤다. 상왕과 임금이 모화루(慕華樓)에서 그들을 전송하고, 원민생을 보내 황엄을 따라가 사리(舍利)를 〈명나라 황제에게〉 진상하게 하였다. 그 주문[上奏文]에 말하기를,
"영락(永樂) 17년 8월 17일 흠차 내관(欽差內官)인 사례감 태감(司禮監太監) 황엄이 이 나라에 와서 성지를 전했는데, 이르기를, ‘조선국의 석탑과 사탑(寺塔) 속의 사리는 그 수효가 몇 개임을 묻지 말고 〈얼마가 되든지〉 다 보낼지어다. 그리고 다른 절 안에 있는 사리도 보낼지어다.’ 하여, 이 뜻을 받들어 신의 아비와 신은, 선조 강헌왕(康獻王;태조 이성계)이 공양하고 가지고 있던 석가의 사리와 정골(頂骨)및 국내에 두루 다니며 받아 가지고 온 제불 여래·보살(諸佛如來菩薩)과 명승(名僧)의 사리를, 배신(陪臣) 좌군 동지총제(左軍同知摠制) 원민생을 시켜 받들어 가지고 흠차관과 함께 가서 진상하게 하였으니, 사리의 수효는 총 5백 58개의 존귀한 알이오.” 라고 하였다. 
상왕은 효령 대군 이보를 보냈고, 임금은 이원(李原)·변계량 및 원숙을 보내 벽제역(碧蹄驛)에 가서 사신을 전송하게 하였고, 장천군(長川君) 이종무를 보내 의주까지 〈사신을〉 동반하여 전송하게 하였다.(세종1년 9월 18일)
 
이날까지 약 한달여간 사신단이 머물면서 행한 일과 조정에서 신경 쓴 일들을 좀 둘러보자. 먼저 조정에서 사신을 위해 하는 일들이 많다. 매일 문안하고 잔치 열고 선물 주고 들여 다 봐야 한다. 실록은 모든 상황을 기록하였다.
 
[18일] (도착한 다음날) 임금이 태평관에 나가 익일연(한양에 도착한 다음날에 베푸는 잔치)을 베풀었다. 상왕이 병조 판서 조말생(趙末生)을 보내어 사신에게 문안하게 하고, 임금도 역시 지신사(知申事) 원숙을 보내어 문안하게 하고, 인하여 사신과 두목 8사람에게 옷 한 벌과 안장 갖춘 말 한 필과 신과 갓을 선사하였다. 이로부터는 병조의 당상관과 여섯 대언(代言)들이 각각 날을 돌려가며 문안하였다.
[19일] 내시 이재를 보내어 사신에게 먹을것을 선사하다. 황제가 하사하는 연회의 절차를 의논하여 정하고 사신과 차를 나누고 궁중으로 돌아가, 선양정(善養亭)에 납시어, 임금과 함께 작은 연회를 베푸니, 대비와 공비(恭妃)와 성비(誠妃)도 모두 각기 조그만 잔치를 베풀었다.
[20일] 임금이 경복궁에 나아갔다가, 사신이 근정전(勤政殿)에 베푼 하사연(下賜宴)에서 향연 받기를 의식과 같이 하였다.
[21일] 상왕이 지병조사(知兵曹事) 이욱을 시켜 황엄에게 문안하게 하고 음식물을 선사하였다.
[22일] 상왕이 내시 최한(崔閑)을 보내어, 황엄에게 흰 숫돌과 고래 수염을 선사하였다. 임금이 내시 최용(崔龍)을 보내어 황엄에게 음식물을 선사하였다.
[23일] 내시 박춘무(朴春茂)를 보내어 사신에게 음식물을 선사하였다.
[27일] 내시를 보내어 사신에게 음식물을 선사하고 상왕은 태평관에 거둥하여 사신을 만나 차를 대접하고 돌아왔다.
[28일] 상왕과 임금이 이명덕(李明德)을 보내어 두 사신을 청하여 선양정(善養亭)에서 연회를 베풀고 각각 말 한 필씩을 선사하였다.
[9월1일] 임금이 내시를 보내어 사신에게 송이(松茸)를 선사하였다.
[2일] 임금이 태평관에 거둥하여 사신들과 연회를 베풀고 각각 말 한 필을 선사하였다
[3일] 환관을 보내어 사신에게 송이(松茸)를 선사하였다.
[4일] 종친들이 태평관에 가서 사신들과 연회를 하였다
[5일] 내시를 보내어 사신에게 음식물을 선사하였다.
[6일] 의정부에서 태평관에 가서 사신과 함께 연회를 하였다.
[9일] 상왕이 중양절(重陽節)이라 하여 내시를 보내어 황엄에게 산 사슴을 선사하고, 두 사신을 청하여 선양정에서 주연을 베푸니, 임금도 함께 모셨다.
 
이런 식으로 매일 문안하고 선물하고 먹을 것을 직접 챙기며 심기를 살폈다. 임금이 교체되는 시기의 예민함도 있고 사신의 한마디 혀가 어떤 후폭풍을 몰고올지 모르는 마당이라 조심스럽기 그지없었을 것이다. 
 
