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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록여행34-‘바르고 충성된 말을 들어 재변(가뭄)이 풀리기를 구하노니’
 
세종신문   기사입력  2019/04/29 [13:37]
▲세종신문  대표 김태균    
비인현 왜구 사건의 대책과 대마도 정벌논의로 조정의 분위기가 무거울 때 심각한 가뭄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야말로 내우외환이다. 
당시만 해도 모든 산업은 농업이었고 하늘에서 비를 내리지 않으면 논농사 밭농사를 전혀 하지 못하는 형편이다. 봄 가뭄이 심하면 그해에 먹고 살 식량을 만들지 못하므로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었다. 
5월 중순, 양력 6월부터 가뭄의 심각성에 대한 기사가 이어지는 것으로 봐서 모내기철을 지나면서 이미 가뭄은 깊어져 가고 있었던 듯하다. 천재인 가뭄을 극복하기 위해 세종과 신하들이 어떤 노력을 기울였는지 살펴본다.
 
임금이 가뭄을 근심하여, 사헌부에 명하여 금주(禁酒)의 영을 엄하게 하고, 또 수강궁 외에는 술을 드리지 말도록 하였다.(5월 19일)
 
예조에 명하기를,
"이제 기우(祈雨)하는 것이 사전(祀典)에는 비록 실려 있지 아니하나, 전부터 빌어 온 곳에는 다 같이 거행하라.”(5월 26일)
 
가뭄으로 인하여 풍운(風雲)·뇌우(雷雨)·산천·삼각(三角)·목멱(木覓)·한강·태일(太一)에 비를 빌고, 각 종파(宗派)의 중들로 하여금 흥복사(興福寺)에 빌었으며, 아이들은 푸른 옷차림으로 석척(蜥蜴; 장지뱀) 을 부르며 경복궁 경회루 못가에서 빌게 하고, 무당을 모아 비를 빌게 하기도 하였다.(5월 29일)
 
우선 궐내에서 태종전에 올라가는 술만 제외하고 모두 금주령을 내리고 제사 예법을 정해 놓은 것에는 없는 일이지만 기우제를 지내기를 명령한다.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하려는 절박함이 묻어난다. 당시만 해도 세종은 23살의 젊은 청년이었다. 음양술이나 전통을 벗어나는 제사 등을 달가워하지 않는 입장에 있었다. 하지만 다급했던 것이다. 불가의 중들과 무당까지 모두 모아 비를 빌게 했다. 
 
임금이 가뭄을 근심하여 원숙 등에게 묻기를,
"당나라 태종이 천재를 만나면, 궁녀(宮女)들을 내보내어 음원(陰怨)을 풀었고, 우리 부왕께서도 또한 한재를 만나면, 방자(房子)로 하여금 제 집에 왕래하게 하여 지금까지 행하고 있으니, 나도 또한 방자들이 제 집에 왕래하는 것을 허락하고자 하노라."
하니, 원숙이 대답하기를, ‘여러 이유로 불가합니다…’ 고 하니, 임금이 그렇게 여겼다.(5월 26일)
 
이어지는 기사는 임금의 고민을 한 켠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궁녀들을 집으로 왕래하게 하여 가족을 보고싶은 마음을 풀어주는 것이 어떻겠냐는 제안이다. 아마도 이 대목은 밤 늦게까지 잠을 안자고 고심하며 서적을 보면서 가뭄대책을 찾던 중 무엇이라도 붙잡고 싶은 절박함이 묻어나오는 대화이다.
 
임금이 대언들에게 이르기를,
"가뭄이 너무 심하니, 정사의 잘못함이 없는가 널리 옳은 말을 구하는 것이 가할 것이다." 하며 대언들로 하여금 구언(求言)하는 교서를 기초하게 하였다. 교서에 이르기를,
"내가 부왕이 중하게 부탁하심을 받들어 나라 다스리기에 성심을 다해서 풍년이 들고 평화롭기를 바랐더니, 돌이켜 생각하건대, 덕이 부족하여 천심을 받들지 못하였는지 왕위에 임한 처음부터 놀라운 한재를 당하여, 기도 드리기를 간절하게 하였으나, 조금도 비가 내릴 징조가 없으니, 아침 저녁으로 삼가고 두려워해서 몸둘 바를 알지 못하는지라, 바르고 충성된 말을 들어서 재변이 풀리기를 원하노니, 대소 신료(臣僚)와 한량(閑良)·기로(耆老)는 각각 마음에 생각하는 바를 다 말하여, 이때에 정사의 잘못된 것과 생민의 질고를 숨김없이 다 진술하여, 내가 하늘을 두려워하고 백성을 애휼하는 뜻에 부합하게 하라. 그 말이 비록 사리에 꼭 맞지 않는다 하더라도 또한 죄주지는 않으리라.” 하였다.(6월 2일)
 
