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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철학의 힘 : 생생[거듭살이]의 삶을 찾아서 ②
 
세종신문   기사입력  2019/04/05 [17:05]
▲ 김광옥 수원대 명예교수     
생각하는 임금 세종의 삶의 철학을 연재하며 전제로 생각해 볼 일이 있다. 먼저 세종 연구가 많은지, 세종이 충분히 알려져 있는지 다른 사람과 비교해 보자. ‘구글’에는 조회 수가 나온다. 국문 입력으로 ‘세종대왕’을 치면 259만개의 정보가 나온다.  ‘도쿠가와 이에야스’ 12만 4천, ‘링컨’ 240만, ‘레오나르도 다빈치’ 81만 8천, ‘징기스칸’이 497만 7천이다. 영어로 검색해 보면 ‘king Sejong'은 119만개, 'Tokugawa Ieyasu' 146만, ’Abraham Lincoln' 1억3천6백만, ‘Leonardo da Vinci' 1억6천 5백만, ’Jinkisukan' 66만6천 등이다.(2019년 4월) 한글로는 ‘세종’이 가장 많지만 영어로 나타나는 기사 수는 ‘도쿠가와 이에야스’ 보다도 적다. 한마디로 국제화가 덜 되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세종에 대한 더 많은 연구와 다양한 홍보가 필요해 보인다.


세종 비교 연구는 국가 이미지를 높이는 길  

세종연구가 활발하게 이루어져야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요약하면 첫째, 세종의 변역(變易) 즉 변혁의 정신은 오늘 4차 산업 시대에도 살려야 할 정신이다. 둘째, 한국이 세계적으로 경제에서는 11대 국가이지만 문화가 이를 뒷받침하고 있느냐 할 때 아직 고개를 갸우뚱 할 것이다. 요즘 K컬처라고 하여 K팝을 앞세우고 음식, 농산물, 관광 등을 내세우고 있지만 한시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는 한국의 정신문화[사상]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세종의 훈민정음[한글]을 통한 편민(便民)정신이나 여민(與民)정신을 알려야 할 것이다. 또한 우리 민족이 수많은 외침(外侵) 속에서도 꿋꿋이 저항한 의병(義兵) 정신 등을 살려내야 할 것이다. 금년은 3·1독립운동 100주년이어서 더욱 의미가 깊다.
 
이런 연구의 한 방법으로는 세종과 다른 나라의 유사한 인물의 비교 연구가 있을 것이다. 그간 세종 학습 중 세종을 다른 나라의 인물과 비교하는 몇 발표를 들을 기회가 있었다. 이탈리아의 다빈치, 미국의 링컨, 중국의 강희제, 독일의 니체 등이다. 개략하면 창의성의 다빈치, 사람의 권리와 삶을 회복시킨 링컨, 국가 재정 확충 등 정치안정과 강화 조약, 영토 확장을 이룩한 강희제, 몸이 아팠고 음악에 조예가 깊은 면이 세종과 유사하고 현실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새로운 삶으로의 군주도덕을 강조한 니체 등을 살필 수 있었다. 

이런 가운데 지난 2월 20일부터 8일간 중앙아시아의 우즈베키스탄(이하 우즈벡)에 한국 ‘문화미디어포럼’ 회원들과 우즈벡 국립저널리즘대 공동주관의 미디어 문화 세미나를 위해 타슈켄트와 유네스코 유적 도시인 사마르칸트를 다녀온 일이 있다.  
 

