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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록여행32-‘부자가 서로 힘껏 싸우다가 함께 죽으니, 사람들이 매우 슬퍼하였다’
 
세종신문   기사입력  2019/04/11 [14:30]
▲ 발행인 김태균     
세종 1년 5월, 서기 1419년이니까 정확히 600년전 이 맘때 쯤 비인현 왜구사건으로 불리는 일이 터졌다. 비인현은 지금의 충남 서천의 비인면이다. 대마도의 해적들이 섬에 극심한 흉년이 들자 명나라 해안에 노략질을 하러 가는 중 식량이 떨어져 조선의 연안을 약탈하게 되었다. 이 사건으로 지역을 지키던 만호(종4품관)와 양민 300명이 죽는 대사건이 벌어졌다. 왜구들은 계속 북상해서 연평도와 백령도까지 이르기도 했다. 먼저 실록의 기록을 보자.
 
충청 관찰사 정진(鄭津)이 비보(飛報;급히 보고)하기를, "5월 초5일 새벽에 왜적의 배 50여 척이 돌연 비인현(庇仁縣) 도두음곶이[都豆音串]에 이르러, 우리 병선을 에워싸고 불살라서, 연기가 자욱하게 끼어 서로를 분별하지 못할 지경이다." 하니, 상왕이 곧 명하기를,
"그 도(道) 시위 별패(侍衛別牌)와 하번 갑사(下番甲士)와 수호군(守護軍)을 징집하여, 당하영선군(當下領船軍)과 같이 엄하게 방비할 것이며, 총제 성달생은 경기·황해·충청 수군 도처치사(都處置使)에, 상호군(上護軍) 이각(李恪)은 경기 수군 첨절제사에, 이사검(李思儉)은 황해도 수군 첨절제사에, 전 총제 왕인(王麟)은 충청도 수군 도절제사에 명하고, 또 해주 목사 박영(朴齡)은 황해도 수군 절제사를 겸하게 하라."
 
당시는 병권은 태종이 행사할 때이고 세종은 수습임금의 처지에 있었다. 태종이 임금으로 있을 때는 조선의 요구에 따라 대마도가 무역선을 통제하고 왜구를 통제하고 있었기 때문에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수시로 개인적인 상업무역이 이루어지던 평화의 시기였다. 
그런데 대마도주인 종정무가 죽고 아들 종정성이 뒤를 이었지만 아직 나이가 어려 실권은 왜구의 두목인 사에몬다로가 장악하고 있었다. 대마도에 일대 세력을 형성하고 있던 그는 기근이 들자 해적기질을 발휘한 것이다. 
이어지는 기사에는 독특한 장면이 등장한다. 왜로부터 항복해 온 평도전이란 인물이다. 그는 이미 상호군이란 벼슬을 살고 있었는데 이 사건을 처리하라고 임시 벼슬(조전병마사)을 줘서 이 사건을 처리하도록 명하는 대목이다. 상호군이란 정3품 무반직으로 고려시대의 용어로는 상장군에 해당하는 무반 최고위층이다. 
 
이어 박은이 계하기를,
"국가에서 왜인을 대접하기를 극히 후하게 하였는데, 이제 우리 변방을 침략하니, 무신(無信)함이 이와 같다. 평도전(平道全)은 성은(聖恩)을 후히 입고 벼슬이 상호군에 이르렀으니, 마땅히 도전을 보내어서 싸움을 돕게 할 것이니, 이제 만일 그 힘을 이용하지 아니하면 장차 어디에 쓰리오. 죽이는 것도 가하다." 하니, 곧 명하여 도전을 충청도 조전 병마사(助戰兵馬使)로 삼고, 같은 왜인 16명을 거느리고 가게 하니, 도전은 원래 일본 사람이다.(세종1년 5월 7일)
 
평도전이란 인물은 드라마 대왕세종에서 왜인의 첩자로 등장하지만 사실은 태종 7년(1407년)에 조선에 귀화한 대마도주 종정무의 부하장수였다. 대마도와 조선의 사신으로 여러차례 왕래하다가 식솔들을 모두 데리고 귀화하게 되었는데 당시 3품관에 이르는 관직을 하사하고 주로 왜와의 외교 역할을 맡겼다. 세종1년, 평도전이 귀화한지 12년이 지난때 비인현 왜구약탈사건이 터지자 그를 믿고 왜구들을 물리치라는 특명을 내린다. 그는 아들 평망고와 함께 출전하였으나 싸움을 소극적으로 일관하며 대마도와 내통했다. 당시 평도전은 '조선이 대마도를 박하게 대하니 대마도에서 조선을 위협하면 조선이 다시 대마도를 잘 대접할 것이다'라는 밀지를 전달했다. 그의 가족은 평안도에 유배(流配)되어 귀양을 가게 되었고 아들 평망고는 반발하여 달아났다가 체포되어 처형되었다. 평도전은 유배지에서 곤궁한 삶을 살다 사망한 인물이다. 계속 보고되는 내용은 그 전황 속의 이야기다.
 
