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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록여행31-‘그 여인에게 더이상 캐묻지 말라’
 
세종신문   기사입력  2019/03/22 [14:33]
▲ 발행인 김태균     
유명인들의 일탈과 범죄, 권력비호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요즘이다. 도대체 이 세상에는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면 알수록 더 요지경 같다. 하지만 사람 사는 세상에는 우리 기준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일들이 종종 일어난다. 요즘만 그런 것은 아닌 모양이다. 

세종 9년인 1427년, 세종의 나이 31살 때이다. 주인공의 이름은 유감동, 출연자는 조정 중신부터 일반 백성에 이르기까지 거론된 이름만 약 40여 명이다. 때는 음력 8월 17일부터였는데, 사헌부에서 유감동이란 여인을 감옥에 가두면서 정황을 보고받게 된다.

보고를 받은 세종은 먼저 비서에게 묻는다. 당시 비서들은 상소문의 대부분을 살펴볼 수 있었는데. 특히 고소와 고발에 대한 사항은 임금이 비서들에게 자주 자문을 구하곤 했다.
 
임금이 대언 등에게 묻기를,
“사헌부에서 음부(淫婦) 유감동(兪甘同)을 가뒀다는데, 간부(奸夫)는 몇이나 되며, 본 남편은 누구인가. 세족(世族)이 의관(衣冠) 집의 여자인가.”
하니, 좌대언 김자(金赭)가 대답하기를,
“간부(奸夫)는 이승(李升)·황치신(黃致身)·전수생(田穗生)·김여달(金如達)·이돈(李敦) 등과 같은 사람이고, 기타의 몰래 간통한 사람은 이루 다 기록할 수 없사오며, 본 남편은 지금 평강 현감(平康縣監) 최중기(崔仲基)다. 중기(仲基)가 무안 군수(務安郡守)가 되었을 때에 거느리고 가서 부임(赴任)했는데, 이 여자가 병을 핑계하고 먼저 서울에 와서는 음란한 행실을 마구하므로 중기가 이를 버렸다. 그 아비는 검한성(檢漢城) 유귀수(兪龜壽)이니 모두 사족(士族)이다.”
하였다. (세종9년 8월 17일)
 
5명은 모두 조정신료들과 그 가문의 사람들이고, 기타 사람은 다 기록할 수 없을 만큼 많다고 하며 그녀가 양반가의 사람이라는 것을 증언한다. 특히 황치신이란 인물은 황희 정승의 아들이다. 황희 정승은 아들이 세 명 있었는데, 치신(몸을 잘 다스림), 수신(몸을 수양함), 보신(몸을 잘 보전하고 지킴)이란 이름으로 지었다. 그런데 그 중 한 명이 유감동과 관계한 것이다.

일단 사건을 담당했던 사헌부는 더 자세히 묻고 캐서, 정황을 다 밝힌 후 법대로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그게 간단치가 않았던 것이, 고구마줄기처럼 계속 간통혐의자들이 드러난다. 관련자 9명 추가, 이어서 14명 추가, 또 다시 9명이 추가되는데 부서와 직급을 가리지 않고 장관급에서부터 9급 말단 관리, 장군, 평민, 장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그중에서 정효문은 전 영의정 정탁의 조카이고, 유감동은 정탁의 첩이기도 했다. 삼촌의 첩을 조카가 건드린 셈이다. 조정은 발칵 뒤집히고 세종은 덮고 싶어한다. 조사가 계속 진전되는 일에 약간의 딴지를 건다. 그만하면 되었다는 말이다.
 
김종서가 아뢰기를,
“효문(孝文)의 범죄는 비록 사죄 전에 있었지만, 그의 숙부 정탁(鄭擢)이 간통했는데 이를 알면서도 고의로 범했으니, 죄가 강상(綱常)에 관계되므로 내버려 둘 수 없으며, 효량(孝良)은 최중기(崔仲基)의 매부(妹夫)이면서 간통했으니, 두 사람의 행실이 짐승과 같으니 모름지기 추궁하여 다스리소서.”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이 여자를 더 추국(推鞫)할 필요가 없다. 이미 간부(奸夫)가 10 수 명이 나타났고 또 재상(宰相)도 끼여 있으므로 일의 대체(大體)는 벌써 다 이루어졌으니 이것을 가지고 죄를 결단해도 될 것이다. 다시 더 추국한다 하더라도 이 여자가 어떻게 능히 다 기억하겠는가. 효문(孝文)은 알지 못하고 간통했다고 말하고 또 공신(功臣)의 아들로서 사죄(赦罪) 전의 일이니 다시 추국하지 말라.”
하였다. (세종9년 8월 20일)
 
