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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왕하면 떠오르는 3가지
잘 알려지지 않은 세종대왕 이야기 ④
 
세종신문   기사입력  2019/03/08 [15:53]
세종대왕은 태종의 셋째아들로 원칙적으로 적장자 원칙에 따라 왕위에 오를 수 있는 입장이 아니었다. 세자 양녕의 실덕 등 여러 우여곡절 끝에 보위에 올라 최고의 태평성대를 이끌었던 세종대왕 하면 떠오르는 3가지 이미지가 있다.

첫째, 책 읽기를 무척 좋아했다.
실록에 보면 “충녕대군은 천성이 총명하고 민첩하고 자못 배우기를 좋아하여 비록 몹시 추운때나 몹시 더운 때를 당하더라도 밤이 새도록 글을 읽는다. 나는 그가 병이 날까봐 두려워하여 밤에 글 읽는 것을 금지하였다. 그러나 나의 큰 책은 모두 청하여 가져갔다 <태종실록 18/6/3>” 이처럼 세종은 스스로 책을  무척 좋아하여 밤이 새도록 글을 읽었으며, 경연회의에서도 대학연의 등 많은 경서와 역사서를 강독하여 국가적으로 책 읽는 문화를 정착시켰다.

둘째, 격구(擊毬)를 좋아했다.  
세종대왕은 격구를 무척 좋아하였는데 종친들과 직접 치기도 하고 관람하는 것을 즐기기도 했다. 실록에 보면 “격구란 편을 나누어 공을 쳐서 승부를 가리는데 달걀만한 크기의 공을 와아(窩兒)라는 구멍에 넣으면 점수를 얻는 운동”이라고 나와 있다. 세종대왕은 날씨가 추워서 교외로 나갈 수 없을 때에는 경복궁 인근에서 격구를 하시곤 했는데 그것을 비판하는 신하들에게 “격구에 대해 말하면 이는 본시 무예를 연습하기 위함이요, 희롱하는 것이 아니다 <세종실록 12/9/21>” 하고 반박한다. 나아가 세종대왕은 격구하는 법을 법제화하여 무과시험의 과목으로 넣게 하고 경복궁 앞에 별도의 ‘격구전용구장’을 만들어 운영하였다. 즉, 강무와 함께 격구를 통해 놀이(운동)와 국방력 강화라는 효과를 동시에 거둘 수 있었다.

셋째, 거문고를 좋아했다.
부왕 태종은 충녕이 재주가 뛰어남에도 장자가 아님을 애석하게 여겨 “너는 할 일이 없으니 정치에는 뜻을 두지말고 평안하게 즐기거나 하여라”고 하여 거문고 등 예능을 익히게 하여 어린 충녕은 이를 즐기고 섭렵하였다. 특히 충녕이 형 양녕에게 거문고를 가르쳐 주는 등 둘 사이가 음악을 통해 화목해지자 태종이 기뻐했다는 기록도 있다.

이처럼 세종대왕은 책을 통해서 자신의 견문을 넓히고 성찰하는 계기를 만들었고, 격구를 통해 스스로 몸과 마음을 수양하였다. 그리고 거문고를 타면서 현실에 매몰되지 않고 삶에 여유와 멈춤의 의미를 터득하였으며, 화목과 조화의 중요성을 알게 되었다. 말하자면 문(文)과 무(武), 그리고 예능을 두루 갖춘 것이 어린 충녕으로 하여금 여러 난관을 극복하고 훌륭한 지도자로 성장할 수 있는 계기로 작용하였다.

세종신문 편집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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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03/08 [15:53]  최종편집: ⓒ 세종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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