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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록여행30- ‘사람됨이 바르지 못하나 그대로 두라’
 
세종신문   기사입력  2019/03/18 [13:54]
▲ 세종신문 대표 김태균     
보통 민주주의를 2등 정치체제라고 한다. 최고의 정치체제는 선한 초인 또는 철인이 다스리는 것을 최고로 친다. 하지만 이것은 인력으로 어찌 하기 어려운 일이다. 하늘이 때로 그러한 모범을 보이는 때가 있지만 지속가능한 지도 시스템으로 보기는 어렵다. 
 
때로 세종이 요즘시대에 정치지도자로 활동한다면 어떤 모습일까 상상해본다. 과연 당시의 지도력을 발휘할 수 있을까? 혁신적인 국가운영시스템을 만들 수 있을까? 실험적 도전을 통해 수많은 과학적 성과물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 세상이 온통 반대하는 한글 같은 기적의 문자 체계를 비밀리에 추진할 수 있었을까? 고개를 젓게 만든다. 수많은 지적이 날아 들 것이고, 반대파의 목숨 건(?) 단식도 불사할 일들이 많다. 
 
당시 사간원은 지금의 언론과 같다. 언관이라 불렀다. 세종은 언관의 직책을 중요하게 여겼다. 비록 사사건건 트집을 잡는 역할을 했으나 그 또한 나라를 위한 일이라 여겼으며 임금이라는 절대권력의 부패와 잘못을 바로잡는 하나의 기능으로서 인정했다. 불편한 일일 것이다. 
 
세종1년, 4월 어느 날의 기록이다.
 
정사를 보았다. 
사간(司諫) 정수홍(鄭守弘), 집의(執義) 박관(朴冠)들이 전사리(田思理)와 장윤화 등에게 죄주기를 청하였으나, 윤허하지 아니하였다. 원숙 등이 아뢰기를,
“이조 판서 박신(朴信)은, 강순이 윤인(尹麟)을 모함하는 말만 곧이듣고서 참인지 거짓인지를 가려 보지도 않고 갑자기 주달하였으니, 공변되지 못하오며, 행랑의 성조(成造)를 감독하여, 그 경사진 것을 알고도 하문하신 날에 실지로 대답하지 아니하였으니, 그 마음이 바르지 못하오며, 심온의 일을 듣고도 못 들은 체하니, 대신된 의(義)가 아니옵니다. 마땅히 본사(本司)에 끌어내려 그 죄를 규명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너희들 말이 옳다. 박신은 사람됨이 바르지 못하나, 아직 그대로 두라.” 고 하였다. (세종1년 4월 14일)
 
이조판서란 자리는 지금의 행정안전부와 약간 비슷하다. 정부와 지방행정관을 선별하는 인재충원과 선발을 맡고 있는 부서인 셈인데 그 책임을 맡고 있는 판서, 지금의 장관을 탄핵하는 장면이다. 일을 세심하게 가리지 않고, 공적인 판단을 하지 못하며, 변명을 하며 마음이 바르지 못하다는 탄핵이다. 그런데 세종의 대답이 의외다. ‘탄핵의 내용이 옳지만 아직 그대로 두라’고 명령한다.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가 자주 목격할 만한 내용들이다. 이러저러한 사유로 문제가 있는 인물이니 장관의 직책에 적합치 않으니 해임하라는 건의인 셈인데, 그것을 수긍하면서도 직을 보전하도록 명을 내리는 것은 사간들의 탄핵이유를 인정하면서도 직을 유지하게 했다. 지금 같으면 인정하기를 못할 것이고 인정한다면 해직을 해야하는 상황일 것이다. 5년 단임의 세종은 아마도 이런 결정을 쉽게 하지 못할 것이다.
 