정진이 또 보고하기를,
"왜적이 도두음곶이[都豆音串]에 쳐들어왔을 때에 만호 김성길(金成吉)이 술에 취하여, 방비를 하지 아니하여, 적선 32척이 우리 병선 7척을 탈취하여 불사르고, 우리 군사가 죽은 사람이 태반이라. 성길이 그 아들 김윤(金倫)과 같이 항거하며 싸우다가, 성길이 창에 찔려 물에 떨어졌으나, 헤엄쳐서 겨우 살고, 윤은 적을 쏘아 세 사람을 죽이었으나, 돌아다보니, 그 사이에 아비가 이미 물에 빠져서 죽었으므로, ‘아비가 이미 물에 떨어져 죽었으니, 내가 어찌 혼자 싸우다가 적의 손에 죽으리오.’ 하고, 드디어 물에 떨어져 죽었다. 
적이 이긴 기세를 타고 육지에 오르니, 비인 현감 송호생이 군사를 거느리고 맞아 싸웠으나, 군사가 적으므로, 물러가서 현(縣)의 성(城)을 지키는 중, 적은 성을 두어 겹이나 에워싸고 아침 진시(辰時)로부터 낮 오시(午時)까지 싸웠더니, 성은 거의 함락하게 되었고, 적은 성 밖에 있는 민가의 닭과 개를 노략하여 거의 다 없어지게 되었다. 지서천군사(知舒川郡事) 김윤(金閏)과 남포진(藍浦鎭) 병마사 오익생(吳益生)이 군사를 거느리고 잇달아 이르러서 함께 싸워, 각각 일급(一級)씩을 베어 죽이고, 호생은 또 성 밖에 나와서, 살에 맞으면서 힘껏 싸워 한 사람을 사로잡았더니, 적이 포위하였던 것을 풀고 돌아갔다."
하니, 두 임금이 이것을 듣고 크게 놀랐다(세종1년 5월 7일)
 
아버지 성길은 전투도중 부상을 당해 물에 떨어졌으나 헤엄쳐 겨우 살아남았는데 전투 중이던 아들이 그 소식을 듣고 아비의 죽음에 자신이 살아남을 수 없다 하여 물에 몸을 던져 죽어버린 슬픈 이야기다. 결국 인근의 지원군이 와서 두목과 함께 2명을 목 베고 한 명을 사로잡으면서 물러가게 했지만 피해는 막중했다. 그리고 두 임금은 놀란다. 3일 뒤 실록은 그 일의 뒤처리를 이렇게 전한다.
 
충청좌도 도만호(左道都萬戶) 김성길(金成吉)이 참형 당하였다. 처음에 전라도 감사가 왜적이 경내를 지나간다 하여 빨리 알렸으나, 성길은 알고도 방비하지 아니하다가 패하기에 이르렀으니, 체복사(體覆使)가 벤 것이었다. 후에 해주 목사 박영이 한 왜인을 사로잡아 바치거늘, 병조가 물으니, 말하기를,
"나는 대마도에 사는 사람으로 섬사람들이 다 굶게 되어, 배 수십 척을 가지고 절강(浙江) 등지에서 노략질하려고 하였으나, 단지 양식이 떨어져서 우선 비인(庇仁)을 털고, 다음에 해주에 와서 도적질할 것을 엿보며, 물을 길으려고 조그만 배에 타고 언덕에 오르다가, 홀지에 관병(官兵)에게 사로잡혔고, 저희들 괴수는 도두음곶이를 털 때, 만호의 화살에 맞아 죽었다."
하였다. 성길이 처음에 비록 방비하지는 않았으나, 적을 만나면, 부자가 서로 힘껏 싸우다가 함께 죽으니, 사람들이 매우 슬퍼하였다.(세종1년 5월 10일)
 
비인현 왜구사건은 평화로운 시기를 지내던 지방해안의 느슨함과 위기를 보여주고 그 과정에서 실수는 있었지만 목숨 바쳐 싸운 사람들의 이야기가 함께 묻어난다. 동시에 벼슬까지 주며 우대해 주었던 귀화 왜인의 본심도 알게 되었다. 결국 이 사건을 기화로 이종무 장군을 삼군도체찰사로 삼아 대마도정벌(기해동정)이라는 국가적 정벌사업이 시작되었다. 
가뭄이 노략질로, 노략질이 무고한 양민 수백명의 목숨을 앗아가고 결국은 병선 227척, 병사 17,000명을 움직이는 국가단위의 정벌사업까지 키우게 된다. 하늘의 뜻은 알 수가 없다.   

세종신문 대표 김태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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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04/11 [14:30]  최종편집: ⓒ 세종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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