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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록여행26-우리 사회 법과 판결의 왜곡, 해도 너무한다
‘사리를 아는 사람도 판결할 때 종종 정당함을 잃는데’
 
세종신문   기사입력  2019/01/25 [14:03]
▲ 세종신문 대표 김태균    
우리네 평범한 사람들은 법대로라는 말을 아직도 꺼내기 싫어한다. 
법은 최후의 보루이자 동시에 차가운 조문해석의 결과이기 때문일 것이다. 정을 중시하는 우리들은 서로 말과 소통으로 오해를 풀어가는 것이 가장 좋다고 여긴다. 하지만 세상은 그렇게 따뜻하지만 않아서 의도적으로 사기를 치고, 법에 걸리지 않으면 된다는 생각으로 해코지를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어쩔수 없이 법의 판결을 받아야 하는경우도 많다. 그런데 이 법의 잣대를 재고 판결하는 사람들인 법관들이 지금 궁지에 몰려있다. 물론 대다수가 아니라는 위안을 삼으면서도 도저히 인정하기 싫은 뉴스들이 연이어 등장한다.
 
사법농단에 대한 국민의 실망과 분노가 크다. 정권을 위해서 알아서 기는 개같은 법이 되었다는 개탄의 소리가 있고, 동시에 일본과의 관계를 위해서 알아서 민간인 배상문제까지 소극적으로 판단해버리려고 했던 의도들은 아연함을 넘어서 절망을 느끼게 한다. 그들은 누구인가? 최고의 학부에서 가장 공부를 잘 한 사람들이 그 높은 재판대위에 앉아 이런 거래들을 한다는것이 정말 큰 배신감을 느끼게 할 뿐이다. 

법 전문가들은 법의 교묘한 이용을 잘 할것이다. 문구 하나에도 법적 판결의 영향을 알고 있는 사람이고 행위를 문구에 담고 말에 담아내는 그 과정에서 또 얼마나 많은 왜곡이 일어나고 변호의 언어들이 등장할 것인가? 억울한 사람들의 마지막 보루라 여기는 법마저 이렇게 휘어져 버린 오늘의 현실은 지극히 실망을 준다. 사회전반에 퍼질 불신과 의심, 그리고 법을 지키면 지킬수록 손해라는 이 인식이 확대되고 퍼져나갈수록 삶은 더욱 힘들어지고 각박해지지 않겠나. 
 
이런때 세종의 판결과 형벌에 대한 태도의 일단을 좀 보는것은 그나마 위안이 되는 일이다. 지난 회차에 신문고 이야기와 함께 격고하는 것에 대한 규정과 벌칙에 대한 내용을 짚어 보았다. 세종의 임금노릇이 꽤 지나서 13년차와 14년차의 이야기를 좀 보자. 
 
“지난번에 대신들이 의논을 올려 말하기를, ‘무릇 송사를 판결하는 데는 이미 성규(成規)가 있어 중외에 반포 시행했으니, 혹시 탐포(貪暴)한 사람이 비록 정당한 판결을 잘못 판결했다고 일컬으면서 신문고(申聞鼓)를 함부로 치지마는, 이를 금하지 못하면 송사의 판결에 기한이 없을 것이니, 마땅히 형률에 의거하여 죄를 다스려야 될 것이다.’ 하나, 내 생각에는 비록 사리(事理)를 아는 사람이라도 송사를 판결할 적에는 또한 혹시 정당함을 잃는데, 하물며 그 무지(無知)한 사람이 이익으로써 마음을 먹고 금령을 범하는 것이랴. 마땅히 이를 생각 밖에 두고 그 죄를 다스리지 말아야 될 것이다. 근래에는 함부로 고소(告訴)하는 사람이 지나치게 많으니, 지금부터 두 번씩이나 함부로 고소하고 격고(擊鼓)하는 자는 1등(等)을 감하여 죄를 다스리게 하라.” 하였다. (13년 10월 28일)
 
대신들이 임금에게 상소를 올렸나보다. 법에 따라 잘 판결한 형벌도 욕심과 포악한 자들이 항소를 하면서 신문고를 울려대면 계속 재판기일이 늦어지면서 문제가 많은 것이니 이런자들은 형률에 의거해서 죄를 다스려야 한다는 내용이다. 이 내용을 임금은 생각을 깊이 했다. 그에대한 반응이 참 신중하다. 