같은 날 평안도에서 올라온 보고인데 당시의 양반 또는 관리들의 행태를 고발하는 내용인데 그 내용이 사뭇 유치하다. 하지만 지금이라고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평안도 감사 윤곤(尹坤)이 계하기를,
“우리 동방이 해외의 한 작은 나라로서, 중국과 견주는 것은 특히 예의가 존재하기 때문이온데, 요즘 대소 사신이 명령을 받들고 외방에 나가면, 혹은 관기(官妓)와 사랑에 빠져 직무를 전폐하고 욕심껏 즐기어 못할 짓 없이 다하며, 만약 기생과 만족을 누리지 못하면, 그 수령이 아무리 어질어도 취모멱자(吹毛覓疵 : 없는 먼지까지 입으로 털을 불어가며 들추어낸다는 말)하여 일부러 죄망에 몰아넣고, 명사들끼리나 한 고을 안에서 서로 좋게 지낸다는 자들도 혹은 기생 하나를 놓고 서로 다투어, 드디어 틈이 벌어져 종신토록 친목하지 않는 일도 있으며, 수령이 법을 받들어 백성을 다스리는 이상, 만약 간음하는 일을 보면, 반드시 의법 처단해야 되는데, 관기(官妓)에 있어서는 매양 귀객이 오면 강제로 간음하게 하며, 잘 듣지 않는 자에겐 도리어 중한 죄를 더하고, 혹은 모자와 자매가 서로 뒤를 이어 기생이 되어, 한 사람이 다 간음하는 예가 있사오니, 이는 강상을 무너뜨리고 풍속을 어지럽게 하며, 예를 문란하게 하고 의를 훼손하여, 문명의 정치에 누를 끼치는 일인데도, 오래 전부터 행하여 왔다 해서, 조금도 해괴하게 여기지 않으며,…(중략) 임금이 예조에 명하여, 의정부·육조와 상의하여 올리게 하였다. (세종1년 4월 14일)
 
기생을 두고 일어나는 너저분한 일들을 고발하는 내용이다. 요즘의 기준으로 보자면 성접대 문화의 한 단면일수 있겠다. 해외에 연수차 나가 개인적인 일탈을 하다가 입방아에 오르는 일과 같다. 
핵심은 ‘문명의 정치에 누를 끼치는 일인데도, 오래 전부터 행하여 왔다 해서, 조금도 해괴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내용이다. 오랜 관습이므로 당연히 그렇게 해 왔는데 무엇이 문제인가 하는 인식을 바꿔야 한다. 즉 기득권 또는 관습의 혁파를 위한 주문이다. 고급관리들의 행태를 바꾸기 위한 조처로 조정의 중론을 모아내기를 지시했다. 
 
도입부가 인상적이다. 우리나라가 중국과 견주는 힘은 예의가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밝힌다. 동방예의지국이란 자의식이 이때도 명확했던 모양이다. 크고 작음이나 힘이 있고 없고의 문제를 떠나 차별을 둘 수 있는 자긍심은 인간을 존중하고 서로 간의 예를 중시하는 것을 예로 들었다. 자부심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절도와 규범, 존중과 배려라는 인간적 성숙도가 높은 경지의 사회라면 이러한 자긍심이 있을 것이다. 한 사회가 건강한가를 측정하는 기준이 될 수 있는 말이다. 
 
문명의 정치란 무엇일까? 성숙한 문화의 힘, 인간으로서의 도의를 아는 사회문화와 솔선수범하는 지도급 인사들, 흔히 말하는 노블리스 오블리쥬가 살아있는 사회 분위기를 말하는 것이라고 본다면 지금 우리에게 남은 것, 지킬 것은 무엇인지 생각해볼 일이다.
 
이후 실록에 기록된 문명한 정치에 대한 수사를 옮겨본다. 사헌부에서 올린 내용 중 일부이다.
 
백성은 나라의 근본이므로 그 근본이 튼튼하여야 하나가 편하다고 하겠고, 요·순과 삼왕의 정치도 백성을 편안하게 함에 지나지 않는 것이며…화려함(華)을 버리고 실(實)을 취하여 그 본말이 어긋나게 하지 않기를 바라나이다. 
 
세종신문 대표 김태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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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03/18 [13:54]  최종편집: ⓒ 세종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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