비가 오지 않는 것은 하늘의 일이다. 하지만 사람의 일이 하늘을 노엽게 하지는 않는지를 염려하는 태도를 지녔던 세종은 정사에 문제가 있는지, 국가운영에 있어 무언가 실책은 있었는지를 묻기 위해 많은 사람들에게 허심탄회하게 의견을 올리기를 구하는 것이다. 누구든지 ‘정사의 잘못과 백성의 질고를 다 진술해 달라. 혹 사리에 맞지 않더라도 문제삼지 않겠다’는 말을 구하는 중이다. 농업기반의 사회에서 국가단위로 농사를 망치는 것은 어떤 재난보다 큰 일이다. 이러한 재난에 대처하는 지도자의 마음자세가 마음에 와 닿는다. 
이어지는 실록의 기록들은 모두 비를 바라는 마음들을 위한 모든 것이다.
 
설우(雪牛)가 《대운윤경(大雲輪經)》에 의해서 두 번째로 중[僧] 7명을 데리고 7일 기도를 청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수많은 정성도 능히 하늘을 감동하게 못하거늘, 하물며 일곱 중이 어찌하랴. 절박해서 하는 것인 줄 아나 마음에 믿어지지 않는다.” 하고, 허락하지 아니하였다.(6월 2일)
 
임금이 말하기를, "이토록 가무니 정사하기 어렵구나.” 하였다.(6월 3일)
 
동방 토룡(東方土龍)에게 비를 빌었다.
중앙 토룡에게 비를 빌다.
여천군(驪川君) 민여익을 보내어 종묘에 비를 빌었다.
 
임금이 승정원에 명하여 말하기를, "가뭄이 너무 심하니, 궐내에서 덜고 줄일 만한 일을 뽑아서 적어 올려 알려라.” 라고 하였다.
 
이조 판서 맹사성에게 명하여 소격전(昭格殿)에 비를 빌고, 검교 한성부 윤(檢校漢城府尹) 최덕의(崔德義)로 석척 기우(蜥蜴祈雨)를 경복궁 경회루 못가에서 지내게 하고, 우의정 이원으로 원구(圓丘) 에서 비를 빌게 하였다.
 
정사를 보았다. 변계량이 가뭄이 심하므로 원단(圓壇)에서 하늘에 제사 드리는 예(禮)를 다시 하자고 청하니, 명하여 하늘에 제사할 날짜를 선택하라 하였다.(6월 7일)
 
비가 오다. 명하여 원구 및 여러 곳의 기우하는 제사를 정지하게 하였다.
정부와 육조가 경축하는 술을 올리기를 청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마땅히 명일에 술을 드리라.” 고 하였다. (6월 9일)
 
큰 비가 왔다.
임금이 말하기를, "비의 혜택이 이미 내렸으니, 내 마땅히 경연에서 정사를 보리라."
고 하였다. 궐내에 들어와 당직하는 사람들에게 술을 주라고 명하였다.(6월 10일)
 
약 20일에 걸쳐 가뭄과 싸웠다. 결국 비는 왔고 비상체제는 풀렸다. 비가 온 당일 임금에게 축하주를 올리려고 하자 내일 먹겠다고 했다. 그큰 비가 내린 후 임금도 마음이 풀려 경연의 정사를 보고 사람들에게도 술을 하사하게 된다. 
기사에 드러나는 대책이라는 것이 대부분 기우제 형식의 대안이지만 그 절박함만은 컸다. 이후 물을 퍼 올리는 수차를 시험하는 일도 이러한 경험에서 나오는 일이었을 것이고 우물을 파거나 소규모 저수지를 만드는 일도 모두 향후에 정책적 대안으로 나온다. 
‘하늘의 이치가 비록 이와 같더라도 사람이 할 일은 다하지 않을 수 없다’   

세종신문 대표 김태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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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04/29 [13:37]  최종편집: ⓒ 세종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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