‘사리를 아는 사람이라도 판결할때는 종종 정당함을 잃는’ 경우가 있음을 말한다. 사리를 아는 재판관이라도 때로는 증거때문에, 그리고 정보부족 등으로 판결이 올바로 되지 않을때가 있을거라는 얘기다. 그러면서 항소를 하는 것을 법으로 막고 죄를 주면 그 정당함을 얻을 기회를 차단하는것이 될것이니 죄로 다스리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한다는 취지이다. 그러면서 계속 북을 두드리고 함부로 고소하는 자에게는 법보다 한등 감해서 죄를 다스리게 하자는 취지다. 

세종의 생각에는 정당하게 최선을 다한 판결도 흐려질수 있으니 항소의 기회를 막으면 안된다는 말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의 현실에서는 정당하게 최선이 아니라 부당하게 적당히 판결하고 넘기려는 법기술자들이 지위를 가지고 세상을 왜곡시키고 있다. 도대체 어쩌다가 여기까지 온것일까. 국민들은 어떤 저항을 하고 이 문제를 바꿔나가는데 힘을 모을 수 있을까. 
 
일년후 세종은 판결의 형식에 관한 다른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중국의 판결에 대한 비판과 올바른 판결을 위한 세심한 절차까지도 관여하는 대목이다. 
 
임금이 말하기를,
“참람하게 함부로 호소함을 나도 아노라. 그러나 국가에서 정사를 의논할 때를 당하여 갑(甲)은 옳다 하고, 을(乙)은 그르다 하여, 한 길[一轍]을 따르지 못하거늘, 하물며 무지한 백성이 어찌 일의 시비를 헤아릴 수 있으리오. 참람함을 무릅쓰고 함부로 격고한다고 해서 낱낱이 죄줄 수 없으나, 간사한 무리가 함부로 두 번이나 격고한 자는 이미 죄를 다스렸노라. 명나라 고황제(高皇帝)가 이르기를, ‘원(元)나라 조정이 정사를 중서(中書) 등의 관리에게 맡겼으므로 마침내 천하를 잃었다. ’고 하였으나, 만일에 천관 만기(千官萬機)를 몸소 재결하려면, 이를 장차 무슨 방법으로서 처단하여야 하겠는가.” 하니, 
허조가 아뢰기를,
“신이 중국의 일을 보오니 본받지 못할 것이 많사옵니다. 육부(六部)의 관리들은 뜰 가운데에 나열해 서고, 황제는 하늘과 같이 높은 자리에 팔짱을 끼고 앉아서, 형벌을 결단함에 이르러서는 절대로 의논함이 없이 한 마디로 결정을 하니, 몇 사람이 무고(無辜)하게 형벌을 받아 죽어가는지 모르겠으니, 이것은 본받을 만한 것이 못되나이다.” 하매, 
임금이 말하기를,
“그렇다면, 형을 결정짓는 것이 매우 정밀하지 못한 것이니 과연 본받을 만하지 못하다.” 하였다. 
허조가 아뢰기를,
“우리 나라에서는 한 가지 죄를 짓게 되면 죄를 의논하는 이가 한 사람 뿐이 아니고, 추국하는 곳이 한 군데뿐이 아니오며, 끝에 가서는 임금의 재가(裁可)까지 얻은 뒤에야 시행하게 되오니, 이는 진실로 좋은 법규이옵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그렇다.” 하였다.  (14년 11월 3일)
 
만기친람이란 말이 있다. 온갖 일들을 모두 임금이나 천자가 다 재가하고 관여하는것을 말한다. 세종은 중국의 이러한 판결형식을 옳지 않은것으로 보았다. ‘천관만기를 몸소 재결하려면 그게 어떻게 가능하겠는가’는 말을 한다. 그렇게 되면 형을 결정짓는 것이 매우 정밀하지 못할것이라는 우려다. 
법의 올바른 구성과 더불어 정말 중요한것은 법을 다루는 사람들이 올바르게 처결하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그 처리 시스템 또한 매우 중요하다는 복합적인 이야기를 모두 담고 있다. 
세종의 고민도 억울함이 없게 하려는 법적용, 그리고 그 효율적인 시스템 운용에 있었다.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법적 왜곡 그리고 뻔뻔스럽게 부당함을 호소함이 얼마나 후안무치한지 쳐다 볼수가 없을 지경이다.    
             
세종신문 대표 김태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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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01/25 [14:03]  최종편집: ⓒ 세종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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