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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산분뇨공공처리시설은 여주시민을 위한 것이다”
[인터뷰] 이재덕 여주축산업협동조합 조합장
 
이재춘 기자   기사입력  2019/02/13 [16:01]
여주시의 축산업 현황을 살펴보고 그 전망을 들어보고자 여주축산업협동조합 이재덕(53) 조합장을 만나보았다. 이 조합장은 축산분뇨공공처리시설은 농업과 축산업의 선순환을 이루고 친환경 축산업을 실현할 수 있는 절실한 문제라고 강조하였다.  


▲ 이재덕 여주축산업협동조합 조합장     © 이재춘 기자

여주가 고향인가?

1966년 광주군에서 태어났다. 우리 집안은 흥천면 율극리에서 3대째 살고 있는데 아버지께서 광주군 공무원이셔서 나는 광주에서 태어났다. 초등학교는 이천에서 다녔고 중학교는 서울에서 다녔다. 중학교 다닐 때 세 살 위의 형과 여섯 살 위의 누나와 함께 서울에서 전세를 얻어 살았는데 늘 어머니, 아버지 품이 그리웠다. 그래서 고등학교는 어머니, 아버지께서 계신 여주로 와서 여주농고를 다녔다. 고등학교 졸업 후 여주에서 방위병으로 군 생활을 마치고 몇 년간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다 여주로 다시 내려왔다. 


20대 청년시절 서울생활은 어땠나?

서울에 있을 때 운전 일을 했다. 1종 대형면허를 따고 25인승 버스를 할부로 사서 통학버스, 통근버스를 운행하며 돈을 벌었다. 새벽5시에 일어나 아침시간에는 부천 원종동에서 당산역까지 통근버스를 운행하고 그 일이 끝나면 강서구 신월동 지역의 유치원생들을 통원시켰다. 그리고 오후에는 초등학생들을 속샘학원, 웅변학원에 등원 시켰고 저녁때는 고등학생들 외국어학원 통원버스를 운행하였다. 밤12시에 퇴근해서 쓰러져 자고 다음날 새벽5시에 일어나 일을 나갔다.

주말에는 춘천이나 남이섬으로 놀러가는 사람들을 실어 나르는 관광버스 일도 하였는데 그래도 관광버스가 대접이 좋았다. 꽃놀이 단풍놀이 가는 사람들을 태우면 수고비라며 웃돈을 얹어 주고 밥도 주었는데 관광객들이 놀 때 나는 버스 안에서 그동안 밀린 잠을 푹 잤다.

그렇게 5년을 서울에서 보내다가 흥천면 고향마을에 블록공장이 들어온다고 해서 덤프트럭을 운전하려고 내려왔는데 결국은 들어가지 못하고 고향에 눌러 앉았다. 그때 내 나이가 스물일곱이었다. 


축산업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

스물일곱 살 때부터 흥천면 율극리에 정착해 농사를 지었다. 그때는 우리 집에 트랙터, 이앙기, 콤바인 등이 있어서 내가 동네 농사를 거의 다 지었다. 동네에 연로하신 어른들이 많아서 농사일을 내가 다했다. 그리고 농한기에는 KCC에 임시직으로 일하며 덤프트럭으로 유리원료를 가평에서 실어 날랐다. 그 때는 뭐라도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열심히 일했다.

그러다가 1992년에는 양돈위탁을 했는데 한 4년 동안 300두 정도 키웠다. 양돈위탁사업은 고생만 하고 돈을 벌지 못했다. 돼지들은 대부분 호흡기질환으로 폐사하는데 돼지가 죽으면 고스란히 내가 다 물어야 했다. 결국 양돈업을 그만두고 뭐를 할까 고민하다 1997년에 양계업에 뛰어들었다. 


양계업은 좀 어땠나?

처음 양계업을 시작할 때 농협융자와 개인 빚을 합해 2억 원 정도를 가지고 양계장을 짓고 병아리를 위탁하였다. 그때 병아리 위탁농장이 능서에 있었는데 1997년 겨울에 아이엠에프(IMF)가 터졌다. 겨울에 병아리를 키우려면 열풍기를 돌려야 하는데 기름 값이 천정부지로 오르고 사료 값도 올라 병아리 위탁농장에서 위탁비를 계속 올려 달라고 했다. 빚을 감당하지 못해 양계장의 닭을 버리고 야반도주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때 동네사람들이 다 내가 망했다고 말했다. 그래도 나는 사료를 외상으로 가져오고 빚을 늘려가며 양계업을 계속 하였다. 

양계업을 꾸준히 하다 보니 전국적으로 양계농가가 줄어들고 산란계가 모자라 차츰 계란 값이 오르기 시작했다. 산란 닭을 2만수 키웠는데 그 닭들이 하루에 알을 하나씩 낳았다. 그때 돈으로 계란 하나에 100원 정도 했다. 돈일 벌릴 때는 재미가 정말 좋았다. 양계로 돈이 모일 때 마다 축협 사료 값부터 갚아 나갔다. 그렇게 축협의 사료를 이용하고 축협의 사료 값을 지불하면서 축협에는 나의 출자금과 이용고(경제사업 물량)가 늘어갔다. 

▲ 이재덕 여주축산업협동조합 조합장     © 세종신문


축협 조합장에 출마하게 된 계기는?

처음에는 조합장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별로 없었다. 나는 율극리 마을 이장을 6년 했는데 2011년에는 여주시이장협의회 부회장을 맡고 있었다. 축협 조합장에 나가려면 출자금이 어느 정도 되어야 하고 경제사업 물량도 상당부분 이용하고 있어야 한다. 나는 92년부터 양돈을 시작했고 지금까지 양계업을 꾸준히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출자금과 이용고가 조합장에 출마할 수 있는 량을 넘었다. 그러다보니 주변사람들이 축협조합장에 한번 나가보라고 많이들 권유했다.