조선의 세종과 우즈벡의 나보이, 그리고 울르그벡

느닷없이 세종과 우즈베키스탄이 무슨 연관이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 것이다. 우즈벡은  비록 멀리 떨어져 있지만 우리 역사와 이어져 있다. 중앙아시아 실크로드의 중심지인 우즈벡의 사마르칸트 아프로시압 궁전 터에서는 고구려 사람이 조우관(깃털모자)을 쓴 벽화가 발견된 바도 있어 예부터 한 반도와 거래가 있었음을 증명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징기스칸의 동서 정복의 역사가 시들어가는 15세기에 조선과 우즈벡의 중앙아시아가 다 같이 새로운 변화에 직면하고 있었다. 우즈벡에서는 영토 확장의 아무르 티무르(Amir Timur) 왕, 그리고 어문학의 알리셔 나보이(Alisher Navoiy)와 천문의 미르조 울르그벡(Mirzo Ulugbek)이 있었다. 이를 우리나라와 비교하면 몽골로부터 철령 이북의 쌍성총관부를 되찾은 태조 이성계, 그리고 세종과 비슷한 시기에 세종처럼 우즈벡 역사의 획을 긋는 인물이 어문학, 그리고 천문학에서 있었던 것으로 비교할 수 있었다. 15세기 우즈벡 두 인물의 업적을 보자. 

알리셰르 나보이(Alisher Navoiy, 1441년~1501년)는 티무르왕조 전성기였던 샤흐루흐(Shakhrukh) 통치기에 고위관료였던 아버지 밑에서 훌륭한 교육을 받고 재상까지 지낸 중앙아시아의 정치가이자 신비주의자이자 미술가이며 위구르 전통 시인이었다.  

알리셰르 나보이가 등장하면서 투르크어가 그 한계를 넘어 당당히 아랍어와 페르시아어에 도전할 수 있게 됐다. 알리셰르는 30년 동안 30개의 작품을 차카타이(Chagatai) 투르크어로 집필했다. 하위 언어에 불과하다는 편견을 깨고 다수의 투르크계 백성을 위해 자신의 생활 언어로 작품을 적은 것이다. 아랍어와 페르시아어로 된 작품을 동포들이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투르크어로 문학작품을 저술해 읽히고자 했을 것이다. 투르크 언어가 문학적 목적으로 페르시아어보다 우월하다고 믿었는데 그 당시에는 드문 견해였다. 그는 페르시아어와는 달리 투르크어 어휘의 풍부함, 정확성 및 가단성(유연성)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그의 작품들은 오스만 투르크, 카잔 투르크와 같은 다른 투르크계 종족들에게도 영향을 주었고 결과적으로 현재의 투르크 민족들이 모국어로 문학작품을 집필할 수 있는 토대가 됐다. 투르크어 계열의 언어는 민족에 따라 40여개가 있다. 최초로 우즈베크어로 쓰인 문학을 쓴 작가로 우즈벡에는 그의 이름을 딴 극장과 기념비가 있는 등 그를 민족의 정신적 지도자로 여긴다. (성동기, 인하대학교, Bell Ringer 인문산책 참고) 
백성이 사용할 한글을 창제한 세종과 유사하게 해석될 수 있는 부분이다. 

티무르의 손자 미르조 울르그벡(Mirzo Ulugh Bek, 1394~ 1449)은 수학자, 천문학자로 이 시대에 앞선 기술로 태양계나 시간 개념을 완성했다. 학문과 예술에도 관심이 컸다. 오늘날 1일 365일의 오차는 다른 나라 것과 비교해 오차가 가장 적다. 울르그벡은 천문에도 관심이 많아서 천문대 등이 남아 있으나 지하뿐이다. 더 발굴하면 기존의 천문대가 무너질 수 있어 조사를 멈추고 있는 상태다. 다행히 그의 기록은 책〈Zij Guragan〉에 보전되었고 이는 유럽으로 전해지면서 오늘날 천문학 발전의 근간이 되었다. 

세종이 이천, 이순지, 장영실 등과 천문 연구와 기구를 만든 사실과 비교할 수 있고 아라비아 천문과학이 중국을 거쳐 조선에서 재해석되는 과정도 한 연구 주제가 될 것이다. 

세종(1397~1450)과 우즈벡의 역사적 인물의 비교 연구는 문화 교류와 함께 특히 세종 시기의 세계문화를 비교하는 연구와 함께 세종을 세계화하는 한 가지 방법이 될 것이다. 세종을 우리나라 안에만 가두어 둘 수는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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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04/05 [17:05]  최종편집: ⓒ 세종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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