둘째, 조정에 사은사(사신을 보낸 답례로 보내는 외교사절)를 보내면서 공식적으로 보낸 물건들은 다음과 같다.
 
[25일] 명 황실에 보내는 방물은 다음과 같다. 
하늘 같으신 은총이 더욱 깊사와 특별히 자별(自別)하신 성은을 입었사오니, 이 땅에서 생산한 물건이 비록 적사오나 그것으로 감사하는 정성을 표시하옵고자 삼가 흰 세저포(細苧布) 50필, 검은 세마포(細麻布) 1백 50필, 목과 마를 섞어 짠 것 5필, 목과 모시로 섞어 짠 것 5필, 황화석(黃花席) 20장, 꽃자리[花席] 10장, 꽃발[花簾] 10장, 꽃방석 20장, 잡채색(雜彩色) 꽃자리 20장, 인삼 2백 근과 석등(石燈) 6벌, 초서피(貂鼠皮) 4백 장, 잡색말[雜色馬] 30필을 갖추었사오니, 위의 물건들이 제조가 정밀한 것도 아니옵고 수효도 매우 적사오나, 충심으로 바치는 것임을 하량하시옵고 위에 올리는 예절이라 여기시어 굽어 용납하시기를 바라옵니다.(상왕 태종이 황제에게 보냄)
고운 모시 50필, 검고 가는 마포 1백 50필, 무명 실과 삼을 섞어 짠 것 5필, 무명 실과 모시를 섞어 짠 것 5필, 황화석(黃花席) 20장, 꽃무늬 자리 10장, 꽃방석 20장, 잡채색 꽃자리 20장, 인삼 2백 근, 잣 4백 근, 잡색말[雜色馬] 30필(임금 세종이 황제에게 보냄)
검고 가는 마포 1백 필, 인삼 50근, 잣 1백 근, 잡색말 4필(조정에서 황태자에게 보냄)
 
셋째, 사신단이 오면 공식적으로 주는 물품 등이 있고 비공식으로 주는 것들도 있다. 물론 이에 대한 댓가로 더 좋은 것들을 챙겨가게 마련이다. 
 
[17일] 황엄이 이르기를 황제께서 생견(生絹) 3백 필과 안팎 옷감 30필과 양 1천 마리를 하사하시어, 술과 과일 값으로 하라 하시었으니, 이상의 물건들을 왕이 받으시고 나머지는 왕의 나라에 있는 것으로 잔치를 차리시오 하다
[9월 14-15일] 상왕과 임금이 황엄에게 선물을 주었다. 
상왕이 이명덕을 보내어 황엄에게 12승(升) 저마포(苧麻布) 각각 10필, 11승 마포 10필, 섞어 짠 비단 2필, 가는 명주 3필, 고운 면포 3필, 인삼 30근, 석등(石燈) 2개, 두꺼운 종이 4백 장, 차(茶) 한 봉, 염주(念珠) 한 봉지를 선사하고, 왕현에게는 12승 저마포 각각 3필, 인삼 10근, 석등 한 개, 차 한 봉, 염주 20줄을 선사하고, 황엄의 소솔(所率) 두목 8명에게는 10승 저포 각 1필, 마포 각 1필과 음식을 만드는 사람 2명에게는 11승 저마포 각 1필씩을 주었다.
임금이 원숙을 보내 황엄에게 모시와 삼베 각 20필, 유의(襦衣)068) 1습, 초구(貂裘)·초관(貂冠)·호슬(護膝)·목화[靴] 각 한 벌, 인삼 30근, 만화석(滿花席) 6장, 만화침석(滿花寢席) 6장, 석제 등잔[石燈盞] 하나, 염주 한 주머니[帒], 두꺼운 종이[厚紙] 6백 장, 차 3말[斗], 교기(交綺) 2필, 가는 명주[細紬]와 면포(綿布) 각 3필을 보내 주었고, 왕현(王賢)에게는 모시와 삼베 각 10필, 유의 1습, 돈피 갖옷[貂裘]·돈피 관[貂冠]·호슬(護膝)·목화 각 한 벌, 인삼 15근, 만화석 4장, 만화침석 2장, 석제 등잔 하나, 염주 한 주머니, 차 1말을 보내 주었고, 황엄의 두목 여덟 사람에게는 모시와 삼베 각 4필, 유의·모관(毛冠)·목화 각 1벌을 보내주었고, 숙수[廚子] 두 사람에게는 따로 삼베 2필을 보내 주었으며, 왕현의 두목 두 사람에게는 각각 삼베 두 필과 옷·관·목화 각 1벌씩을 보내 주었다. 당시 보내 준 물건들과 식품들은 퍽 많았으나, 황엄은 그래도 토색하여 마지않았다. 임금은 그의 마음을 맞춰 주려고 〈그가 달라는 물건을〉 다 보내 주라고 명하였다.
 
다시 한 번 읽어보게 된다. 
“우리가 사신에게 보내준 물건과 식품이 많았으나 그래도 사신은 거절하지 않으며 다 받았다. 임금은 그의 마음을 맞춰 주려고 달라는 걸 다 주었다.” 
이런 것들이 속상하다. 하지만 어쩌랴.   

세종신문 대표 김태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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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06/21 [11:00]  최종편집: ⓒ 세종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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