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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록여행36-현장책임자의 장계로 시작된 제주의 경영
 
세종신문   기사입력  2019/05/13 [10:35]
▲ 세종신문 대표 김태균 
지금 제주도는 당연히 우리나라의 영토이며 행정구역의 일부이다. 제주특별자치도로 지정되어 자유롭게 왕래하는 아름다운 우리의 섬이다. 하지만 예전의 제주도는 탐라국이란 이름의 독립국으로 독자적인 국가기능을 하였고 신라시대에는 백제와 신라와 국가 간 외교적 교류를 하곤 했다. 

고려 초기만 해도 탐라국은 독립된 나라였다. 그러다가 고려 숙종10년, 서기 1105년에 탐라군이라는 행정상의 지방으로 고려에 포함되었다. 지금으로부터 약 900년 전 일이다. 하지만 중앙에서 관료를 내보낸다거나 하는 적극적인 지배구조를 형성하지는 못했다. 삼국사기에는 ‘탐라는 고려에 포함시킬 것이다. 하지만 왕과 왕자는 그대로 두어 탐라를 다스리게 한다’라고 되어있다. 그 이후 1230년경 고려시대 몽골과의 30년전쟁에서 삼별초로 유명한 전투부대가 제주에서 남해안으로 나가 몽골군을 괴롭혔는데 이를 진압하기 위해 몽골의 병사들도 제주도에 들어오게 되었고, 이들 중 상당수가 제주에 눌러앉아 살게 되었다. 그래서 제주의 방언은 일본말과 몽골인들의 말이 뒤섞여서 제주어라는 토착언어로 발전하기도 했다. 제주 원주민의 약 40% 이상이 몽골 병사들의 후예들이라는 전언도 있긴 하다.

조선 초기의 제주도는 어땠을까? 

태조실록에는 귀양지로서의 제주도가 먼저 나온다. 태조 이성계가 즉위한 해에 첫번째 제주 관련기사에는 ‘먼 지방으로 귀양 보낼 사람은 무릉(武陵)·추자도(楸子島)와 제주(濟州) 등지로 나누어 귀양 보내기를 청하니’란 기사가 나오고 이어서 선생을 파견하여 관직을 줄 수 있게 하고, 절제사란 직위의 장수를 파견하여 병사를 모으고 훈련하며 일부 치안을 담당케 했고, 정 3품의 문관인 목사(牧使)를 파견하여 행정업무를 보게 했다. 

그런데 태조 4년 7월 ‘제주(濟州)의 왕자(王子) 문충보(文忠甫)가 와서 양마(良馬) 7필을 바쳤다.’라는 기사가 나오는데 여기의 '왕자'는  제주의 독자적 자치권이 나름대로 있었다는 방증이 아닐까 싶다. 동시에 제주의 말은 육지에서도 모두 탐내는 좋은 말들이었을 것이다.

세종대로 넘어오면 제주와 관련된 기사들이 조금 더 다양해진다. 세종1년, 1419년 7월 13일의 기사에는 제주도의 행정과 세제에 관한 전반적인 운영에 관한 장문의 경영전략이 소개된다. 이를 기화로 세종의 정부는 제주도에 본격적인 세금제도와 공물제도를 확립하고 적극적인 행정체계를 가동하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겠다. 
임금께 올리는 장계의 주인공은 나주 교수관인데 이때만 해도 제주도가 전라도 나주지역에서 관할하던 섬이라고 볼 수 있다. 그곳에서 주로 구제미를 보냈을 터이다. 다음은 장계 내용의 일부다.
 
나주(羅州) 교수관(敎授官) 진준(陳遵)이 글을 올리니, 대략 이르기를,

"제주가 멀리 바다 가운데에 있어, 여러 번 풍재(風災)가 있었고, 해마다 자주 흉년이 들어, 관원이 급한 것을 고하면, 국가가 깊이 염려해서 쌀을 운반하여, 바다를 건너가 구제하게 되니, 이것은 그 땅이 조세를 걷는 법과 구제하는 준비가 없는 때문입니다. 