일단 한번 나가보고 그 다음 선거에는 당선을 노려봐야겠다는 생각에 2012년 2월에 축협조합장에 출마했다. 3파전이었는데 당연히 당시 조합장이 재선을 하겠구나 생각했는데 막상 표를 까보니 두 후보가 합친 표가 나 한 명의 표와 비슷했다. 그렇게 2012년에 처음으로 축협 조합장에 당선되었다. 


여주 축산농가의 현황이 어떤가?

2019년 1월 현재 여주축협의 조합원수는 1,177명이다. 현재 여주는 골프장 및 전원주택단지 개발로 인해서 축산의 입지가 차츰 줄어들고 있다. 축사거리 제한으로 인해서 축사신축이 어렵다 보니 축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축사를 이전하려 해도 이전이 어려워 축산업이 많이 힘들어졌다.

또 축산업이 과거에 비해 규모가 커지다 보니 가축 분뇨 량도 크게 증가되었다. 현재는 가축분뇨를 축산농가에서 자체적으로 처리하고 있지만 축산 농가들이 전량을 처리하는 것은 사실 어렵다. 그래서 가축분뇨를 처리하는 공공시설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우리 축협은 가축분뇨를 전문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가축분뇨공공처리시설을 환경부 자금을 받아서 설치하려고 한다. 그런데 반대가 너무 심해 어려움이 크다. 축산은 쌀과 더불어 국민의 먹거리를 책임지는 식량산업이다. 축산업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가축분뇨를 전문적으로 처리하는 시설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축산분뇨공공처리시설 건립과 관련해 반대가 심한데 해결방안이 있나?

축분처리장은 단순히 가축분뇨를 처리하는 시설이 아니다. 축산농가에서 발생하는 가축분뇨를 수거하여 농촌지역 환경을 개선하고 가축분뇨를 퇴비화 하여 농사에 사용할 수 있다. 이는 산성화된 토양을 개량하고 화학비료가 아닌 퇴비를 사용함으로서 친환경농업을 실현함으로써 지역 농산물의 가치를 상승시킬 수 있는 시설이다. 농업에서 축산의 사료를 제공하고 축산에서 농업의 비료를 제공하는 자원선순환은 우리 민족의 지혜이고 오늘날의 환경을 살릴 수 있는 가장 좋은 길이다. 축산분뇨를 처리하는 시설이 축산 농가만 관련 있다고 생각하기 보다는 우리 주변에 있는 식량산업을 살리고 농촌 환경을 개선하여 지역의 농업이 친환경적으로 발전될 수 있는 정말 유익한 시설이라고 생각해 주었으면 한다. 


여주 축산물 자체브랜드를 만들 계획이 있나?

여주가 시로 승격된 지 5년이 지났지만 여주는 여전히 도시라는 이미지 보다 농촌이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외지인들에게 여주하면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지 물어보면 아직도 쌀을 얘기하고 있다. 쌀은 대왕님표라는 브랜드로 소비자들에게 홍보하고 있지만 여주축협에서는 아직 조합원들이 생산한 축산물을 자체 브랜드로 판매하지 못하고 있다.

다만 경기남부 5개 축협이 공동으로 한우브랜드를 만들어 경기도지사가 인증하는 G마크 및 친환경인증을 받고 있다. 안전하고 믿을 수 있는 축산물을 만들어 경기도내 초, 중, 고등학교에 학교급식으로 납품하고 있는데 자라나는 학생들에게 국내산 우수 축산물을 공급하여 세대를 이어가는 명품한우브랜드인 ‘G한우’가 있다. 


청년들이 여주에서 축산업으로 성공할 수 있다고 보나?

물론이다! 여주에서 축산업으로 청년들이 성공할 수 있다고 나는 확신한다. 지금도 축산업에 종사하고 있는 청년들이 제법 있다. 이 청년들이 부모님이 하시던 축산업을 대를 이어 하고 있다. 축산업이 다른 직업과 비교해도 메리트가 있고 국민들에게 안전하고 믿을 수 있는 축산물을 공급한다는 자부심으로 대를 이어 축산업을 하고 있다고 본다. 다만 신규로 축산업에 종사하고자 하는 청년들은 축사신축과 가축 및 장비 구입 등 초기투자 비용이 과다하게 들어 많은 어려움이 있다. 고령으로 인해 축산업을 못하게 되는 사람들과 신규로 축산업에 종사하고자 하는 청년들이 서로 연결되면 문제 해결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7년 동안 축협 조합장을 하면서 가장 보람 있었던 때와 힘들었던 때는 언제였나?

비록 난관과 어려움이 많지만 축산분뇨공공처리시설을 추진하는 것이 가장 보람이 있다. 이 일은 축산농가 뿐만 아니라 여주 전체, 더 나아가 나라 전체를 위해 정말 중요한 일이다. 아직은 시민들이 충분히 이해하지 못해 반대가 심한데 진심과 정성으로 다가가서 충분히 협의해서 완성시키고 싶다. 그 일을 추진하는 것이 힘 들기는 하지만 가장 보람된 일이라 생각한다. 

힘들 때는 근거도 없는 의심과 흠집 내기로 같은 조합원이 나를 공격할 때가 제일 힘들다. 고소고발을 여러 번 당했지만 모두 터무니없다는 것이 밝혀졌다. 그렇지만 난 그들을 고소고발하지 않는다. 나도 그렇게 하면 누구도 우리 축협을 지키지 못하기 때문이다. 나는 오직 축산인을 위하고 여주시를 위해서 최선을 다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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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02/13 [16:01]  최종편집: ⓒ 세종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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