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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인형 안에 우리의 얼굴이 있다”
[인터뷰] 이필란 흙인형 작가
 
이재춘 기자   기사입력  2019/05/08 [15:32]
여주 공예인들을 대상으로 8회에 걸쳐 인터뷰를 진행한다. 그 세 번째로 이야기로 흥천에서 흙인형을 만드는 이필란 작가를 만나보았다. 이 작가는 여주에 온 지 4년 되었는데 30년 산 것처럼 푹 빠져있다며 이야기를 엮어나갔다.    

▲ 흥천면에서 흙인형을 빚고 있는 이필란 작가.     © 이재춘 기자


여주와 인연은 어떻게 시작되었나?
 
서울에서 여주로 온지 4년 되었다. 나는 충남 아산에서 태어나 세 살 때 서울로 이사를 갔고 남편은 서울에서 태어나 평생 서울에서 살았다. 남편이 목공관련 사업을 하였는데 IMF이후 사업이 어려워지기 시작해 목수도 같이 하고 있다. 서울생활에 너무 지쳐서 2016년에 서울 집을 팔고 제주도로 여행을 갔다. 그 당시 제주도 곳곳에 건축이 한창이었는데 남편이 목수라  몇 년 머물며 살 생각도 했다. 날씨가 너무 습해서 남편이 힘들어 해 제주도를 떠나 경남 함양, 충남 아산, 경기도 파주, 안성, 이천, 장호원 등을 돌아다니며 살만한 곳을 찾아 다녔다. 그렇게 떠돌다 여주까지 들어왔다. 집 찾기에 지쳤을 때 흥천면 복대리의 지금 집을 만나게 되었는데 남편이 너무 좋아해서 3일 만에 계약하고 바로 이사를 왔다.


여주에서 살아보니 어떤가?

서울에서만 살았던 나는 새로 얻은 집이 마을회관 바로 앞인 것이 걱정이 되었다. 이사오기 얼마 전 시어머니를 여의었는데 마을회관에 왔다갔다 하는 열 댓 명의 시어머니가 새로 생기는 것 같았다. 남편이 나에게 별걱정을 다 한다기에 여주에 가면 더 잘해달라는 조건을 달고 이사를 왔다. 살다보니 파리도 너무 많고 보일러실에 뱀이 나타나서 119에 신고도 해봤다. 뱀이 나왔다고 119에 신고한 사람은 복대리에서 우리가 처음이라고 동네 사람들이 다 한 말씀 하셨다. 큰 소방차 한대가 무슨 난리라도 난 것 같이 요란하게 마을에 다녀갔으니 마을어른들이 기가 막혔을 것이다.

그런데 조금 더 살아보니 내 걱정은 전부 쓸데없는 걱정이라는 것이 확인되었다. 마을 분들이 전부 친절하고 인심도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 이제 만 3년 살았는데 한 30년 산 것처럼 마을에 푹 빠져 산다. 마을 이장님도 정말 친절하셔서 우리의 작은 부탁도 곧잘 들어 주신다. 

▲ 이를 드러내고 환하게 웃는 얼굴이 이필란 작가의 대표적 작품이다.     © 이재춘 기자


도자기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

사연이 좀 길다. 난 도자기를 시작한지 얼마 안 된다. 어렸을 때는 그림 그리는 것을 정말 좋아했다. 그런데 상업고등학교를 나와 직장생활을 하다 결혼하고는 가정을 돌보고 남편 뒷바라지만 했다. 남편은 시아버지께서 하시던 목공 사업을 물려받았다. 우리 남편은 차남으로 다섯째인데 아버지의 사업을 물려받고 우리가 부모님을 모시고 살았다. 우리 시아버지는 만주에서 장사하시다 6.25때 서울로 나와 장사를 하신 분이라 모든 것이 철저하셨다. 시아버지께서는 아들 딸들을 다 아끼고 사랑하셨고 나도 많이 예뻐해 주셨지만 당신의 그 엄격하고 냉정한 분위기는 지금도 생각하면 어렵다. 시아버지를 친정아버지처럼 대하고 싶었는데 그게 내가 그렇게 하고 싶다고 되는 것이 아니었다. 지금 돌아보면 우리 남편도 사업보다는 공부를 해야 할 사람인데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한 것이 아니라 그냥 아버지의 사업을 물려받다 보니 일을 하면서도 즐겁지 못했던 것 같다. 

IMF이후 남편이 목수를 새로 시작 하였는데 어느 날 어린이집 원장이 어린이집 교구와 가구를 만들어 줄 수 있는가 물었다. 대부분 가구는 직선으로 잘라 만드는데 어린이집 교구와 가구는 꽃, 동물, 도형 같은 것을 만들어야 하는 것이었다. 남편이 갑자기 내 얼굴을 처다 보더니 할 수 있겠다고 대답했다. 밑도 끝도 없이 그냥 내 얼굴을 보니 할 수 있을 것 같더란다. 그게 계기가 되어 남편이 목공을 하는 물품의 밑그림이나 도면을 그리기 시작했다. 어린 시절 그림을 그리고 싶었던 꿈이 이렇게 실현된 것이다. 그러다가 2010년도 초반에 우연히 서울과학기술대학교 도예과 교수를 알게 되어 도자기를 배웠다. 그 당시 도예과 교수 몇 분이 나에게 인형을 빚어보라고 하였다. 내 손끝을 보니 인형이 났겠다고 했는데 전문가들은 무슨 감이 있나보다 생각했다. 그래서 첫 작품으로 책가방을 든 학생 인형을 만들었는데 그 작품을 보더니 도예과 교수들이 ‘그릇 빚지 말고 그냥 인형 빚으세요’라고 했다. 


