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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판 신데렐라 ‘신빈 김씨’
잘 알려지지 않은 세종대왕 이야기 ③
 
세종신문   기사입력  2019/03/04 [10:55]
어느 날 세종대왕이 신하들과 함께 후원을 거닐고 있었는데 저 멀리 총애하는 후궁이 지나가고 있었다. “여봐라, 갖고 있는 귤 하나를 대령하라.” 그 당시 귤은 매우 귀한 것이었는데 임금의 간식으로 귤을 갖고 다니던 내시가 임금의 말에 얼른 귤 하나를 건네니 세종대왕은 성큼 성큼 후궁에게로 다가가 그녀의 손에 슬쩍 귤 하나를 쥐어주곤 씨익 웃어 주고 가던 길을 갔다고 한다.

세종대왕은 정실부인 소헌황후 심씨를 비롯하여 신빈 김씨 등 6명의 후궁이 있었다. 노비출신이면서도 세종대왕의 총애를 입어 후궁으로서 최고의 위치인 빈(嬪-정1품)의 자리까지 오르고 소헌왕후와 사이좋게 지내며 일생을 행복하게 살았던 신빈 김씨에 대한 이야기이다. 신빈 김씨는 내자시(內資寺-왕실에서 소용되는 각종 물자를 관장하던 곳) 소속의 공노비 출신이었다. 태종의 셋째아들인 충녕대군이 갑자기 22살의 나이로 왕위에 오르게 되자 궁녀들의 충원이 필요했고, 이때 신빈 김씨도 13살의 나이로 궁녀로 들어와 소헌왕후 심씨의 지밀나인이 되었다. 그녀는 천성이 부드럽고 매사에 조심스러워 소헌왕후에게 사랑을 받았는데, 소헌왕후는 그녀에게 막내아들인 영응대군의 유모(乳母) 역할을 맡기기도 하였다. 또한 그녀는 세종대왕에 대한 사랑이 애틋하여 그가 승하하자 아예 머리를 자르고 절에 들어가 여승이 되었으며, 1464년  9월, 신빈 김씨가 59세의 나이로 죽자 세조는 곡물 70석을 부의로 내리며 위로하였다.

세종대왕은 소헌왕후의 시녀로 있던 신빈 김씨를 총애하게 되어 세종 9년(1427) 8월에 신빈 김씨 사이에 첫 아이가 태어났고 이후 12년간 세종과 신빈 김씨 사이에 아들 6명과 딸 2명을 두게 된다. 조선시대 어느 후궁보다도 많은 자녀를 둔 최고의 기록이라 하겠다. 일개 노비출신에서 빈의 자리까지 오르고, 세종의 총애를 받으며 죽을 때까지 행복하게 여생을 보낸이가 신빈 김씨이다. 세종시대에는 뛰어난 과학적 창조물과 경연 외에도 조선시대판 신데렐라 신빈 김씨가 있었다.

세종신문 편집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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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03/04 [10:55]  최종편집: ⓒ 세종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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