덮고 싶어 하는 세종, 일감을 만난 사헌부, 떨고 있을 관련자 등 복잡한 상황이 연출된다. 그런데 유감동이란 여인은 도대체 왜 그렇게 무분별하게 남자들을 상대했을까?

김여달이란 자가 일의 발단이다. 세력 있는 가문의 후손이고, 야간 순찰을 담당하는 벼슬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야간에 무뢰배들과 어울려 동네 거리를 돌아다니다가 피병하러 가는 유감동을 만나게 된다. 

피병이란 몸이 아플 때 잠시 있던 곳을 떠나 있으면 병이 낫는다는 속설을 믿고 외부로 움직이는 것이다. 그때 순찰을 핑계 삼아 유감동을 한곳으로 끌고 가 강간하고 희롱하면서 밤을 보내는데 이후 여달이란 자는 그 집으로까지 드나들면서 관계하게 되고 이후 유감동을 데리고 도망하기에 이르고 얼마 후 유감동을 버리게 된다. 

겁탈을 당하고 버림받고 난 후의 여자 마음은 자포자기 하던지 혹은 오기를 가지고 복수의 방편을 생각할 것이다. 결국 '세상 남자들을 조롱하겠다'고 마음먹고 한양에 있는 남자들을 치마폭으로 놀려야겠다고 마음먹는다.

성달생이란 사람이 연루되었다는 것도 드러난다. 성달생은 이후 정승의 반열에도 오르는 사람인데 이 사건에 연루가 된 것이다. 상처 입은 여인의 독기가 여러 남자들을 우습게 만들어 버렸다. 결국 세종은 이 사건을 덮어야겠다고 판단을 내린다. 사건을 더 키우면 조정 신료들 중 성한 사람이 별로 남지 않겠다고 판단을 한 것 같다.

이 사건에 대해 사헌부의 고소 내용 중에,
'오모라는 사람은 이미 백성의 사표(師表)로서 지내온 내력도 모르는 여자를 관아에 끌어들여 간통하고, 관청의 물건까지 팔기도 하고 주기도 했다, 또 관에 근무하는 모모는 맹인의 청이라 핑계하고는 쌀 한 곡(斛)을 주었으니 벽을 뚫어서 물건을 훔치는 도적과 다름이 없다, 혹자는 고모부인 이모가 일찍이 간통한 것을 알면서도 또 여러 차례 간통했다' 등의 사례들을 구체적으로 언급하며 성윤리가 사회 일반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한다.

이런 사헌부의 지적에 대해 세종은 크게 두 가지 줄기로 판단을 내린다. 하나는 현재까지 드러난 사람들에 대한 처벌은 법률대로 하되, 그 수위를 조절하기를 명한다. 지금의 검찰에 해당하는 사헌부에서는 조목조목 형률을 정해 올리며 귀양 보내기와 곤장 때리는 장형, 주동자에게는 사형 등을 요청하는데, 세종은 사형은 없애고, 관노로 보내거나 장형의 대수를 조정하는 방식으로 일단락 지으라고 지시한다. 그리고 추가로 드러날 사람들 중 지방에 수령으로 간 사람들은 별도로 조사할 것이 없다고 못을 박는다.

특히 유감동은 극형에 처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세종은 지방의 관노로 보낸다. 그녀만의 잘못은 아니라는 간접적인 변호가 아닐까. 세종의 형벌에는 인간적인 인과관계 속에서 일방적 피해를 억울하게 줄 수 없다는 배려가 느껴지는 대목이다. 그녀도 피해자 중 한 사람이란 인식이 있지 않았을까.   

세종신문 대표 김태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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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03/22 [14:33]  최종편집: ⓒ 세종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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