어떤 마음과 기분으로 인형을 빚나?

인형을 빚을 때는 아무 생각 없이 그냥 빚어야 한다. 예쁘게 빚어야지 하고 빚으면 모양이 안 나온다. 오늘은 기분이 좋아 인형을 예쁘게 잘 빚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구워져서 나오면 내가 원하는 모양이 아니다. 마음을 비우고 그냥 내가 즐거운 마음으로 빚으면 좋은 인형이 만들어 진다. 인형을 빚을 때 흙 만지는 촉감이 너무 좋아 때로는 시간 가는지도 모르고 인형을 빚는 경우도 있다.

한번은 ‘프리마켓’에서 인형을 구경하던 손님이 인형을 하나 사갔는데 자기 아들이 너무 좋아하며 껴안고 뽀뽀도 하고 그런다고 비슷한 인형을 하나 더 만들어 달라고 주문을 하였다. 그래서 그 분이 원하는 모양으로 인형을 만들어 봤는데 그분이 원하는 인형이 만들어지지 않았다. 결국 인형 값을 환불해 주었다. 그분의 자녀가 자폐증을 앓고 있는 것 같았는데 그 분이 원하는 것을 만들어 주지 못해 지금도 마음에 걸린다. 뭔가 욕심을 가지고 만들면 안 되는 일이 흙인형 만드는 일인 것 같다. 

▲ 이필란 작가의 흙인형.     © 이재춘 기자


흙인형을 만들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프리마켓’에서 다른 품목으로 판매를 하는 분 이야기다. 어느 날 그 분이 나에게 와서 인형을 하나 달라고 하였다. 평소 그 집 가판대에서 내가 관심을 가진 물건이 있는데 교환을 하자는 것이다. “요 인형은 가격을 떠나 나에게 주는 메시지가 있다”며 그 인형을 볼 때마다 웃음이 난다고 하였다. 내가 만든 인형이 누군가에게 웃음을 줄 수 있다는 것에 나는 만족하고 보람을 느낀다. 프리마켓을 하며 가판대에 앉아 있으면 사람들이 지나가며 서로 손짓으로 불러대면서 “너 닮은 인형이 있어”, “네가 여기에 있어”, “야 빨리 와봐”하고 웃고 떠든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또 웃고 즐긴다. 내가 만든 흙인형 안에는 내 모습도 우리의 모습도 다 담겨 있다. 


흙인형을 빚어서 먹고 살 수 있나?

나도 아직은 흙인형을 빚어서 돈을 많이 벌지는 못한다. 흙인형을 빚어서 먹고 살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솔직히 그 점이 좀 섭섭하다. 흙인형 만드는 일을 그냥 좋아해야 한다. 아직은 직업으로 하기는 어렵고 취미로 한다. 나도 흙인형을 만들어 돈을 벌지는 못하지만 자신을 돌아보고 또 좋은 벗을 만나고 있다. 프리마켓에 나가는 것도 돈을 벌기 보다는 좋은 사람을 만나고 그 사람을 통해 돈으로 계산 할 수 없는 소중한 것을 얻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도 좀 더 살기가 괜찮아져 흙인형을 만들어서 생계를 이어갈 수 있는 날이 올 거라 믿는다. 

▲ 이필란 작가의 흙인형 작품.     © 이재춘 기자

미래에 소망이 있다면?
 
지금은 흙인형을 얼굴 위주로 만들고 있다. 언젠가 내 마음이 더 풍부해지고 실력도 쌓이면 온 몸을 다 만들고 싶다. 어떤 사람들은 이런 나에게 몸을 잘 만드는 사람이 있으니 몸은 그 사람들이 만들라고 하고 나보고는 얼굴만 만들라고 하는데 그 말도 감사한 말이다. 도예과 교수님들은 얼굴을 빚으면 몸은 자연히 따라 온다고 하던데 그렇게 되리라 믿는다.

그리고 나이가 더 들면 아이들에게 구연동화를 해주고 싶다. 동화책을 읽어주며 아이들에게 꿈을 주고 희망을 전해주고 싶다. 나는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그 웃음이 너무 좋다. 그래서 지금도 흙인형을 만들 때 아이들을 많이 만든다. 어떤 때는 흙인형에서 우리 손자 얼굴이 나오기도 한다. 어떤 사람들은 아이들 인형이 나를 꼭 닮았다고 한다. 나의 어린 시절 감성이 담겨서 그럴 것이다. 우리 딸이 그림을 그리는데 딸이 그린 그림으로 내가 인형을 만들어 아이들에게 동화처럼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 언젠가 딸에 내가 그런 말을 했더니 딸이 정말 좋겠다고 했다. 그날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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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05/08 [15:32]  최종편집: ⓒ 세종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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