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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록여행 40-시끄러운 외교, 속상한 말, 답답한 정치 (3)
 
세종신문   기사입력  2019/06/13 [11:42]
▲ 김태균 세종신문 대
600년 전의 조선에게 명은 어떤 대상인가? 오늘날 대한민국에게 미국은 어떤 나라인가? 인정과 은혜를 베푸는 나라인가, 간섭하고 강요하며 냉정한 이해관계로 연결된 나라인가? 우리나라의 외교를 말할 때는 언제나 이 질문이 떠오른다. 

강자 옆에 둘러싸인 우리의 입장은 그야말로 현실이다. 동시에 우리는 주권을 가지고 있는 독립국가이다. 하지만 여전히 덩치는 작고 강자들의 힘의 논리 앞에서 눈치를 봐야하는 처지다. 그래서 사대라는 말이 늘 맴돈다.

사대(事大)란 국어사전에 ‘약자가 강자를 섬긴다’고 되어있다. 자주권을 가졌지만 약소국이 살아남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취해야 하는 굴욕적인 관계다. 하지만 이런 형편에서도 강자의 힘을 이용하여 실리를 취하고 국력을 키우고 내실을 다신다면 이 사대외교는 실용외교가 되기도 한다. 지혜로운 실용의 정신으로 나아가지 못하면 사대주의에 갇히고 만다. 조선시대에 우리는 이런 사대주의의 포로가 되어 스스로 강해지고자 하는 의욕마저 갖지 못한 적이 여러 번 있었다. 

지금 우리는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강대국의 힘겨루기를 만나고 있다. 하지만 이 상황에서도 사대에서 실용으로 전환하기 위한 빈틈없는 전략들이 구사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가 한반도 평화를 간절히 원하는 것은 한민족이니까 같이 살아야 한다는 감성적 바람도 있지만 국가단위의 힘을 확대하는 실질적 효과를 기대해야 한다. 

우리나라 인구규모는 5,100만명, 국가별 순위로는 28위, 북한의 인구수는 약 2,600만명이다. 1억이 넘는 인구를 가진 나라가 약 14개나라다. 경제적인 공동체를 지향하며 장기적으로 정치적 통일까지 염두에 두고 남북이 합하면 약 7,700만명이다. 인구규모로 20위 안으로 들어간다. 남북간의 특성화된 경제적 토대를 결합하면 강력한 경제적 활력도 기대된다. 그 첫째가 동북아 철도 공동체이고 에너지 공동체를 꼽았다. 이러한 전략들이 잘 진행된다면 외교상의 사대를 넘어설 수 있는 독자적인 힘을 가질 수 있다.
 
세종1년 8월, 명은 조선에 사신을 보냈다. 태종에서 세종으로 왕위이양을 허락해 달라는 편지를 보낸 지 1년여 만이다. 물론 형식이긴 하나 명과의 관계에서는 매우 중요한 대목이다. 사신은 우리에게 고압적이다. 명 황제의 칙서를 들고 왔기 때문이다. 칙서는 2편으로 되어있다. 하나는 물러가는 태종에게, 하나는 신임 왕인 세종에게 보낸 것이다. 지난번에는 태종에게 전하는 말을 통해 명은 조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보았다. ‘일러 가르친다, 섬기기를 부지런히 하였다, 소청을 윤허한다, 도리를 지켰다, 잔치를 베풀어준다’등과 같은 표현이 가득하다. 이제 세종에게 보낸 편지를 살펴보자. 세종1년 8월 17일의 일이다.
 