신이 일찍이 판관이 되어 마침 흉년을 만나 쌀 천 석으로 구제하는데, 호구가 많아서 〈이것도〉 오히려 충분하지 못하였거늘, 하물며 5백 석만으로서야 어찌 될 것입니까. 현실에 구제하기 위한 시급한 계책으로는 관에서 조세를 받아, 뜻하지 않은 환난에 대비하는 것만 같지 못하니, 삼가 살피건대 밭을 개간하여 2만여 결(結)이 될 수 있을 것이고, 비옥한 밭은 그 지방 사람들이 서로 전해서 경작하고 심어서 자기들의 사유로 만들고, 세력이 강한 자는 겸병하되, 사람을 시켜 갈고 심게 하여, 벼를 자기에게 바치게 하여, 그 이익은 독차지하면서도 관에서는 참여하지도 못하니, 이것은 참으로 오랑캐의 도 만도 못합니다. 

그 임자 없는 빈 땅은 밭 없는 자가 거름을 써서 경작하는 것을 관은 한전(閑田)이라고 하여, 조세를 걷어서 관의 비용으로 쓰고 있으니, 다 같이 제주의 토지와 인민으로서, 고르지 못한 것이 이와 같은데, 더욱 이 관에서 거둔 조세도 국가의 소용이 되지 못하는 것이오니, 신의 생각으로는, 본조(本朝)의 전제(田制)에 의하여, 양을 계산하여 관에서 받아들이되, 만약 땅이 험하거나 막혀 있는 데가 많아서 계량하기가 어려우면, 또한 마땅히 본토에서 조세 받는 예에 의하여 관에서 받아들이고, 그 본토에서 조세 받는 것도 벼의 성숙한 정도를 상·중·하의 3등급으로 나누어서, 한 마지기[斗落] 밭갈이에 풍년이 들어 상으로 익은 것은 벼 3말을 받게 하고, 중으로 익은 것은 2말, 하로 익은 것은 1말을 받게 되는 것이니, 가령 천석지기라 하면, 하급으로 익는다 하여도 〈그 수가〉 천 석 이하에 내려가지 않을 것인데, 하물며 제주의 토지가 어찌 전부 천석지기에만 그칠 것이겠습니까. 수년만 계속하여 쌓으면, 만 석으로 늘어날 것이니, 거리의 원근을 헤아려 보고, 백성의 사는 밀도를 잘 살펴, 곳에 따라서 창고를 나누어 세워주어, 시기에 맞추어서 거둬들이고 내어주면 백성도 먹기 어려운 근심은 없을 것입니다. 

혹 흉년을 만난다 하여도, 쌓아 둔 곡식의 기본량이 있어서, 나라에서는 곡식을 운반할 노력이 없고, 백성은 그 혜택을 입을 것입니다. 혹 말하기를, 제주는 토지가 척박하고 백성은 조밀하여, 농사와 누에치기를 힘쓰지 않고, 수륙(水陸)의 소산으로써 장사하여, 생계를 삼고 있으므로, 밭의 조세를 받을 것이 없다고 하나, 제주는 옛적에 탐라국(耽羅國)이라 일컬어, 신라국과 함께 건국하였으니, 어찌 세납 받는 법이 없이 능히 나라를 다스렸을 것입니까.(중략)

말[馬]은 군국(軍國)에서 소중히 여기는 것이라 생각지 않을 수 없으니, 산림에 놓아 제 천성대로 자라서 사람에게 길들여 익히지 않았다가, 일조에 갑자기 붙들어 매어 후풍(候風)하는 곳에 모아, 여러날 주리고 목마르게 하다가, 배에 실려서 바다를 건너게 하면, 풍토와 물이 각각 다른지라, 목말라 물을 마시다가 병이 나면, 못쓰는 말이 되어, 나라에 무익한 것이니, 이제 각처에 마땅한 곳을 조사해서 마굿간을 설치하여, 미리 길러서 겨울을 지나면, 거의 전일의 병이 없어지고 다 실용이 될 것입니다.” 하였다. 

임금이 정부와 육조로 하여금 의논하여 올리라고 하니, 다 이르기를,
"진언한 대로 하되, 토지의 계량은 금년 가을을 기다려 하고, 조세는 내년부터 시작하되, 동·서 두 경계의 예에 의하여 거두어 들이소서.” 하니, 그대로 따랐다.
 
이후로 제주도는 세제가 확립되고 말 사육이 장려되며 학교가 세워지고 행정력이 자리를 잡게 된다. 지방의 행정책임자의 현장에 밀접한 제안 하나가 가장 큰 섬 제주를 체계적으로 다스리게 만드는 중요한 전환점을 마련한 것이다. 

현장에서 세밀히 살피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어제나 오늘이나 중요한 일이다. 지방분권의 시대에는 더욱 그러할 것이다.     

세종신문 대표 김태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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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05/13 [10:35]  최종편집: ⓒ 세종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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