"황제는 조칙으로 조선 국왕(세종)에게 이르노라. 
너의 아비(태종)가 독실하고 온후하며 노성(老成)하여, 능히 정성으로 하늘 뜻을 공경하고, 조정을 공손하게 섬겨, 한 나라 사람을 위하여 복되게 하여서, 충성되고 온순한 정성이 오래될수록 변함이 없더니, 조금 전에 네가 효성스럽고 공손하며 학문에 힘써서, 넉넉히 종사(宗祀)를 받들 수 있고, 나라 사람들을 통치할 수 있을 것이라 하여, 위를 계승시키게 하여 달라 하기에, 특별히 소청하는 바를 윤허하여, 너로서 조선 국왕이 되게 하니, 너는 항상 세대를 계승하는 것이 쉽지 않은 것을 생각하고, 작록(爵祿)의 가볍지 않음을 생각하여, 효도로써 부모를 섬기고, 충성으로써 위를 섬기고, 하늘 뜻에 공경하고 근신하여, 온 나라 사람들을 복되게 하면, 하느님의 마음도 기쁘게 내려다 보시어, 너에게 부귀를 길이 향수하게 할 것이요, 너의 자자손손에게까지 그 경사를 향수하도록 할 것이며, 온 나라 사람들도 역시 그 경사에 향복(享福)함이 있으리라. 이제 특별히 태감 황엄을 보내어, 조칙을 받들고 너에게 축복하는 잔치를 베풀게 하는 바이다. 짐의 지극한 마음씨를 본받아 알라."하였다. 
상왕과 임금이 조칙을 받고 행례하기를 절차대로 한 뒤에, 사신에게 다례(茶禮)를 대접할 때에, 사신이 상왕에게 말하기를,
"황제께서 신에게 이르시기를, 중국에 술이나 과일이 없는 바는 아니지만, 길이 하도 멀다 하시고, 생견(生絹) 3백 필과 안팎 옷감 30필과 양 1천 마리를 하사하시어, 술과 과일 값으로 하라 하시었으니, 이상의 물건들을 왕이 받으시고, 왕의 나라에 있는 것으로 잔치를 차리게 하시오."
하고, 사신이 먼저 태평관으로 돌아가니, 병조 참판 이명덕과 지신사(知申事) 원숙(元肅)을 보내어, 채백(綵帛) 15필, 채견(綵絹) 15필, 생견 3백 필, 양 8마리, 거위 16마리, 《음즐서(陰騭書) 복을 빌어주는 글을 모은 책》1천 권을 받아 오게 하였다.” (세종1년 8월 17일)
 
세종의 임금됨은 명황제의 조칙을 받음으로써 명분상 확정되었다. 그 내용은 굳이 더 뜯어보지 않아도 될 것이다. 명나라에서 잔치하라고 양 1천마리를 비롯해 다양한 물품을 보내왔다. 술값과 과일 값이다. 
칙서를 읽고 받아들이는 예식이 끝나자 태평관으로 이동하여 하마연(먼길을 말을 타고 왔으므로 말에서 내려 피로를 푸는 잔치)을 베풀었다. 이자리에서 명 황제에게 감사의 인사를 하러 갈 사람을 누구를 보낼지를 결정한다. 이 또한 중요한 외교적 관례이다.
 
상왕과 임금이 태평관에 거둥하시어, 하마연(下馬宴)을 베풀었다. 그 자리에서 황엄이 상왕에게 말하기를,
"누구를 보내어 사은하시렵니까.” 하니, 상왕이,
"나에게 네 아들이 있었는데, 큰 자식은 멀리 밖에 있고, 둘째는 병으로 누워 있고, 셋째 아들은 이제 국왕이 되었고, 네째는 일찍 죽었고, 또 두 자식이 있기는 하나, 모두가 정비(正妃)의 소생이 아니라, 감히 보낼 수가 없소. 또 여서(女壻)가 넷이 있는데, 위로 세 사람은 모두 다 조정에 가 뵈었으나, 끝에 사위 남휘(南暉)가 아직 뵙지 못하였으므로, 이번에 보낼까 하오.” 하니, 엄이 아뢰기를,
"성상의 조선을 대우하심이 오늘같이 후하신 적이 없었으니, 친 왕자가 아니면 보내실 수 없을 것입니다. 비록 정비의 소생은 아니더라도, 역시 친 왕자일 것입니다.” 하니, 상왕이,
"끝에 자식은 나이 어리니, 경녕군(敬寧君)을 보내겠소."
하고, 곧 경녕군에게 명하여 술을 따르게 하고, 이내 연회를 파하고 궁으로 돌아갔다. (세종1년 8월 17일)
 
이제 공식적인 절차를 마쳤으니 이후에는 사신을 대접하여 기분 좋게 떠나게 하는 일이다. 지금부터 약 한달간 임금과 신하들의 고난의 행군(?)이 시작된다.   

세종신문 대표 김태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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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06/13 [11:42]  최종편집: ⓒ 세종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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